주간동아 357

2002.10.31

세계적 과학자 세상을 속이다

미국의 벨연구소 잔 헨드릭 쇤 박사 … '사이언스'등 게재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 들통

  • 이영완/ 동아사이언스 기자 puset@donga.com

    입력2002-10-23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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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과학자 세상을 속이다

    미국 벨연구소 잔 헨드릭 쇤 박사… ‘사이언스’ 등 게재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 들통과학전문지에 게재된 쇤 박사의 논문(왼쪽). 쇤 박사의 논문을 13편이나 게재했던 ‘사이언스’와 ‘네이처’지(오른쪽).

    해마다 10월이면 전 세계는 노벨상 발표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보노라면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라든지, 한 주제에 대한 평생의 노력 등 남다른 면모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노벨상에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던 과학자가 실험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32세의 천재

    논란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연구소인 미국 벨연구소에 근무하는 올해 32살의 잔 헨드릭 쇤 박사. 그는 지난 4년간 25개의 논문에서 최소 16건 이상의 실험 데이터를 조작하고 심지어 날조하기까지 했다는 의혹을 받고 9월25일 벨연구소에서 해고당했다. 특히 쇤 박사의 연구는 노벨상 수상감이라고 할 정도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과학계의 충격은 더욱 컸다.

    1998년부터 벨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해온 쇤 박사는 유기결정체에 전하를 주입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발견해서 부도체를 전도체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한 꿈의 신소재인 풀러렌(C60)의 초전도성을 100°K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세라믹의 경우 극저온에서나 초전도성을 보여 실용화에 걸림돌이 돼왔다.

    쇤 박사는 지난해 11월에는 하나의 분자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해 나노과학에서 큰 업적을 남기기까지 했다. 그가 손댄 것은 모두 눈부신 성공을 낳았던 것이다. 쇤은 과학계에서 미다스와 같은 신화적인 존재였던 셈이다. 그의 눈부신 연구 논문은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에 단골로 실렸다.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는 지난 4년간 13편이나 게재됐다.



    그런데 올해 초 다른 물리학자들이 ‘사이언스’에 게재된 2편의 논문과 ‘네이처’에 발표된 1편의 논문 속 그래프들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쇤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들 논문은 서로 다른 내용에 대한 것이었다. 또한 많은 과학자들이 쇤의 연구 결과를 따라 같은 실험을 해보았지만 그 누구도 비슷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쇤의 연구에 대한 신빙성 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벨연구소는 5월에 스탠퍼드대학 응용물리학 교수인 말콤 비슬리 박사를 비롯한 5명의 저명한 과학자로 위원회를 구성해 쇤의 논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원회는 마침내 “쇤이 과학에서 실험 데이터의 신성함을 무시한 행동을 저질렀다”고 결론지었다. 쇤은 하나의 실험 데이터를 다른 종류의 연구에 여러 차례 반복해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그는 실험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원본 데이터 파일을 모두 삭제했다. 이에 대해 쇤은 그의 컴퓨터 용량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그의 이런 행동을 용납할 수 없으며 ‘과학적 부정행위’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쇤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지만 위원회 결론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쇤은 자신의 논문이 모두 실험에 기반한 사실이라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쇤의 부정행위를 좀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했다. 또한 그의 눈부신 연구 성과를 따라가려고 몇 년이나 노력하던 젊은 과학자들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나타냈다.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쇤의 부정에 대해서는 소속 연구기관인 벨연구소에 1차적 책임이 있다. 대부분의 연구실에서는 박사후연구원의 연구노트를 파기할 때는 상급 연구자의 책임 아래 파기해야 한다. 물론 파기하기보다는 어딘가에 실험 결과를 보관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쇤은 자신의 연구노트를 없애는 데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과학계는 공명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연구 결과를 검증하는 데 소홀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도 연구 결과를 앞다퉈 게재하기에 급급한 과학전문지들을 비난했다. 최근의 부정행위들은 과학 권위지들이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것. 과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 다른 과학자의 충분한 검증을 거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학술지끼리 속보 경쟁을 벌이면서 연구자가 내놓은 데이터를 그대로 믿고 논문을 게재해주는 경우가 많아 이런 일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올해 ‘네이처’와 ‘사이언스’가 모두 속보 경쟁 때문에 해프닝을 겪었던 것을 보면 그러한 지적이 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선 미국 에너지성 산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루시 테일야칸 박사와 렌슬레르 폴리테크닉 연구소의 리처드 레이 박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로버트 니그마툴린 박사 공동연구팀은 3월8일 상온에서 초음파로 비커에 든 용액에 기포를 만들어 터뜨리면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해 과학계에 충격을 줬다.

    당시의 실험은 ‘음파 발광’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음파 발광이란 액체에 초음파를 발사하면 기포가 점점 자라나다가 터지면서 열과 빛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핵융합을 일으킬 정도의 고온을 발생시킨다는 주장은 처음 제기됐다. 이 실험이 사실이라면 실험실 탁자 위에서도 미래 에너지로 기대되는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당시 같은 연구소에 있는 사피라 박사 등은 더욱 정밀한 중성자 계측기로 측정했더니 테일야칸 박사의 실험과 달리 중성자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 실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연구소에서도 ‘사이언스’ 발행인에게 수차례 논문 게재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사이언스’ 발행인 도널드 케네디 박사는 “우리의 임무는 중요한 과학적 성과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며 실험의 재현이나 해석은 과학자의 몫”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결국 미국 일리노이대의 케니스 수스릭, 유리 디덴코 박사 연구팀이 음파 발광 현상으로 발생한 기포의 온도가 테일야칸 박사팀이 추정한 1000만℃에 훨씬 못 미치는 1만5000∼2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밝혀낸 내용을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7월25일자에 발표하면서 ‘사이언스’의 성급한 행동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네이처’ 역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퀴스트 박사팀은 멕시코 오악사카주(州) 산간지방에서 채집한 야생 옥수수 및 지역 식료품 가게에서 팔고 있는 일반 옥수수에서 몬산토사(社)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에 들어간 것과 동일한 외래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지난해 11월29일자 ‘네이처’에 발표했다. 당시 발표된 외래 유전자는 유전자변형농작물(GMO)을 만들 때 원하는 유전자를 농작물의 DNA에 전달하는 꽃양배추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나방 애벌레를 죽이는 독소를 만드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로, 이것이 자연산 옥수수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올 4월 적어도 4개의 과학자 그룹이 퀴스트 박사팀이 사용한 연구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중에는 같은 대학의 연구자도 포함돼 있었으며 ‘네이처’는 결국 이들의 주장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게재된 논문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셈이다.

    공명심에 눈먼 한두 과학자와 영리에만 급급한 일부 과학지들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연구에 여념이 없는 대다수 과학자들의 성과가 빛바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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