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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야인시대' 촬영현장

안방극장, 나 김두한이 접수했어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안방극장, 나 김두한이 접수했어

안방극장, 나 김두한이 접수했어

18세의 청년 김두한이 구마적과 운명의 한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 이 내용이 방영된 10월15일의 ‘야인시대’ 시청률은 드라마 시작 후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51.5%를 기록했다.

10월17일 오후 SBS의 탄현제작센터 오픈세트. ‘야인시대’를 촬영중인 세트장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트 내에 재현된 ‘서대문 건어물’ 가게에 걸린 마른 오징어와 가오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大峴셕유’에는 등사한 흑백 포스터가 걸려 있고 그 옆 양산가게에는 종이와 비단으로 만든 양산들이 줄줄이 누워 있었다. 1930년대의 서대문거리가 그대로 재현된 세트장이다.

청년 김두한이 구마적을 굴복시키는 내용이 방영된 15일, ‘야인시대’의 시청률은 51.5%를 기록했다. 이 때문인지 17일의 촬영장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이날의 촬영분은 종로를 ‘접수’한 김두한이 서대문의 ‘오야붕’ 작두와 싸워 그를 굴복시키는 장면. 김두한과의 1대 1 대결에서 진 작두는 서대문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지만, 김두한은 ‘앞으로도 서대문을 잘 지켜달라’고 말한다. 김두한의 사내다움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세 대의 카메라와 은색 조명판, 마이크들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30년대 복장을 한 엑스트라들이 세트장을 꽉 메웠다. 길 한가운데에는 김두한과 작두, 그리고 양쪽 세력들이 운집해 있다.

“자, 뒷심 주고, 호흡 조절해!”

“거기, 발에 라인이 걸려 있잖아!”



“스탠바이, 하나, 둘, 셋, 넷, 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연출진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쉬어 있다. 그 때문일까. 촬영장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등장인물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신은 ‘야인시대’의 백미다. 하지만 촬영현장의 연기자들은 실제 싸우지 않고 허공을 향해 발차기를 하고 주먹을 날린다. 정말로 맞거나 때려야 하는 대목에서는 대개 대역을 쓴다. 격투 장면에서 김두한 역의 안재모가 이리저리 밀리자 김두한의 뒤편에 서 있는 엑스트라들의 얼굴에 소리없이 웃음이 지나간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장형일 PD(64)가 한마디 한다. “왜 웃냐, 김두한.”

장형일 PD의 완벽주의는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TV로 보면 2, 3분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연기자들은 같은 장면을 10여 번씩 반복해야 했다. 오전중에 끝내야 하는 촬영이 오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빨리 이 장면을 끝내고 부천에 있는 종로거리 오픈세트로 이동해야 하는데, 조연출만 속이 타는 듯했다.

안방극장, 나 김두한이 접수했어

종로거리 오픈세트에서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엑스트라들. 조연들과 엑스트라들의 실감나는 연기는 ‘야인시대’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쪽진 머리에 보퉁이를 인 아낙네들과 까만 통치마를 입은 여학생들, 두루마기에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파이프 담배를 문 장PD의 모습은 마치 한 사람의 엑스트라처럼 보였다. 바삐 돌아가는 촬영현장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관록이 묻어났다.

“김두한에게 종로거리는 곧 조국이었지요. 독립군 영웅인 아버지를 둔 탓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항상 감시 속에 살아야 했던 청년 김두한이 할 수 있는 일이 뭐였겠습니까. 자신의 생활터전인 종로를 지키고, 상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애국의 방법이었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김두한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장군의 아들’ 등 김두한을 그린 영화도 있었지만, 그는 제한된 시간의 영화에서는 미처 그리지 못했던 김두한의 내면까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역사왜곡이니 폭력 미화니 하는 비판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김두한은 만해 한용운 같은 역사적인 위인이 아닌,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야인’이었지요. 또 작가 이환경씨가 상당한 분량의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는 동아방송의 김두한 육성 대담도 대본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김두한은 칼이나 각목 같은 무기를 일절 쓰지 않고 오로지 맨손으로만 싸운다. “정정당당하고 낭만적인, 어찌 보면 아름답기까지 한 모습이죠. 오늘날의 잔인한 조직폭력 세력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달라요.” 장PD는 “이 같은 김두한의 남자다움, 호쾌함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야인시대’를 좋아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야인시대’는 해방 이후 공산당 세력과 대결하고,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의사당에 오물 투척 시위를 하는 장년 김두한도 비중 있게 다룰 계획이다. 총 100부 중 50부를 맞는 내년 1월 말에 안재모가 물러나고 장년 김두한 역인 김영철이 등장한다.

“김두한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해요. ‘야인시대’는 김두한이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보여줄 계획입니다. 앞으로 시라소니 이정재 임화수 등이 등장하면서 드라마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거예요.”

어느덧 오후 4시가 넘어서고 해가 완연히 기운 시각, 드디어 촬영감독이 큰 소리로 “오케이!”를 외쳤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지만, 이 말은 서대문거리 에서의 촬영이 끝났다는 말일 뿐. 부천 영상문화단지에 있는 종로거리 오픈세트의 촬영이 기다리고 있다.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짐을 챙겨 부랴부랴 버스에 올랐다. ‘야인시대’의 하루는 또 이렇게 바삐 흘러갔다.







주간동아 2002.10.31 357호 (p88~89)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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