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6

2002.10.24

‘신데렐라’는 죽었다!

유년시절부터 ‘이너 서클’ 노는 물 달라… 배우자 선택할 땐 ‘집안과 조건’ 더 따져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2-10-18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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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는 죽었다!
    ”여자 연예인이 결혼상대로 가장 선호할 것 같은 집단은?” 최근 한 인터넷 기업이 네티즌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의 설문이다. 이 조사에 참가한 3800여명 가운데 61%가 압도적으로 한 집단을 꼽았다. 바로 재벌2, 3세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연예인과 재벌2, 3세가 만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최근엔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과 탤런트 고현정씨 커플 정도가 있을 뿐이다.

    재벌2, 3세와 연예인의 결합이 어려운 것은 ‘노는 물’과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재벌2, 3세들에게 연예인과의 결혼에 대해 물으면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한 재벌2세는 “가정환경과 지적 수준도 다른 데다, 웬만한 벤처기업가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연예인과 왜 결혼을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더 이상 신데렐라는 없다. 재벌2, 3세와의 결혼을 통한 화려한 신분상승 이야기는 TV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이다. 재벌2, 3세들은 유년시절부터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해온 터라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상류층으로 갈수록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집안과 조건을 더 따진다. 한국의 ‘블루 블러디드(Blue-blooded·귀족)’는 이처럼 폐쇄회로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끼리끼리 문화

    ‘신데렐라’는 죽었다!

    재벌3세와 연예인의 결혼으로 화제가 됐던 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외손자 정용진(신세계 부사장)과 전 탤런트 고현정 커플

    재벌2, 3세들의 ‘끼리끼리 문화’는 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 세대들이 만들어놓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중고와 대학을 거치며 동문수학한 친구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재벌가 자제들이 늘고 있다. 쌍용 김석원 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손녀 유희씨의 결혼은 명문 유치원 초등학교 동기생끼리 결혼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

    명문대 출신을 중심으로 이뤄진 재벌가 자제들의 모임은 이름을 짓고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재벌2, 3세들의 학창시절인 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이들 모임의 매파 역할은 서울예고 출신의 서울대 음대, 연세대 음대 여학생들이 맡았다고 한다. 배경도 좋고 미모도 출중했던 이들을 보기 위해 재벌2, 3세들이 하나 둘씩 참여하면서 모임이 활성화되었다는 것.

    재벌2, 3세들은 같은 대학 출신뿐 아니라 같은 고교 출신끼리도 자주 어울린다. 최태원 SK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김준(김각중 전경련 회장의 장남) 경방 전무 등이 참여하고 있는 ‘신수회’(신일고 동문 모임)가 대표적인 사례.

    ‘신데렐라’는 죽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동창 사이인 김석원 쌍용회장 장남 지용씨와 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손녀 유희씨 커플.

    “일선씨(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손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며, 은희씨(구자엽 LG건설 부사장의 장녀)도 같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다. 이들은 유학생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교제했다.”

    1996년 현대와 LG가 사돈을 맺으며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재벌2, 3세들간 만남의 전형이 잘 드러나 있다. 최근 이뤄진 재벌2, 3세간 결혼의 상당수는 미국 유학시절 유학생 모임을 통해 이뤄졌다.

    재벌2, 3세들이 유학을 가는 지역은 대개 비슷하다. 뉴욕이나 LA, 명문대가 모여 있는 보스턴이 바로 그곳이다. 뉴욕, LA 등지로 유학을 떠나면 한국에서 초중고 생활을 하며 알고 지내던 비슷한 또래의 재벌가 자제들이 이미 커뮤니티를 구축해 놓고 있다. 자연스럽게 재벌가 친구들로 이뤄진 인맥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고급 맨션과 클럽 등에서 우연히 만나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일부는 고급 맨션을 빌려서 함께 지내기도 한다. 한 재벌2세는 “몇 년 전 정관계 인사의 자제들과 재벌가 자제들이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인근 한 건물 13층을 통째로 빌려 어울려 지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재벌2, 3세들은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이처럼 향후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는 인맥을 보다 두텁게 형성해간다.

    배타적인 사교모임

    ‘신데렐라’는 죽었다!

    오찬 모임을 갖고 있는 브이소사이어티 회원들.

    재벌2, 3세들의 친목모임이라고 해서 반드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자기들끼리 모여 나름대로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다른 분야의 인사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 건설적인 모임도 있다.

    2000년에 만들어진 젊은 재벌들의 모임 ‘브이소사이어티’가 대표적이다. 이홍순 삼보컴퓨터 회장과 김준 경방 전무 등 재벌2, 3세 경영자들이 창립을 주도한 이 모임은 쟁쟁한 젊은 CEO들의 건설적인 토론의 장이다. 일부에서는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들의 모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모임은 종종 부작용을 일으켜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비자금 사건. 이 사건과 관련해 3세 경영자 가운데 이웅렬 코오롱 회장, 조동만 한솔 부회장 등이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브이소사이어티보다 먼저 만들어진 재벌2, 3세 모임 중 하나가 현철씨 비자금 사건과 관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푸른회’(일명 상록회)다. 현철씨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푸른회는 현재도 회원명부를 발행하는 등 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푸른회의 회원은 브이소사이어티와 상당수가 겹친다.

    군소재벌의 자제들이 소규모로 모이는 사교모임은 수없이 많다. 대개가 유학시절 인연이나 학연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유학시절 친구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 벤처기업 사장은 “모임 성격은 비즈니스보다는 네트워크 강화 목적이 더 강하다”면서 “가끔 골프를 즐기기도 하지만, 보통은 간단한 술자리를 하며 국제경제와 경영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고 말했다.

    재벌2, 3세들은 사교모임 장소로 특급호텔의 멤버십 레스토랑이나 스노우맨 베이직 등 서울 강남의 멤버십 술집을 주로 이용한다. 유명 피트니스클럽도 재벌2, 3세들이 자주 모이는 곳 중 하나다. 대표적인 곳은 서울 남산의 서울클럽, 신라호텔 멤버십, 롯데호텔 멤버십 등이다. 남자들만 모일 때는 골프를, 가족동반 모임일 경우엔 테니스를 주로 친다.

    혼수는 예물 대신 현금으로

    그렇다면 재벌2, 3세들의 결혼 풍습은 어떨까. ‘백금반지 외에 일체 예물 없음, 예단 양복은 제일모직 하티스트, 예단 한복은 종로 홍실주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부진씨가 결혼할 때 삼성이 발표한 예단 목록이다. 재벌가들은 주변으로부터 호화 사치 결혼이라는 비난을 듣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혼식을 비교적 단출하게 치르는 경우가 많다. 재벌가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결혼식이 소박하게 이뤄지고 있다. 회사 강당을 빌려 가까운 친지들만 불러 치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예단만큼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혼수는 10여년 전부터 예물 대신 현금으로 가져가는 풍습이 관례가 됐다고 한다. 2억원에서 3억원, 많게는 10억원을 딸에게 쥐여주고 원하는 물건을 남편과 상의해 직접 구입하게 하는 것이다.

    웨딩드레스나 예복은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직접 사오거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및 청담동에 자리한 디자이너 숍에서 주로 맞춘다고 한다. 소문난 디자이너 부티크는 남산의 L사가 첫손에 꼽힌다. 그 외에 모 재벌부인이 좋아한다는 J, 부잣집 며느리들이 좋아하는 청담동의 L, R , J 등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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