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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공연 1000회 맞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잔잔한 감동으로 7년째 인기몰이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잔잔한 감동으로 7년째 인기몰이

잔잔한 감동으로 7년째 인기몰이
막이 열리면 피아노가 놓인 깔끔한 응접실이 나타난다. 거기에 동욱이라는 남자가 앉아 있다. 음악교사인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 대신 두 여동생과 남동생을 뒷바라지하느라 결혼도 미룬 채 마흔을 맞았다. 그러나 그의 마흔 번째 생일날, 여동생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오지 않고 대신 7년이나 집을 떠나 있던 막내 동현이 갑자기 나타난다. 동현은 어린 시절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동욱의 기대가 부담스러운 나머지 가출해 선원이 된다. 형제는 과거의 갈등 때문에 싸우다가 우연히 두 사람 모두 피아노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마비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혹한 현실 앞에서 비로소 형제는 사랑으로 손을 잡으며 화해의 악수를 한다.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줄거리다. 등장인물은 동욱 형제와 집을 잘못 찾은 웨딩업체 직원 유미리 단 세 명. 무대는 한 번의 변화도 없이 시종일관 동욱의 집 거실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줄거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조용하고 조촐한 작품이다.

이 조촐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가 10월24일로 공연횟수 1000회를 맞는다. 한국 뮤지컬로는 1500회를 넘긴 ‘지하철 1호선’에 이은 두 번째의 장기공연 기록이다. ‘지하철 1호선’의 원작자가 독일 극작가인 폴커 루드비히라는 점을 감안하면 순수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최장수 기록인 셈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극작가 오은희가 대본을 쓰고 ‘세월이 가면’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의 작곡가 최귀섭이 작곡을 맡았다. 1995년 겨울 남경읍 남경주 최정원 주연으로 처음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이듬해 한국뮤지컬대상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후 연강홀 정보소극장, 동숭아트센터,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 유시어터 등을 돌며 7년간 공연을 거듭해 현재 유시어터에서 1000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00회 공연 동안 객석점유율은 평균 80% 정도. 관객 수는 20만명쯤 된다.

7년 동안 적잖은 출연진이 ‘사랑은 비를 타고’를 거쳐갔다. 초연 당시 주연인 남경읍 남경주 최정원은 이 작품을 발판으로 뮤지컬 스타로 발돋움했다. 당시 진짜 형제인 남경읍 남경주가 형제 역을 맡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지금도 ‘사랑은 비를 타고’를 이야기할 때면, 이 세 배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 후로도 ‘사랑은 비를 타고’는 김성기 서범석 황현정 김장섭 등 많은 뮤지컬 스타를 배출했다. 뮤지컬 기획자 유주영씨는 “현재 동현 역을 맡고 있는 엄기준씨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여러 작품에 캐스팅돼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는 박진감 넘치는 춤이나 화려한 무대장치가 없다. 또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제목과 함께 떠오를 만한 뮤지컬 넘버가 없는 것도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어떻게 1000회 공연의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해답은 바로 작품 속에 있다. 거리감이 없는 연출, 공허하지 않은 탄탄한 구성, 무엇보다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가족간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내용은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해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가족들, 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표현방법을 몰라 툴툴거리기만 하는 동생은 젊은 관객들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다.



잔잔한 감동으로 7년째 인기몰이

반목을 거듭하던 동욱(왼쪽)과 동현 형제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비로소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 이들이 찾아낸 마지막 위안은 결국 가족의 따뜻한 손이었다.

다시 뮤지컬 속으로 돌아가보자. 동욱과 동현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극의 클라이맥스. 동현은 자신이 못 이룬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루어주기를 기대하는 형에게 돈이 든 자루를 내던지며 절규하듯 외친다. “그런 형의 기대가, 내겐 원양어선의 쇠그물보다 더 무거웠다구!” 자루 속에 든 돈은 동현이 7년 동안 원양어선을 타며 모은 돈, 그리고 쇠그물을 끌어올리다 손의 신경이 끊어지는 바람에 받은 보상금이다.

삶은 때로 치명적일 정도로 잔인하다. 아무 예고도 없이 결코 치유할 수도, 잊혀질 수도 없는 상처를 던져준다. 그 상처를 추스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가족이다. “이제 뭘 하지?”라고 절망적으로 묻는 동현에게 동욱은 “밥이나 먹자”라고 대답한다. 소스라칠 정도로 이기적이고, 지긋지긋하게 보기 싫어도 마지막에 잡을 수 있는 위안, 그것은 가족의 손이다.

생명력이 긴 작품에는 감동이 살아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단출한 소극장 뮤지컬이지만, 그 감동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주간동아 356호 (p96~97)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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