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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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끌고 한국 밀고 … 환상의 앙상블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2-10-07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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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끌고 한국 밀고 … 환상의 앙상블

    플라시도 도밍고가 출연한 영국 로열 오페라의 ‘오텔로’ 공연 장면. ‘오텔로’는 ‘토스카’ 등과 함께 로열오페라하우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왼쪽).한국 최고의 ‘오텔로’ 전문 테너로 손꼽히는 김남두(오른쪽 사진의 왼쪽)와 이아고 역의 바리톤 우주호.

    9월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습실.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오텔로’ 공연 연습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합창단과 연기자들이 연출자의 지도로 1막 군중신을 연습하는 동안 오텔로 데스데모나 이아고 등 주역들은 따로 모여 지휘자와 음악코치의 지도로 앙상블 연습에 한창이다. 출연진들은 중간 중간 무대의상을 점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연습 과정이 여느 오페라 준비 과정에 비하면 조금은 남다른 듯싶다. 연출자와 음악코치, 의상 담당자 등이 모두 낯선 영국인들이다.

    10월9일부터 12일까지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는 ‘오텔로’는 예술의전당과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공연이다. 연출자 빌 뱅크스 존스와 음악코치 조반니 브롤로를 비롯해서 의상, 조명 담당 등 네 명의 로열오페라하우스 소속 스태프들이 내한해 공연을 지휘한다. 반면 오텔로 역의 테너 김남두와 이동현, 데스데모나 역의 조경화 김은정 등 주역가수와 합창(국립합창단), 오케스트라(코리아심포니)에는 한국 음악인들이 나선다.

    가수는 한국, 연출은 영국이 맡아

    연출자와 지휘자 등을 해외에서 초빙해와 오페라를 공연한 사례는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과 영국의 극장이 한 작품의 공동제작에 나선 것은 ‘오텔로’가 처음이다. 이번에 공연되는 ‘오텔로’는 1987년 연출자 엘리야 모진스키에 의해 처음 제작된 이후 10회 이상 공연된 프로덕션.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한 연극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모진스키는 ‘오텔로’의 주제를 ‘원죄와 희생’ 그리고 ‘자기불신으로 인한 인간의 좌절’로 정했다. 거대하고 웅장한 무대장치가 이 같은 주제를 보여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레이저빔으로 번개를 표현한 도입부는 기존의 ‘오텔로’ 공연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모진스키 프로덕션의 특징이자 공연의 핵심. 이번 공연의 재연출을 맡은 빌 뱅크스 존스가 “첫 부분이 제대로 안 되면 이 부분만 영원히 연습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극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도입부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관객들은 긴박하게 펼쳐지는 오텔로-데스데모나-이아고 간의 사랑과 애증의 관계에 한층 더 빠져들게 된다.



    영국 끌고 한국 밀고 … 환상의 앙상블

    ‘오텔로’의 연습 장면. 연출자인 빌 뱅크스 존스가 무대도구인 대포 위에 올라가 1막의 군중신을 지도하고 있다.

    또 3막에서는 거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이 등장한다. 적막 속에 초연하게 서 있는 그리스도상 앞에서 아내의 부정에 절망하며 쓰러지는 오텔로의 모습은 모진스키 연출의 힘과 감동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이번 공연을 위해 들여온 1100여 벌의 무대의상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철저하게 고증에 입각한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치밀하게 만들어진 의상은 한눈에 보아도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어설픈 오페라 의상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의상 중에는 ‘도밍고’나 ‘호세 쿠라’처럼 쟁쟁한 가수들의 이름이 달려 있는 것도 있다. 이번 공연의주역인 테너 김남두씨는 호세 쿠라가 입었던 의상을 고쳐 입을 예정이다.

    “공동제작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는 오페라 공연이 일회성으로 그치기 때문에 무대장치나 의상에는 충분한 예산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한 작품을 여러 번 공연하는 외국 오페라하우스의 경우, 무대장치와 의상에 많은 예산을 들입니다. 공동제작을 하면 이런 장치와 의상을 빌려올 수 있죠. 또 관객 입장에서는 수준 높은 연출자의 프로덕션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술의전당 홍보마케팅팀 윤동진 과장의 설명이다.

    공동제작은 제작비를 절감하는 이점도 있다. ‘오텔로’ 공연의 총 제작비는 6억원 선. 지난해 봄 도이치 오퍼의 출연진들을 모두 초빙해 공연한 ‘피가로의 결혼’의 예산이 15억원이 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예산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합작공연을 통해 우리 스태프들이 유명한 극장들의 경험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조명과 의상 등 책임자들은 로열오페라 하우스의 스태프들이 맡지만 이들과 실무작업을 할 인력은 예술의전당 소속 직원들이다. 유럽 제일의 오페라 하우스로 손꼽히는 로열오페라의 공연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영국 웨스트엔드 스태프가 제작하고 우리 가수들이 출연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며 뮤지컬 열풍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거듭된 수준 낮은 공연으로 오페라의 위상이 크게 추락한 지금, ‘오텔로’가 ‘오페라의 유령’처럼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한국 오페라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소망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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