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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행복하다?

한일 TV 공동기획 ‘여성, 일과 사랑’… 삶 만족도 81% vs 74%, 일 욕심은 한국이 월등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일본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행복하다?

일본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행복하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언제 행복하다고 느낍니까? 리포터의 마이크가 일본 도쿄 거리를 누비며 여성들에게 묻는다.

“화장하거나 가꿀 때.”

“매일 궁하지 않을 정도로 돈이 있다면….”

“당연히 여자니까 행복합니다. 남자는 평생 일해야 하니까.”

다시 태어난다면 여성, 남성 어느 쪽을 원합니까?



“남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여자로 사는 게 훨씬 즐거우니까.”

“여자가 좋다!”

일본 여성의 81%가 지금 이대로 좋다고 외친다.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놀라운 일은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여성권한척도에서 64개국 중 61위로 최하위 수준(일본 41위)에 머문 한국의 여성들도 74.7%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한 점이다. 삶을 긍정하는 그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MBC스페셜’은 일본 후지TV와 공동으로 다큐멘터리 ‘여성, 일과 사랑’을 기획했다. 8월11일 1부 ‘여자들의 반란’ 편이 방영됐고, 8월18일 밤 11시 반 2부 ‘행복의 조건’ 편이 이어진다. 양국 제작진은 갤럽에 의뢰해 지난 5월 서울과 5대 광역시에 사는 20~49세 한국 여성 509명, 도쿄에 거주하는 같은 연령대의 일본 여성 375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했다. 설문조사 결과는 공동으로 사용했지만 접근 방식은 전혀 달랐다. 한국 여성PD(이현숙)의 눈에 비친 일본 여성, 일본 남성PD(우키다)의 눈에 비친 한국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까. 같은 듯 다른 양국 여성들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일본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행복하다?
30년 만에 이혼 건수는 10배로 급증, 여성 1명이 낳는 아이 숫자는 3분의 1로 급감. 100명 중 98명의 여성이 ‘취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분명 한국 여성들은 달라지고 있다. 여성학자 오숙희씨는 “아줌마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오히려 이들의 성취동기를 자극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여성신문’ 이계경 사장은 그들의 역동성을 이렇게 비유했다. “한국 여성들은 김이 팍팍 끓고 있는 냄비 같다. 조금만 열면 팍 퍼져 나올 것 같은….”

하지만 그들에게 결혼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한국 여성 74.1%가 결혼이 매우 부담스럽거나 어느 정도 부담스럽다고 응답했고, 일본 여성들도 71%가 공감했다. 그 이유로 일본이 ‘일과 가정 병행의 어려움’(36%), ‘자유의 구속’(21%)을 꼽은 반면, 한국은 ‘시댁과의 갈등’(20.5%)과 ‘가사와 육아’(19.1%)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본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행복하다?
흥미로운 점은 결혼에 대한 부담감은 한국 여성들이 더 큰 반면, 그래도 ‘결혼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 또한 한국이 많다는 사실이다(한국 57.4%, 일본 44%). 비교적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독신 혹은 동거 생활을 할 수 있는 일본 여성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결혼 안 할 자유’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사회학)는 “결혼 적령기를 지나면 결혼율이 90% 이상 되는 한국 사회를 ‘보편혼 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달력의 나이로 가늠하는 적령기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자신(自信) 있을 때가 바로 결혼 적령기”라고 했다.

반면 일본 여성들에게 결혼은 이미 선택이 되었다. 거리에서 만난 도쿄대학 여학생들. “결혼은 꼭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결혼하면 상대에게 구속당해서 싫다” “결혼하면 상대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게 더 편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독신도 좋다”고 답한다. 이처럼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운 일본 여성들의 의식은 독신율 상승, 결혼연령 상승, 출산연령 상승으로 나타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30대 여성 중 30%가 독신이며 40대는 1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는 것처럼, 이혼을 할 수도 있다는 의식이 한국 여성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이혼했습니까?”라고 묻는 마산MBC 임혜숙 PD. 그는 지난 겨울 14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했다. “남편이 죽도록 미워지기 전에, 철천지원수가 되지 않으려고 내린 선택”이었단다. 임PD는 자신의 이혼 사실을 이메일로 알려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결혼할 때 청첩장 보냈잖아. 그때 그 약속 깨고 이혼했으면 알릴 의무도 있다”고 말하는 씩씩한 아줌마. 하지만 세 딸과 사는 자신의 가정을 ‘결손가정’으로 못박는 세상의 편견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싸우는 부모보다 이혼한 부모가 낫다. 누군가 나서서 이혼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일본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행복하다?
1960년대 이후 이혼율이 꾸준히 증가해 온 일본에서는 2분마다 1쌍씩 이혼을 한다. 더 이상 여성의 이혼은 흠이 아니다. 결혼, 이혼, 재혼, 재이혼이 증가하면서 아예 이혼이라는 말 대신 ‘바쓰이치’(X1, 이혼경력 한 번) ‘바쓰니’(X2, 이혼경력 두 번)라는 표현을 쓴다.

처음부터 독신이었거나 이혼 후 독신이 되었거나 어쨌든 홀로 사는 여성들이 늘면서 일본 사회에는 ‘독신 마니아’ ‘독신 신드롬’이 불고 있다. 심지어 “죽어서도 따로 살겠다”는 여성들의 ‘독신 의지’는 무서울 정도다. 일본 작가 마쓰바라 준코씨가 이끌고 있는 독신여성단체 S.S.S(Single, Smile, Senior)는 ‘독립여성용 묘지’를 조성했다. 일본의 장묘문화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묻히는 가족묘가 대부분. 하지만 “당신(남편)이나 어머니 옆에 묻혀라. 나는 따로 묻히고 싶다”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독립여성 묘지’가 인기다. 마쓰바라씨는 “죽어서까지 가족과의 굴레에 묶여 있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가족이라는 굴레는 살아 있는 동안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일본 사회는 독신에 대해 관대할 뿐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도 잘되어 있는 편이다. 일본 최대 규모의 이삿짐 운송업체 아트 히코시 센터는 최근 독신녀를 대상으로 한 ‘레이디스 팩’을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상품은 짐을 싸고, 나르고, 푸는 모든 일을 여자가 한다. 그 밖에 여성 전용 서점 크레용하우스 같은 곳에서 솔로족을 위한 다양한 생활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독신여성의 최대 관심사는 미용. 도쿄의 한 미용실 원장은 “여성들은 월급의 10%를 피부미용이나 화장품에 쓴다. 여행을 포함하면 10만엔 정도 쓰는 것 같다. 월급의 반 이상을 스트레스 해소나 단순히 즐기기 위해, 아름다워지기 위해 쓰고 있다”고 말한다. 홀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자유롭게 사는 것. 일본 여성들의 행복은 바로 이것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 여성들은 단연 ‘나 자신’(68.4%)을 꼽는다. 이어 남편 혹은 애인, 자녀, 부모, 친구 순이다. 하지만 일본 여성들의 대답은 뜻밖이다. 1위가 남편 혹은 애인(53%)이고, 부모, 나 자신, 친구, 자녀 순이다. ‘나 자신’이 중요도에서 3위로 밀려 있다.

이에 대해 후지TV의 우키다 PD는 “한국 여성들이 훨씬 자기 중심적이고 강하다. 일본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에 이어 부모를 중요한 인물로 꼽는 이유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성인이 되어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파라사이트 싱글(기생 독신족)이 늘어나면서 부모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본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행복하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은 ‘나 자신’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이나 좌절도 깊다. “결혼하면 자신보다 가족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에 68.1%가 ‘그렇다’고 했다(일본 45%). 일은 하고 싶지만(한국 70.8%, 일본 56%) 막상 결혼하면 자신보다 가족을 우선해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한국 여성들은 갈등하고 있다.

방송작가 김혜주씨는 취재 도중 만난 ‘어느 억척 주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을 원하는 여성들을 취재하기 위해 교사임용고시 학원에 갔을 때다. 복도에서 한 여성이 울고 있었다. 사연인즉 집안일 해놓고 아이 맡기고 정신없이 학원에 오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끓이던 곰국을 그대로 놓고 나오는 바람에 연기가 나 아파트에서 생난리가 났다는 거였다. 먼저 연락을 받은 남편이 아내에 전화를 걸어 ‘정신차리고 다니라’며 야단을 친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의 태도에 놀랐다. 눈물을 훔치더니 마지막 수업을 받으러 다시 교실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울고불고하며 당장 집으로 뛰어갈 줄 알았는데….”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그녀는 살짝 교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내달렸다. 도중에 어린이집에 들러 둘째를 찾았다. 아이 손을 잡고 정신없이 아파트로 가보니 베란다의 냄비는 시커먼 바닥만 남았다. “엄마가 미쳤어….” 그녀의 혼잣말이 안쓰럽다.

오숙희씨는 “아내가 여성학을 배운다, 호주제를 반대한다 하며 밖으로 다니면, 남편들은 ‘슈퍼마켓에 가서 줄 서면 냄비라도 하나 얻어온다’면서 비웃는다. 한국 여성들은 돈 버는 일을 해야 떳떳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일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고시원에는 전문직을 가지려는 여성들로 밤새 불이 꺼지지 않고, 동대문시장에서도 억척스럽게 사는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일하는 목적은 단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한국 46.6%, 일본 64%)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한국 55.2%, 일본 23%)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반면 일본 여성들은 생활비만 해결된다면 취미생활을 위해(31.3%) 일한다는 대답이 훨씬 많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전문가들은 10여년 전 일본에도 한국과 비슷하게 여성들 사이에 취업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가사노동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이 고달프기만 했다. 여기에 경제불황까지 겹쳐 여성들의 사회진출 욕구를 꺾어버렸다. 결국 일본 여성들이 내린 결론은 U턴, 전업주부로 남거나 파트타임 일에 만족한다. 일본 여성들은 일을 통한 자아성취 욕구를 포기한 대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며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등 즐거운 삶을 택했다.

이현숙 PD는 “일본 여성들은 죽도록 일만 해야 하는 남자들이 불쌍하다며 한발짝 물러서서 운동을 하거나 요리를 하며 즐겁게 산다. 그에 비해 한국 여성들은 자아성취 욕구가 뚜렷하고 남성과 똑같이 경쟁하기 위해 일한다”면서 “그러나 10년 뒤 한국 여성들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지 두고 볼 일”이라고 말한다.

일본 여성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고, 한국 여성들은 치열하게 살고 싶어한다. 현재 삶에 대한 81.1% 만족(일본)과 74.7%의 만족(한국)은 수치의 차이보다 질적 차이가 크다. 작가 김혜주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 제작에 들어가면서 개방적인 일본과 보수적인 한국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한국 여성들은 현실을 바꾸려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아에 눈뜨기 시작한 여성들이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기보다 반란을 꿈꾸고, 도모하며 행복해하는 것 아닐까.”







주간동아 348호 (p38~41)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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