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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강남의 ‘라식산업’

안과는 없다, 라식 전문병원은 있다

수술 열풍 타고 강남에 ‘라식타운’ 형성 일반 안과질환 치료는 뒷전 … 세계 2위의 ‘라식국가’로 부상

  •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안과는 없다, 라식 전문병원은 있다

안과는 없다, 라식 전문병원은 있다
대학생 김지혜씨(22)는 지난 6월 서울 명동의 한 안과에서 라식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3년 동안 콘택트렌즈를 사용해 왔는데, 눈이 충혈되는 등 렌즈 트러블이 심해 수술을 결심했다. 수술대를 내려오면서 그는 “아!” 하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 시계의 숫자가 또렷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안경이나 렌즈 없이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구분하지 못했던 그에게 시계의 숫자를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건설업체 사장 김모씨(57)도 최근 30년 동안 써온 안경을 벗어던졌다. -3.5D(디옵터) 시력이 라식수술을 통해 양쪽 눈 모두 1.0으로 회복된 것. 의사는 근시가 교정되더라도 노안이 오면 어차피 돋보기안경을 써야 한다며 수술을 말렸지만, 김씨는 의사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을 받았다. 그는 라식수술 후 골프 핸디캡을 5개나 줄였다고 한다. 안경을 통해 골프공을 볼 때보다 공 크기가 훨씬 커 보였기 때문이다.

개업안과 3분의 1이 라식수술… 수술비 200만원대

‘몸이 1000냥이라면 눈이 900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눈은 중요하다. 안경과 콘택트렌즈 착용에 지친 사람들에게 라식이 ‘꿈의 시술’로 떠오르고 있다. ‘라식 전문의’들은 레이저를 이용해 눈의 각막을 깎아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라식(LASIK) 수술을 ‘인간이 만든 축복’이라고 격찬한다.

안과는 없다, 라식 전문병원은 있다
원시·난시·근시를 모두 교정할 수 있는 라식수술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각막절삭기로 각막을 엷게 벗긴 뒤 20~50초 정도 레이저를 쏘고, 벗겨진 각막 절편을 봉합 없이 원위치에 붙이면 된다. 수술 시간이 10~20분 정도에 불과하고 통증도 거의 없는 데다, 회복기간도 매우 짧아 수술 다음날이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라식은 1995년 국내에 처음 도입됐지만 시술병원과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부터. 99년 라식수술이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공식 승인을 받은 후 타이거 우즈 등 인기스타들이 이 수술을 받은 것이 기폭제가 됐다. 미국에서는 영국 골프선수 로라 데이비스가 라식수술을 한 다음 날 바로 경기에 나서 우승을 하면서 연 100만명이 라식수술을 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수술의 안전성 문제 때문에 초기엔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주위에서 라식수술을 받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라식기계의 수는 350~400대 가량. 2001년 8월 현재 전국 안과병원 수가 729개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 개업안과 중 최소 3분의 1 정도가 라식수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라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10만명 정도로 우리나라는 세계 2위의 ‘라식 국가’로 올라선 상태.

안과는 없다, 라식 전문병원은 있다
라식 열풍은 최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신세대들이 혼수품으로 받고 싶은 선물 중 라식수술이 3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대학가를 중심으로 라식계가 만들어지고 인터넷 공동구매로 라식 수술권을 구입할 정도다. 오세오안과 이규훈 원장은 “과거에는 환자들이 대부분 20대 여대생들과 직장여성들이 많았는데 최근엔 20대 남성들과 30, 40대 여성들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라식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라식 전문병원’도 등장했다.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은 ‘라식수술의 메카’로 불린다. 압구정 성형타운에 이어 강남 ‘라식타운’이 생겨난 것. 강남역 6번 출구를 중심으로 반경 100m 안에 40여개의 수술전문 안과가 자리잡고 있다. 압구정동과 신촌에 각각 10여곳, 명동에도 20여곳이 몰려 있지만 이 지역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안과는 없다, 라식 전문병원은 있다
강남역 인근 안과들의 라식환자 대 일반환자 비율은 8대 2, 9대 1에 이른다. 간판만 ‘안과’로 내걸었지 실상은 ‘라식병원’인 셈이다. 일반 환자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병원이 시력교정술 위주로 진료가 이뤄지고 있고, 병원 입구에 ‘수술전문병원’이란 문구를 적어놓은 곳이 많아 일반 환자들은 병원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다. 이렇다 보니 실제 일반 안과질환을 가지고 이들 전문병원을 찾는 환자는 거의 없다.

일부 병원에선 라식수술을 받는 환자가 하루에만 40명에 이르기도 한다. 수술비가 220만~25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한 달 매출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새빛성모안과의 한 전문의는 “라식환자가 많기 때문에 안과전문의인지 라식전문의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며 “일부 안과의사들이 라식환자에게만 매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라식수술 전문병원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고, 돈벌이가 되자 안과의사들이 너도나도 라식수술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인근은 역사 주변의 평범한 광고란조차 다른 곳과 다르다. 보통의 지하철역이라면 개봉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안과’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등의 수술 광고가 붙어 있다.

규모 큰 곳은 초기 투자비용만 15억~25억원

하루에 20~40명이 시술을 받는다는 C안과 내부를 들여다보자. 매출액이 높기로 유명한 이 병원은, 우선 시설부터 다른 병원을 압도한다.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은 고급 호텔 뺨친다. 언뜻 봐도 고급스러운 탁자와 의자, 하얀 벽과 원목 자재가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천장의 조명시설부터 물잔 하나, 쓰레기통까지 예사 물건이 없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한 배려도 세심하다. 여성지를 비롯해 각종 읽을거리는 기본이고 인터넷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미니바에서 무료 음료수를 꺼내 목을 축이며 벽면 곳곳에 전시된 미술작품을 관람하면 어느새 진료 순서가 된다.

C병원처럼 제법 그럴듯한 안과를 강남지역에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은 15억~25억원 정도. 가격이 6억~8억원에 이르는 라식수술 장비는 리스로 들여오더라도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 정도 비용은 들여야 한다. 투자비가 많다 보니 손님을 ‘싹쓸이’하는 안과들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형태를 띠고 있다. 적게는 3~5명에서 많게는 10명 이상의 전문의들이 같은 이름을 내걸고 병원을 요로에 차리는 것이다. 지점마다 각기 다른 기계를 들여놓고 손님의 상태에 따라 치료병원을 결정하는 네트워크 프랜차이즈 형태가 일반적이고, 로열티를 지불하고 이름을 빌리는 대신 일정 지분을 출자해 공동으로 운영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직영병원 형식도 등장했다.

프랜차이즈 형태를 선호하는 것은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은 탓에 단독으로 개업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동업 형태를 취하면 위험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안과는 또 마케팅을 공동으로 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함께 대처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드림성모안과 송명철 원장은 “개인 이름을 내거는 것보다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데다, 정보 공유가 용이하고 홍보효과까지 뛰어나 프랜차이즈 형태로 개업했다”고 말했다.

안과는 없다, 라식 전문병원은 있다
강남역 안과 타운의 라식병원들은 토·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 본전을 뽑으려면 하루도 기계를 멈춰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안과전문의는 “라식기계 2대를 리스로 들여오면 매달 상환해야 할 금액이 6000만~8000만원에 이른다. 최근엔 싼 가격으로 덤핑공세에 나선 곳까지 나타나 병원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들에 따르면 적자를 보지 않는 손익분기점은 하루에 4~5명. 최소 손익분기점 이상의 환자를 확보해야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형태가 아닌 개인안과의 경우엔 환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곳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라식을 원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라식전문 병원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용부담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안과들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케팅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을 통한 홍보. 대부분 환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병원을 결정하기 때문. 검색에서 ‘안과’를 치면, ‘시력교정수술 전문안과’ ‘라식수술 전문안과’ ‘안과수술 전문병원’을 간판으로 내건 안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 안과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라식 체험기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국내 최초 ××기종’ ‘세계특허 ××기종’을 도입했다는 문구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라식수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은 거의 소개하지 않고, 라식수술을 찬미하기만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부 안과들은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확보하기도 하고, 별도의 홍보실과 텔레마케터를 둔 병원도 있다. 명동의 라식전문 병원에선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에 나서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현행 의료법으로 보면 위법이지만 이들의 경쟁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멈출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라식 전문’이란 말을 쓰는 것 자체도 불법이다. 대한안과학회의 한 관계자는 “자정 차원에서 이들 중 일부를 고발했지만 반성하는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과의사의 상당수가 ‘라식의사’로 변신하면서 발생한 가장 큰 문제점이 높은 투자비와 치열한 경쟁에 기인한 ‘무리한 시술’이다. 회사원 구모씨(25)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는 ○안과를 찾았다. 주변에서 라식수술 성공담을 심심찮게 들은 터라 검사라도 한번 받아보기로 한 것. ○병원에서 구씨가 검사받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8가지 기본검사 중 구씨가 받은 것은 5개 정도에 불과했다. 검사와 상담도 의사가 아닌 상담실장에게 받았다. 상담실장과의 대화가 끝나자 뒤늦게 내려온 의사는 검사 결과가 좋다며 당장 수술날짜를 잡자고 말했다. 라식수술을 받은 친구로부터 검사받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는 말을 들은 구씨는 어딘지 의심스러워 예약을 미루고 병원을 나섰다. 다른 병원에도 전화로 문의했는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0~30분 만에 검사를 마친다는 곳에서부터 1시간30분이 걸린다는 곳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강남역 주변 한 라식 클리닉의 안과전문의는 “환자가 없어 병원문을 닫으면 빌린 투자비 때문에 내가 쇠고랑 찰 판인데, 각막 두께나 시력 등을 고려해 부작용이 안 날 사람만 골라 수술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심지어 “미국 FDA는 물론 저명 텍스트북에도 반드시 3~4회는 하라고 되어 있는 굴절마비 검사의 경우도 근육마비제의 약효가 풀리는 데 3일이나 걸리고, 하루종일 가까이 있는 사물이 보이지 않는 등 환자의 불편 때문에 대부분 의사가 회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굴절마비 검사는 시력이 가장 좋을 때와 가장 나쁠 때의 편차가 얼마인지 보는 검사로, 이 검사를 하지 않을 경우 의사는 환자의 시력을 추측에 의해 교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간동아’의 취재 결과 굴절마비 검사를 제대로 하는 의원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의료전문 법무법인 한강의 최재천 대표 변호사는 “라식 관련 소송이 날로 늘어가는 것도 근본적으로 안과의원들의 상업화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사실 실명을 하지 않는 경우 재판부가 조정 판결을 내리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의원들도 의료사고 소송을 그리 겁내지 않는 것도 현실”이라고 말한다.

“라식도 하나의 성형술입니다. 눈을 성형하는 것이죠.” 이제 눈도 성형하는 시대가 된 것인가. 눈 밖에 있는 안경을 눈 안으로 옮겨놓는다는 라식수술은 안과전문의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레일 위를 한없이 내달리고 있다.





주간동아 348호 (p30~33)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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