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8

2002.08.22

‘가지’ 많은 코오롱 바람잘 날 없네

계열 분리된 ‘TNS’ 사기 의혹 불똥 … 친족관계 협력업체들도 방만경영 ‘골칫거리’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10-05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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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많은 코오롱 바람잘 날 없네
    코오롱TNS는 코오롱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입니다. 한때 그룹 계열사에 포함돼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88년 계열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해 나간 회사입니다.”

    코오롱그룹 홍보담당 이활용 전무는 요즘 7월 말 부도처리된 코오롱TNS 금융사기 의혹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명하고 있다. 코오롱TNS 때문에 엉뚱하게 코오롱그룹 이미지가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썽’은 코오롱TNS가 부렸는데, 이전무가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다.

    코오롱TNS로 인한 코오롱의 ‘피해’는 당분간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코오롱TNS 금융사기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만큼 한동안 이 사건 관련 기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이동보 회장은 단기부채 700억원을 고의로 누락시키는 분식회계를 하고 월드컵 휘장사업과 관련해 이익 규모를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코오롱TNS는 코오롱이라는 브랜드만 사용하고 있지 코오롱과는 전혀 무관한 회사. 69년 설립된 여객운수업체 유신상송을 77년 코오롱이 인수해 코오롱고속관광으로 사명을 바꿔 코오롱 계열사로 편입했다. 그러나 88년 코오롱에서 분리 독립해 나온 이후 코오롱 이동찬 명예회장 이복동생 이동보씨가 경영해 왔다. 자본금은 150억원으로, 이동보 회장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브랜드만 쓸 뿐 무관” 해명에 진땀



    상식적으로 보면 코오롱그룹에서 분리 독립해 나오긴 했지만 혈족 관계인 이상 코오롱그룹에서 도움을 받았을 법도 하다. 그룹 차원에서 임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갈 때 일괄적으로 이 여행사를 이용하도록 ‘관행’을 만들어놓으면 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코오롱 관계자들은 “코오롱에서는 그런 정도의 도움도 주지 않고 냉랭하게 대해 왔다”고 말한다.

    코오롱 관계자들은 이런 점 때문에 “코오롱TNS가 코오롱 계열사 아니냐”는 일반인의 오해를 더 억울해한다. 그룹 관계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그룹 내부에서는 ‘언젠가 코오롱TNS가 그룹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 아예 코오롱TNS가 코오롱 브랜드를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이동찬 명예회장에게 여러 차례 건의해 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터여서 아쉬움은 더 크다”고 말하고 있다.

    코오롱TNS에 대한 ‘경고’는 외환위기 이후 집중됐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동보 회장이 방만하게 경영하는 것을 보고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동보 회장은 계열 분리 이후 세진대리석, 대성합성화학, 일진금속공업, 삼성특수화학 등을 인수해 사세를 확장했다. 그러나 차입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세진대리석과 대성합성화학 등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사용, 섣부른 ‘덩치 키우기’가 화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지’ 많은 코오롱 바람잘 날 없네
    물론 지금에 와서 “그래도 동생인데, 너무 매정한 것 아니냐”고 사람을 너무 믿었던 이동찬 명예회장을 탓할 수도 없는 일. 그룹 관계자는 “집안의 장자로서 무엇보다 집안의 화합을 중시해야 하는 이동찬 명예회장 입장에서는 동생에게 ‘선의’를 베푼 셈인데, 그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돼 안타까울 뿐”이라면서 “옛 속담에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했지 않느냐”고 촌평했다.

    코오롱TNS와 코오롱그룹의 관계를 더듬어보면 한국 재벌의 성장과 분화 과정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 재벌은 가족 중심의 소유구조다. 집안 형제들이 함께 힘을 모아 기업을 일으킨 다음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게 되면 형제들이 이들 계열사를 나눠 경영하게 된다. 형제간 재산 분배는 자기가 맡은 계열사를 계열 분리함으로써 이뤄진다. 물론 그 과정에 형제간 재산 싸움이 수반되는 경우도 있지만 계열 분리 이후에도 서로 돕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렇게 성장한 재벌 그룹 주변에는 총수의 사돈네 팔촌까지 모여드는 것도 한국 재벌의 또 다른 특징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에는 총수와 조금이라도 피가 섞였으면 능력도 없으면서 임원 자리를 언제든 꿰찰 수 있었다. 그것도 안 되면 하다못해 협력업체 하나씩은 얻어 모그룹에 납품하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했다.

    코오롱 역시 이런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완전히 관계를 끊은 이동보 회장도 문제였지만 사업을 하는 이동찬 명예회장 매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자부품 회사 P전자를 운영하는 이 매제도 외환위기 이후 한때 이동찬 회장의 속을 태웠던 것. 이 일은 그룹 내에서는 워낙 유명한 얘기가 된 탓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다음은 한 임원이 전한 당시 사정.

    총수의 매제 회사도 한때 말썽

    “어느 날 이동찬 명예회장이 크게 화를 내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그룹 구조조정본부에 내렸다. 명예회장 여동생이 명예회장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한 직후의 일이었다. 구조본 직원들은 득달같이 P전자에 쳐들어가 실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실사를 진행할수록 기가 찼다. 명예회장 매제는 사업에는 뜻이 없었는지, 회사가 멍들어가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샅샅이 명예회장에게 보고됐고, 구조본 임원들은 ‘코오롱그룹 차원에서 도와주어서는 곤란하다’는 뜻도 밝혔다. 결국 명예회장도 그런 뜻을 수용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도와준 것으로 안다.”

    당시 구조본 임원들이 그룹 차원의 지원을 결사 반대했던 것은 코오롱그룹 자체도 심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 외환위기 직후 코오롱은 전기요금조차 연체해야 할 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은행자금 조달금리는 30~40% 수준이었는 데 반해 전기요금 연체에 따른 가산금은 24%에 ‘불과’했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 빌려 전기요금 내느니 차라리 연체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다행히 코오롱은 신세기통신 지분 매각을 완료하면서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 총 매각대금 1조691억원이 99년 12월20일 하루에 전액 입금된 것은 국내 기업 인수·합병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코오롱은 당시 8397억원의 대규모 매각 차익을 얻었고, 그룹 전체의 부채비율도 단번에 157% 수준으로 낮췄다.

    코오롱그룹의 일부 협력업체들도 그룹에서는 골칫거리. 코오롱 협력업체 가운데는 이동찬 명예회장의 고향(경북 영일) 친척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있다. 한국적 풍토에서 이동찬 명예회장이 친척에게 협력업체를 운영하게 해준 것 자체는 ‘미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그룹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들 협력업체가 모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는 이들을 ‘관리’하는 데 상당한 애를 먹고 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연히 이동찬 명예회장이 도와줄 것이라 믿고 있는 탓인지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 경우가 많고, 그룹에서 아무리 경고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 한 관계자는 “당신들부터 경영합리화에 나서 모기업에 싼값에 납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무리 타일러도 ‘쇠귀에 경 읽기’식이다”고 토로했다.

    코오롱그룹 내에서 “코오롱TNS 사건을 오히려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총수의 친인척이라고 해서 ‘특혜’나 ‘특권’을 인정해서는 언젠가는 그룹 이미지에 손상을 입거나 내부적으로 곪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코오롱그룹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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