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8

2002.08.22

“이태복 주장 난센스, 약가 인하 계속 추진”

김성호 보건복지부 장관 … “무리한 보험재정 절감책 부작용 초래”

  •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10-05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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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복 주장 난센스, 약가 인하 계속 추진”
    전임 장관이 자신의 경질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고 물러난 탓일까. 취임(7월11일) 한 달을 맞은 신임 김성호 보건복지부 장관은 요즘 부처내 어두운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분주하다. 보건복지 업무와는 조금의 인연도 없는 정통 재경관료 출신이지만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관료들이 눈치만 보며 끌어안고 있던 잘못된 정책들을 과감하게 수정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약가인하 정책과 관련한 이태복 전 장관의 다국적 제약사 로비설과 청와대 압력설 등에 대해 김장관은 “재야 출신의 개방성이 불러온 해프닝” 또는 “무리한 실적주의가 낳은 오류”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는 최저가 실거래제, 약가 재평가, 참조가격제 등 이 전 장관이 추진했던 각종 약가인하 정책은 그대로 추진키로 해 정책 혼선을 방지하는 한편, ‘약가개혁’이 후퇴하지 않겠냐는 일부의 우려도 불식시켰다.

    -국세청 생활만 30년 동안 해온 것으로 아는데 갑자기 복지부 장관에 발탁된 배경은?

    “이번 입각을 전혀 기대 못했다. 발표 한 시간 전에 통보받았다. 전임 조달청장 자리도 사실은 국세청 업무와는 정반대 개념을 가진 곳이었다. 하지만 2년간의 조달청장 재임 기간 중 공공개혁에 치중한 결과, 개혁 및 혁신과 관련한 모든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공공개혁 4관왕이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아마 발탁 배경이 있다면 국세청, 조달청 등 이해관계 다툼이 많은 일선 현장을 많이 경험한 관료라는 점이 인정을 받은 것 같다. 복지부도 의약분업뿐만 아니라 모든 업무에서 관련 단체간에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는 곳 아닌가.”

    “이태복 주장 난센스, 약가 인하 계속 추진”
    -이태복 전 장관의 경질 또는 그의 약가인하 정책과 관련해 다국적 제약사의 압력이 문제가 됐는데….



    “한 나라의 장관이 다국적 제약사의 압력에 의해 경질됐다는 것은 일단 있을 수 없다. 다국적 제약사의 편지나 전화는 ‘압력’이 아니라 ‘입장 표명’일 뿐이다. 기업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추진될 경우 그것을 막으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장관의 자세다. 입장 표명이 좀 과격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저럴 수밖에 없다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장관이 일일이 그것을 받아주니 그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개별 기업의 민원성 불만은 실무 담당자 선에서 접수받아 중요한 부분만 보고를 받고 흘려버리면 된다.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재야 출신답게 아무나 자꾸 만나다 보니 스스로 부담이 생긴 것이다. 그것을 압력으로 오해한 것이다. 정통관료 출신들은 절대로 개별 기업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친형님인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도 재야 출신이었다.

    “이 전 장관이 꼭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형도 재야 출신답게 장관 시절 새벽부터 밤까지 누구든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곤 했다. 문제는 그중에 국가적으로 엄청난 화를 불러올 수 있는 만남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재야 출신이라도 만나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별해야 한다.”

    “이태복 주장 난센스, 약가 인하 계속 추진”
    -청와대 비서실이 이 전 장관의 보험재정 절감(약가인하 정책) 대책 보고를 사사건건 막았다는데….

    “복지노동 수석 김상남씨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지난 4월 이 전 장관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7600억원의 보험재정 적자를 올 연말까지 3600억원으로 줄인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전 장관이 김수석에게 대통령 독대를 신청하며 이제는 3600억원이 아니라 연말까지 적자를 제로 베이스까지 끌어내리고, 이를 위해 약가인하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내용을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한다. 이 전 장관의 이런 생각은 재야 출신만이 가질 수 있는 단지 꿈같은 구상일 뿐 아니라, 부하 직원들조차 말이 되지 않은 정책이라 생각했고 김수석도 이를 황당해했다. 보험재정 적자를 7600억원으로 유지하는 것도 힘든데 3600억원, 제로 베이스 운운하니 행정가인 김수석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보고하게 했다가는 자신도 당하게 생겼는데…. 수석 입장에서 면담 신청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도 김수석이 면담 신청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김수석이 이 전 장관의 독대를 막은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복지노동 수석을 거친 이 전 장관이 대통령 독대를 고집했다면 비서진을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독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험재정 절감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인가?

    “이미 5년 후에는 단기 순이익을 낼 수 있는 보험재정 대책이 세워져 있다. 무리하게 보험재정을 줄이다 보면 국민 부담만 늘 가능성이 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지, 보험재정을 억지로 줄이다 보면 항상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수가 인상으로 의사와 약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하는데 그것도 세금으로 환수하면 되니, 오히려 이득이 될 수도 있다. 무리하게 그들의 수가를 다시 낮추려고 할 필요가 없다. 다만 과잉진료나 허위진료, 약물 오남용을 통한 재정 누수현상은 절대 간과하지 않겠다.”

    -전임 장관의 약가인하 정책을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참조가격제의 경우 시행 방안을 마련한 후 국회와의 협의, 언론·NGO 등 관련단체를 대상으로 공청회 등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추진하고, 최저 실거래가제도· 약가재평가의 경우 근거 고시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심의 완료되는 대로 추진할 예정이다.”

    -의사협회, 시민단체와 마찰을 빚어왔던 소화기관용 의약품 세부요양 급여기준 고시를 폐지하고 요양급여일수 제한 조치를 크게 완화했다고 하는데….

    “보험재정을 절약한다고 시작한 것이 결국 국민에게 부담과 고통을 준 꼴이 됐다. 물론 시작은 이상적이었지만 시행해 보니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이럴 때는 과감히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나도 만성 비염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의사가 소화제 처방을 해주지 않아 정장제를 약국에서 내 돈 주고 사먹은 기억이 있다. 의사의 소화제 남발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환자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사들도 오히려 더 비싼 약을 써버려 보험재정 절감효과도 없다. 개혁이라는 것은 정부가 처음 시작할 때 아무리 이상적이었다 해도 국민적 공감을 못 받을 때는 과감히 고치는 것을 가리킨다.”

    “이태복 주장 난센스, 약가 인하 계속 추진”
    -이와 관련해 관료들 사이에서 의사협회에 너무 쉽게 양보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는데….

    “의사협회의 건의 때문에 고친 게 아니다. 부임하자마자 내가 먼저 간부회의 때 제기한 문제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고, 거기에 위신 문제가 개입할 수 없다. 의사협회에 양보했다는 주장도 틀린다. 오히려 의사협회로부터 얻어낸 것이 더 많다. 폐지 조건으로 의사협회의 자율처방지침 제정과 사이비 의료행위 억제 등의 약속을 받았다. 그동안 참가를 거부했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도 참여하고 환산지수 연구에도 동참하기로 했다. 결국 소화제 남발을 줄이겠다고 약속하고, 고가약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보험재정에도 도움이 된 셈이다.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있는 불신을 푸는 열쇠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지켜볼 일이다.”

    - 세무 전문가라 의사들이 취임 당시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의사들의 소득 실상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난 국세청장이 아니고 복지부 장관이다. 국세청에 있을 때는 국세 행정을 잘하는 것이 임무였지만 지금은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내 임무다. 그래도 그들이 나를 두려워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과감히 고친다는 신념대로 행동할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본의 전 의사회장 다케미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의사 중 3분의 1은 선량하고, 3분의 1은 보통이고, 3분의 1은 불량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극소수의 불법자들에 대한 일벌백계는 필요하지만 전체를 불신할 필요는 없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줄 예정이다. 다른 직능단체도 마찬가지다. 만약 의사단체와의 신뢰만 구축된다면 최근 어려움에 빠져 있는 병원과 종합병원에 대한 지원을 통해 왜곡된 의료전달 체계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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