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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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업, 양복차림 단독으로 심문”

이동국 병역사건 당시 피의자 K씨 “수사관 행세” 증언 … 검찰 방조 논란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10-05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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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업, 양복차림 단독으로 심문”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박영관)가 2001년 10월 프로축구 이동국 선수 병역면제 비리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대업씨가 이 사건 피의자를 특수1부 조사실에서 단독으로 심문 수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피의자가 ‘주간동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피의자는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서울지검 11층 특수1부 특별조사실에서 김대업씨와 단둘이 마주앉아 김씨로부터 ‘범행을 자백하라’는 심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김대업씨는 양복 차림이었으며, 재소자 신분의 김대업씨와 동석하게 돼 있는 교도관도 조사실에 없었다고 한다.

    검찰은 재소자였던 김대업씨를 피진정인, 혹은 수사정보를 얻기 위한 참고인 신분으로만 활용했다고 말해왔다. 국민수 대검공보관은 “김대업씨가 단독으로 조사한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박영관 특수1부장도 “참고인 자격으로 김씨의 도움을 받았을 뿐 김씨가 직접 수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은 “김씨의 수의(囚衣) 위에 옷을 걸치게 했지만 아예 사복만 입도록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재소자 신분 수의 전혀 안 입어”

    그러나 피의자 증언은 △김대업씨가 수의를 전혀 걸치지 않은 사복 차림이었으며 △검사나 검찰 수사관이 피의자를 강도 높게 심문할 때 사용하는 폐쇄형 조사실에서 김대업씨가 피의자를 단독으로 심문했다는 것으로 검찰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현행법상 기결수의 사복 착용은 금지돼 있으며, 수사 자격은 검사· 사법경찰관리·군 수사기관 등 특별사법경찰관리로 한정하고 있다.



    현재 김대업씨가 ‘공무원 사칭’ 혐의로, 서울지검 특수1부 박영관 부장검사와 당시 특수1부 부부장 검사인 노명선 검사가 ‘공무원사칭 교사’ 혐의로 고발돼 있는 것과 관련해 이 증언은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국 선수 병역면제 청탁사건의 피의자로 구속 기소돼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지난 1월3일 출소한 K씨(대구시 수성구 시지동)는 서울지검에서 김대업씨와 만난 정황을 8월10일 ‘주간동아’에 자세히 밝혔다.

    2001년 10월16일 오전, 인천경기지방병무청 징병검사과 7급 직원이었던 K씨는 출근 직후 병무비리 혐의로 서울지검 특수1부에 긴급 체포되었다. K씨는 지난 98년 대구경북지방병무청 근무 시절 프로축구 이동국 선수의 아버지로부터 이선수의 병역을 면제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2000만원을 받았다가 나중에 돌려준 혐의를 받고 있었다.

    “김대업, 양복차림 단독으로 심문”
    K씨는 곧바로 서울지검 11층 특수1부 특별조사실로 들어갔다. 간이침대 1개, 책상 1개, 의자 2개, 화장실이 있는 매우 협소한 방이었다. 이곳에서 K씨는 검찰 심문을 받았다. 검찰은 오랫동안 벽을 보고 서 있게 하거나 조사실 불을 끄는 방법 등으로 K씨를 압박했다고 한다. 그러나 K씨는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다음날 새벽 3시쯤 K씨는 부근 경찰서 유치장에 보내졌다가 오전 9시쯤 다시 같은 조사실로 이송됐다. 이후 검찰 조사가 계속됐지만 K씨는 혐의 사실을 시인하지 않았다. K씨는 “긴급체포는 48시간이 기한이어서 그 시간 동안 혐의 내용을 부인하면 풀려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손목시계를 자주 봤기 때문에 시간대별 당시 상황을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K씨에 따르면 10월17일 밤 10시쯤 김대업씨가 조사실에 처음 들어왔다. 김대업씨는 티셔츠에 상·하의 양복 차림이었다고 한다. 검찰수사관 이모 계장이 의자에 앉아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K씨를 심문하는 동안 김대업씨는 침대에 걸터앉거나 조사실을 서성거리며 K씨를 추궁했다는 것. 김대업씨는 조사실 안팎을 들락거리면서 약 1시간 동안 K씨 심문에 동참했다고 한다. 이계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조사실에는 김대업씨와 K씨만 남게 됐다. 김대업씨는 20여 분에 걸쳐 K씨를 단독 심문했다고 한다.

    K씨는 “특수1부 특별조사실은 검찰수사관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김대업씨는 수의를 걸치지 않은 상태였고, 교도관도 없었기 때문에 김대업씨가 검찰수사관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말했다. K씨에 따르면 김대업씨는 K씨에게 ‘솔직하게 다 얘기하면 검사님에게 말씀드려서 선처받도록 해주겠다. 검사님의 성격이 화끈해서 다 해준다. 이것 말고 더 큰 병무비리를 말해보라’면서 K씨의 자백을 유도했다.

    K씨는 김대업씨와의 심문 직후 돈 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K씨의 말. “내가 법을 어기고 뇌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 사건 수사과정에서 김대업씨가 수사관 행세한 것도 사실이다. 위압적인 조사실에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검사의 선처를 들먹이면서 범행 자백을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수사행위가 아닌가. 김대업씨의 이러한 행위는 참고인의 행위로 볼 수 없다. 검찰이 김대업 같은 재소자를 검찰수사관으로 믿게 해 나를 심문하도록 한 것에 대해 나는 지금도 분노를 느낀다.”

    김대업 “만났지만 1대 1 대면 없었다”

    K씨는 자신의 수사에 참여한 사람이 김대업이라는 재소자였다는 사실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뒤 재소자 사이에서 떠도는 김대업 관련 소문을 듣고 알게 됐다. 공교롭게 K씨는 2001년 11월9일 서울지법으로 가는 호송차 안에서 수의 차림의 김대업씨를 다시 만났다. 그때 김대업씨가 재소자라는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처음 확인하게 됐다는 것. K씨는 순간 너무 화가 나 김씨의 발을 걷어찼다고 한다. 김대업씨도 K씨를 알아봤다고 한다. 서울지법에 도착해 대기하는 동안 K씨는 김대업씨에게 “검찰수사관도 죄를 저지르는 모양이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K씨는 최근 김대업씨를 단지 피진정인, 참고인으로 활용했을 뿐이라는 검찰 해명을 접한 뒤 자신이 겪은 일을 밝혀야겠다는 차원에서 인터넷에 자신의 사연 일부를 올렸다. K씨는 검찰 조사실에서 재소자로부터 심문받았다는 것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다른 재소자들에게도 얘기했다고 한다. K씨로부터 그 말을 들은 재소자 중에는 무죄선고를 받고 현재 원직에 복귀한 경찰관 김모씨도 있다. 김씨는 8월10일 기자에게 “K씨가 2001년 10월 당시 그런 말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 부부장검사였던 노명선 검사(현재 주일 한국대사관 근무)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병역비리 피의자를 수사하는 도중 검사나 수사계장이 잘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김대업씨를 입회시켜 김대업씨에게 묻게 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노검사는 “이러한 행위는 범죄를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공무원사칭 교사와 같은 불법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검사는 이동국 선수 사건 때 김대업씨가 수사에 참여했는지 여부, 김대업씨가 특별조사실에서 피의자를 단독 심문했는지 여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업씨는 “나는 이동국 선수 사건 때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수사를 도왔다. 그때 K씨를 만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수의를 입고 있었고 K씨와 1대 1로 대면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씨는 “나는 정치권 누구와도 이해관계가 없으며, 검찰을 상대로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낼 이유가 없다”고 재반박했다.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의 김대업씨 활동을 박영관 특수1부장에게도 보고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노검사는 “박영관 특수1부장에게 김대업씨 활동과 관련해 여러 차례 보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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