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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라스베이거스 만들었다?

인류 문화 바꾼 ‘위대한 발명’ 1백년 … 의약·화학·영화산업 등 지대한 공헌

  • < 이한음/ 과학 칼럼니스트 > ehanum@freechal.com

‘에어컨’이 라스베이거스 만들었다?

‘에어컨’이 라스베이거스 만들었다?
지난 7월17일은 제헌절이자 에어컨탄생 백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1902년에 탄생한 에어컨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가전제품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인류의 생활 방식을 바꿔놓은 대단한 발명품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더위와 추위는 인간이 극복해야 할 자연의 적이다. 수많은 냉·난방 장치를 만들어냈지만 더위와 추위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오래 전부터 추위는 물론 더위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야 했고, 그 결과 에어컨도 세상에 등장할 수 있었다.

오래 전 로마 황제들은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 정원을 식히기 위해 설산(雪山)의 눈을 가져다 정원에 쌓아놓게 했고,바그다드의 칼리프는 두 개의 벽 사이에 눈과 얼음 덩어리를 넣어놓고 노예들에게 부채질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또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밀라노의 공작 부인을 위해 발로 움직이는 부채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더위를 쫓아내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였다. 미국인 의사 존 고리 박사는 얼음이 든양동이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공기를 불어 병실을 시원하게 했다. 말라리아와 황열 등을 앓고 있는 환자의 열을 식히기 위해 고안된 이 장치가 근대적 의미의 에어컨의 시초일 것이다. 그리고 그 즈음에 프랑스에서 공기중의열과 습기를 몰아내는 암모니아 코일이 최초로 설계됐다. 1902년 에어컨회사 ‘캐리어’의 창업자인 윌리스 H. 캐리어는 이러한 원리들을 이용해 만든 공기 조절 장치를 브루클린의 어느 인쇄소에 설치했다. 높은 열기와 습기로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인쇄소에 기온을 낮추고 습도를 줄이는 에어컨이 등장한 게 1902년 7월17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쓰이는 에어컨의 시작이다.

미국 가정내 보급률 80%



‘에어컨’이 라스베이거스 만들었다?
이렇게 최초의 온도 및 습도 조절 장치가 처음 선을 보였지만, 20세기의 다른 발명품들보다 에어컨은 파급 속도가느렸다. 마침내 대중이 에어컨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1925년 뉴욕 라이벌리극장에서였다. 라이벌리극장이 시원하다는 말이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전해지자 다른 극장에서도 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에어컨은극장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한몫하기도 했다.

이어서 에어컨은 미국 의회(1928년)와 백악관(1929년)에 설치되었고, 1930년대에는 비행기(1938년)와자동차(1939년)에서도 에어컨 바람을 느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1953년까지 판매된 에어컨이 장착된 차는 1만여 대에 불과했다. 에어컨이 가정에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1955년, 개발업자인 윌리엄 르비트가필라델피아 북부에 짓는 주택에 에어컨을 표준 사양에 포함시키면서다.

이제 에어컨은 단순히 온도와 습도 조절만을 하는 장치가 아니다. 창문형, 벽걸이형, 패키지형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발전하면서 공기 정화, 통풍, 쾌적함 등 다양한 기능을 강조하게 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에너지와 환경 친화적인 부분이 강조되면서 고효율, 저소음, 항균, 디자인 등이 에어컨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에어컨 수요가 늘어나,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의 내수가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예측되고 있다. 현재 국내 에어컨 보급률은 35%, 미국은 80%에 이르고 있다. 여름철 전력 수요로 따지면 냉방장치가 전체의 2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어컨’이 라스베이거스 만들었다?
에어컨보다 부채나 선풍기가 낫다는 사람도 많다. 에어컨의 인공적인 바람을 싫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채나선풍기는 사실 공기 자체를 차갑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부채나 선풍기 바람이 피부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증발시키고, 땀이 증발하면서 주위의 열을 빼앗아 시원하게 만드는 원리다. 이와 달리 에어컨은 아예 실내 공기가지닌 열 자체를 밖으로 빼내는 장치다. 냉매가 순환하면서 실내 공기에서 열을 빼앗아, 열교환기를 통해 외부로 방출함으로써 실내가 시원해지는 것이다.

초기의 에어컨은 물이나 암모니아를 냉매로 썼다. 하지만 물은 냉각 효과가 낮고, 암모니아는 독성과 악취를 지니고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한 순간에 해결해 준 것이 흔히 프레온이라고 부르는, 염소와 플루오르가 화합된 탄화수소 화합물이다. 이 물질은 화학적으로 안전하여 거의 완벽하다고 여겨졌지만, 1970년대 이후 오존층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사용이 중지되었다.

현재는 이 물질에 수소를 첨가한 대체물질이 냉매로 쓰이고 있다. 이 물질들은 프레온보다 오존층을 덜 파괴하긴하지만, 마찬가지로 대체되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현재 새로운 대체냉매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중에서 실용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이산화탄소를 들 수 있다. 이산화탄소 역시 지구 온난화의주범이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므로 다른 물질에 비해 해가 적은 편이다.

나노기술이 발달하는 미래에는 냉매 없이 열전소자를 이용한 제품이 실용화될 가능성도 있다. 열전소자는 전기를가하면 한쪽은 뜨거워지고 한쪽은 차가워지는 물질로, 현재는 냉온수기 같은 소규모 장치에 제한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실 이런 방식을 대규모로 이용할 수 있다면, 벽 자체가 에어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실내생활 ‘인간고립’ 부작용도

에어컨의 역사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마샤 애커만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에어컨이 자동차와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에어컨은 사람들을 실내로 끌어들여 상호 접촉을 가로막았으며, 열린 마당과 현관을 두꺼운 문으로 막아 실내를 밀폐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다른관점에서 보면 사적인 독립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한 셈이다.

그뿐 아니라 에어컨은 사회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선 에어컨은 사람들이 더운 여름에도 지치지 않고 더 오래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건물을 사방이 막힌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만들어놓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사람이 영구 거주하기 힘든 무더운 지역에 대도시를 건설할 수 있게 했다. 사막 한가운데 들어선 라스베가스 같은도시는 에어컨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고도의 청정과 항온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 의약, 화학, 영화, 섬유, 식품 가공 등의 산업도 에어컨이 없었다면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실내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냉방병과 레지오넬라균 감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전력부족과 도시 열섬 현상도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에어컨의 미래에는 아직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셈이다.



주간동아 346호 (p70~71)

< 이한음/ 과학 칼럼니스트 > ehanum@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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