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4

2002.07.25

‘인공생명 꿈틀’ 神 은 죽었다 ?

인공지능 넘어서는 프로그램 실용화 단계… 생물체 모방 지능형 로봇도 진화 거듭

  • < 김대공/ 동아사이언스 기자 > a2gong@donga.com

    입력2004-10-14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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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생명 꿈틀’ 神 은 죽었다 ?
    지난 2001년 1월,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는 ‘패션 디자이너여 조심하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구로 시작하는 기사가 실렸다. 자연계의 ‘선택 교배’(selective breeding)와 같은 원리로 최상의 디자인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는 것. 국내 과학자인 연세대 조성배 교수(컴퓨터과학)의 작품이다. 조교수는 옷맵시를 결정하는 인자를 34가지 모양의 목선과 소매 모양, 소매끝, 허리선 등으로 나눴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인자들이 자신과 맞는 모양을 찾아 끝없는 짝짓기를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내에서 자체적인 평가를 거쳐 사용자의 취향에 꼭 들어맞는 최상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

    기존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는 짝짓기부터 그 결과에 대한 평가까지 일일이 프로그래머가 명령하고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디자인 구성 요소와 사용자의 취향, 올 여름의 패션 경향 등 초기 조건만 정해주면 나머지 과정은 프로그램이 알아서 결정한다. 일종의 자기 결정권을 가진 셈이다.

    조교수의 프로그램은 기존의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다른 인공생명 프로그램이다. 퍼지이론이나 카오스 이론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인공지능 연구는 로봇이나 세탁기,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에 적용됐지만 환경에 대한 조건과 정보를 미리 입력해야 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예’와 ‘아니오’가 아니라 ‘아마도’ 같은 불확실성을 요구하는 상황이 더 많은 생명체 환경은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로 모방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생명은 단순한 부분의 합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할 인공생명 연구는 생명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생물체가 갖는 자율성과 적응, 학습, 진화, 자기복제와 자기증식 등의 특징을 모방한 뒤, 이를 통합해 인공적인 매체 위에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노력이다. 최근의 연구는 컴퓨터상에서 인공생명을 구현하려는 소프트웨어 분야와 실리콘칩이나 로봇과 같은 하드웨어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진화 알고리즘’이 선두주자



    ‘인공생명 꿈틀’ 神 은 죽었다 ?
    가상공간에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소프트웨어 인공생명 연구의 선두주자는 진화 알고리즘이다. 진화 알고리즘은 생물의 진화와 유전학에 기반한 계산모델로서 현재 인공생명 연구에 견인차 역할을 하는 도구 중 하나다. 부모의 형질이 자식에게 유전되고, 세대 교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성형질이 선택적으로 복제돼 환경에 적응한 개체만 살아남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계산모델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대한 해를 구할 경우, 해가 될 수 있는 집단(개체군)을 정하고 이 집단에 변이(돌연변이) 함수를 도입해 문제의 조건(환경)에 적당한 해(개체)만 선택된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뤄진 돌연변이 중 최적의 해만 골라내는 과정은 인간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의지’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집단을 구성하고 적당한 돌연변이 변수를 도입한 뒤 돌연변이 된 개체 중 조건에 적합한 인자를 선택케 하는 과정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머지 과정은 생물의 진화가 그렇듯 프로그램 내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돌연변이가 생기면 환경에 적합한 개체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된다는 생물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최근 개봉된 애니메이션 ‘스피릿’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장면들이 나온다. 특히 수많은 말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군집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감탄을 자아낸다. 바로 진화 알고리즘을 사용한 결과다. 진화 알고리즘은 이처럼 예술의 범위까지 넘나들며 보다 정교하고 실감나는 표현을 가능케 한다.

    ‘인공생명 꿈틀’ 神 은 죽었다 ?
    진화 알고리즘이 이용되는 대표적인 분야는 지능형 로봇이다. 미지의 행성이나 하수도 내부는 그 환경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프로그래밍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진화 알고리즘을 이용한 인공신경망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능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로봇 내에 설치된 인공신경망 구조는 미지의 환경에 부딪힐 때마다 적당한 행동패턴을 취하게 한다. 상황에 따라 선택된 행동은 기억되며 여러 세대에 걸친 돌연변이와 선택 과정을 통해 최적의 행동패턴으로 진화한다. 인공신경망은 실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행성 탐험용 로봇이나 하수도 청소 로봇의 제어기를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

    또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애완 로봇이나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에도 진화 알고리즘이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소니사가 출시한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는 매우 정교한 제어기를 갖고 있어 몇몇 행동은 살아 있는 강아지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아이보의 제어기 역시 프로그래머가 설계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행동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이를 진화 알고리즘으로 보완해 주인과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우정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생명체를 모방하려는 인공생명 연구는 하드웨어도 진화시키고 있다. 하드웨어를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복제하고 유전적 변이를 적용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바로 ‘재구성이 가능한 하드웨어’(reconfigurable hardware)다.

    재구성이 가능한 하드웨어는 환경의 변화나 오차를 이용해 자율적으로 구조를 바꿔, 구조는 물론 기능까지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반도체 집적회로를 말한다. 따라서 복잡한 반도체 제조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다양한 구조의 반도체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이 시스템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결함을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하드웨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어 주목된다.

    ‘인공생명 꿈틀’ 神 은 죽었다 ?
    진화 하드웨어는 우주선의 생명력을 늘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에서는 진화형 우주시스템을 연구중인데, 이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진화 하드웨어다. 우주선의 각종 기능을 제어하는 프로세서들은 미지의 우주공간에서 급격한 온도나 습도 등의 환경 변화로 오동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때 진화 하드웨어칩을 이용하면 사람이 수리하거나 교체할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우주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우주정거장이나 인공위성에 새로운 임무를 부여할 때도 진화 하드웨어칩을 이용하면 번거로운 과정 없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진화 하드웨어칩은 디지털 이동통신 분야에도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술이 될 전망이다. 디지털 통신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수신 과정에서 망가진 신호를 복구하는 기술인 ‘채널 균등화’(channel equalization) 문제다. 디지털 통신은 정해진 대역 내에서 신호를 주고받지만 정보를 보내는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일부 신호는 제대로 수신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진화 하드웨어칩을 이용하면 환경에 따라 변하는 디지털 정보도 깨끗이 복구할 수 있다.

    인공생명 연구는 아직 그 구체적 성과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한 인공생명 연구는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복제양 돌리에 이은 복제인간의 가능성, 외계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과 함께 인공생명은 다음과 같이 되묻고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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