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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세계의 맥주가 달려온다

“맥주, 달콤쌉싸름한 맛의 환희”

소설가 조경란의 맥주 예찬 “그것은 쓰라린 행복 … 첫 잔은 잊기 위해 마신다”

  • < 조경란/ 소설가 > rebird@hitel.net

“맥주, 달콤쌉싸름한 맛의 환희”

“맥주, 달콤쌉싸름한 맛의 환희”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밤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스웨터, 일요일 늦은 아침에 먹는 크루아상과 버터, 이탈리아 와인 바롤로와 리델 잔, 그리고 차갑고 와일드한 맛의 맥주.

필립 들레름이라는 프랑스 작가는 ‘첫 맥주 한 모금…’이라는 짧은 글에서 이렇게 썼다. ‘맥주를 들이켜면 숨소리가 나고, 혀가 달싹댄다. 무한을 향해서 열리는, 믿을 수 없는 기쁨의 느낌. 동시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장 좋은 기쁨은 벌써 맛보아버렸다는 것을. 이제 맥주를 마실수록 기쁨은 더욱더 줄어든다. 그것은 쓰라린 행복이다. 우리는 첫 잔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나는 맥주 첫 모금을 들이켰을 때의 그 두근거림, 혓바닥에 고이는 달콤쌉싸름한 맛의 환희를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과는 첫 만남이라도 금방 허물없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얼마 전부터는 와인에 맛을 들이기도 했지만, 역시 장소와 분위기를 가리지 않고 마실 수 있는 술은 단연 맥주가 최고다.

월드컵이 열린 기간중 서울 등 대도시 일부 지역에서는 당일 생산분만으로는 충분치 못해 재고로 주문 물량을 댔으며 공급량이 달려 생맥주를 팔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고 한다. 길거리응원 덕분에 생맥주 판매가 전례없는 호조를 보였던 것이다.

“원고 끝내고 마시는 맛 지상 최고”



월드컵 경기를 지켜보는 동안 나 역시 맥주를 마셨다.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아버지와도 마셨고 막내동생, 그리고 함께 응원을 하던 모르는 사람들과도 잔을 부딪쳤다. 자랑스런 우리 선수들이 골을 넣거나 역전승을 했을 때는 모두들 새 병을 따 다시 축배의 잔을 들었다.

맥주를 즐기기 위해서는, 기원전 4000년경 지금의 중동 지역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수메르 민족이 처음으로 맥주를 제조했다는 역사적인 사실까지 알 필요는 없다. 차가운 컵과 4∼8℃ 정도로 냉장된 맥주,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만 있으면 된다.

장소? 그건 한강공원의 벤치도 좋고 먼길 떠나는 고속버스 안도 좋고 축제의 자리에서라면 더욱 좋다. 맥주를 마실 때는 거품과 함께 단숨에 쭉 들이켜야 맥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아, 맥주 이야기를 쓰고 있으려니 벌써부터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얼마 전 갑자기 가슴 쪽의 근육이 아파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맹렬히 싸우고 돌아서서 이제는 만나지 않게 된 친구들, 이해할 수 있었으나 끝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 새로 써야 하는 글들, 그리고 더 이상 맥주를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나는 그 상황에서도 이젠 맥주를 마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상당히 짓눌렸으며 곧 침울해지고 말았다. 그건 나의 몇 안 되는 즐거움을 박탈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주로 심야극장을 찾는다. 영화를 보고 나온 새벽 한두 시쯤 마시는 한 병의 맥주는 나에게 늘 신선한 기쁨을 준다. 한 편의 원고를 끝내고 마시는 맥주는 그야말로 지상 최고의 음식이다.

한 달 내내 지속되었던 축제가 모두 끝났다. 월드컵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은 한동안 공허감과 허탈감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제 축제를 뒤로한 채 일상에서의 작은 기쁨을 찾는 것일 게다. 일상의 작은 기쁨. 그것은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 고된 노동을 끝낸 뒤 가까운 벗과 맥주 한잔 마시는 여유와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행복을 찾는 방법은 뜻밖에도 간단할 때가 있다. 이제 여름이다. 맥주의 계절이다. 맥주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독특한 효모 맛과 뒷맛이 깔끔한 맛의 맥주를 원한다면 히딩크의 나라인 네덜란드산 하이네켄이나 글로쉬를, 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이 이는 맥주를 원한다면 아일랜드 맥주인 기네스를, 우아한 맛의 맥주를 원한다면 필리핀의 산미구엘을, 빛깔이 아름다운 맥주를 원한다면 암스텔을, 달고 상큼한 맛을 원한다면 멕시코의 코로나를, 강하고 쌉싸름한 맛을 원한다면 레페 브라운을 권한다. 단, 과음은 금물이다.



주간동아 344호 (p66~66)

< 조경란/ 소설가 > rebird@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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