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4

2002.07.25

달러 ‘기침’에 세계경제 ‘몸살’

달러 위주 금융체제 재점검 필요… ‘달러 추락’ 국가 공조도 힘들어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14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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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우량기업들의 잇따른 회계부정 사건은 회복 국면에 접어든 미국 경제의 환부에 소금을 뿌려대고 있다. 미국 경제는 지난 1·4분기 예상을 뛰어넘은 6.1%의 고성장으로 경기 회복의 청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기업들의 재고 조정에 따른 성장이라는 평가도 있기는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던 미국 경제를 고성장 쪽으로 확실히 돌려놓은 것만은 사실. 실물 부문의 이러한 회복세에 발목을 걸고 나온 것이 바로 금융 부문의 불확실성이다. 지속적인 달러 약세가 대표적인 악재.

    특히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지난해 3·4분기 913억 달러에서 올해 1·4분기 1125억 달러로 늘어나면서 달러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동안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도 미국이 ‘강한 달러’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자본 유입 부문에서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론 사태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진 회계부정 사건은 이러한 상황도 단숨에 뒤바꿔놓았다. 미국 기업들의 신뢰 상실로 인해 외국인들의 미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이미 지난해 4·4분기 337억 달러에서 올해 1·4분기 176억 달러로 감소했다.

    IMF ‘달러 약세’ 제동에 유럽은 시큰둥

    일본 역시 달러 약세로 인한 상대적 엔화 강세로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 장기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다 고이즈미총리의 구조개혁 정책이 약발을 발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일본에 엔화 강세는 외통수나 다름없는 형편. 따라서 미국 정부가 외쳐온 ‘강한 달러’ 정책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도 그동안 엔화 약세를 즐겨온 일본을 향해 ‘이제는 우리 차례’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명시적으로 달러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경우 달러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대규모 투자자산이 미국시장 밖으로 이탈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달러의 추락이 세계 경제를 위해 ‘약’보다는 ‘독’에 가깝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간 협력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다.



    지난 85년 플라자 합의 당시만 해도 일본이 달러화의 인위적인 평가절하를 떠안아주는 식의 국가간 공조가 가능했다. 당시 선진 5개국들은 재무장관 회담을 갖고 달러당 260엔대까지 치솟았던 ‘강한 달러’를 선진국들의 시장개입을 통해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하기로 했던 것. 치솟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국제금융시장이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선진국들은 동의했다. 당시 이러한 국가간 공조가 가능했던 것은 엄청난 무역흑자를 내면서 제조업 왕국을 구가하던 일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로화나 엔화 모두 ‘제 코가 석 자인 형편’인데다 정책 공조 의지조차도 확실치 않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달러 약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국제 사회의 개입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유럽중앙은행(ECB)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아시아 국가들이 그동안 성장에만 집착해서 환율이 불안해지면 정부가 개입해서 진정시키는 손쉬운 방식으로 대처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서 “달러 위주의 금융체제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달러가 기침하면 세계 경제가 몸살에 걸리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 일본과 유럽 경제 때문에라도 당장 달러라는 부동의 수비수를 제칠 만한 골든골의 주인공은 당분간 나타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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