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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정책 ‘소리 없는 전쟁’ 치열했다

이태복 前 복지부 장관측 “비서실서 장관 보고조차 막았다” 주장… 약값 둘러싼 갈등 노출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약가정책 ‘소리 없는 전쟁’ 치열했다

약가정책 ‘소리 없는 전쟁’ 치열했다
‘7·11개각’으로 재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퇴임사가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장관직을 떠나며’라는 퇴임사를 통해 그는 자신의 경질이 ‘다국적 제약사의 심각한 저항과 다양한 통로를 통한 압력 때문’이라고 못박고, ‘청와대는 도와달라는 말 이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퇴임 당시 이 전 장관은 “청와대가 제약사들로부터 로비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정황상 가능한 일이다”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 전 장관은 이임식이 끝난 후 서울 신도림동 자신의 자택에 칩거하며 일절 언론의 인터뷰를 사절하고 있다. 청와대 복지노동수석비서관을 거친 그로서는 청와대에 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입장.

“기존의 정책 유지 위한 마지막 선택”

그의 한 측근은 “장관의 퇴임 발언은 청와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떠난 후 기존의 약가 인하정책을 유지시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제약사의 파상적 압력에 청와대와 복지부가 더 이상 흔들리지 말라는 경고이자, 압력의 실상을 공개함으로써 제약사의 공세를 둔화시키려 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로비’라는 말을 퇴임사에 사용하지 않았다. ‘저항’이나 ‘압력’이라고 표현했을 뿐, 로비에 대해서는 가능성만을 인정했을 따름이다.

이 전 장관이 경질되자 제약업계와 약사회 의사회 등 범의료계에서는 “독선적이고 무리한 약가인하 정책과 그 추진 과정에서의 복지부 내 불협화음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으며, 복지부 직원들 중 상당수도 표정관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반면 시민단체와 재야 복지계에서는 “타협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그의 업무 스타일로 인해 인사상, 금전상 손해를 본 관료조직과 제약사, 이해 단체들에 의해 이용당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극심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의 이장관 전격 경질은 청와대가 어느 쪽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청와대는 “다국적 제약사의 로비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부인했지만 ‘압력’과 ‘저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 장관과 청와대, 제약업계 그리고 관련 이해단체 간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리 없는 전쟁이었죠. 대통령에게 약가인하 정책과 관련된 보고를 하려 했지만 청와대 비서진은 독대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7월중으로 다시 한번 자세한 보고를 하려 했는데 기회도 얻지 못하고 이런 일을 당했어요.” 이 전 장관의 정책을 보좌하던 최측근 인사는 약품가격을 대대적으로 인하해 보험재정 단기수지를 정상화하려는 이 전 장관과 이를 제지하려는 제약사 간의 줄다리기를 ‘소리 없는 전쟁’이라 표현했다. 그 줄다리기의 한복판에 청와대가 서 있었지만 청와대 비서실은 이 전 장관이 대통령에게 자신의 속뜻을 전할 기회마저 박탈했다는 것이다.

약가정책 ‘소리 없는 전쟁’ 치열했다
이 전 장관은 복지노동수석비서관 시절 틈만 나면 “약품 가격에 거품이 너무 많다”며 파탄 지경에 이른 보험재정 안정의 핵심을 약가정책의 개혁으로 단정한 바 있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 물망에 오른 것도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전임자인 김원길 전 장관이 지난해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고,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의사들의 진료 수입(보험수가)을 인하해 놓았으니, 이제 공격대상은 약품가격, 즉 약가 인하를 통한 제약사들의 ‘고통분담’밖에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온 게 약품 재평가 작업과 최저가 실거래제도, 참조가격제 등의 초강경 약가인하 정책이다. 장관에 취임한 그는 약품가격의 실거래가를 파악하기 위해 테스크 포스팀을 가동하는 한편, 높게 평가된 가격을 무더기로 인하했다. 그것도 약가심의위원회의 절차를 통하지 않고 모두 장관 고시를 통해 결재 다음날부터 약가를 인하토록 했다. 재임 5개월 동안 낸 고시가 지난해 전체 고시와 비슷할 정도.

특히 약품의 특허권이 만료됐는데도 개발비용이 포함된 독점적 마진율을 고수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현재 유통되는 동일 성분(생물학적 동등성 인정)의 약가 중 최저가에 맞춰 보험급여를 지급한다는 최저 실거래가제도 실시 발표는 다국적 제약사들을 들끓게 했다. 거래약품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준으로 상한선을 긋고, 그 가격으로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현 실거래가상환제를 보험재정 악화의 주범으로 인식한 이 전장관의 야심찬 작품이었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들은 복지부의 원가표 제출 요구를 거부한 데 이어, 6월27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행정법원에 제출하며 맞대응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제약사들은 자신들의 로비력을 총동원했다. 최근에는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주한 미대사 등 외국 대사들이 6차례나 이 전장관을 공식 면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장관은 양보는커녕 약가 인하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제약사들에게 재확인시켰다.

심지어 보건복지부장관을 두 번씩이나 지내고 4선 국회의원(보건복지위 소속) 출신인 현 김정수 제약협회장의 공식 면담 제의도 “더 이상 줄 것이 없다”며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 모 제약 관련 전문지의 창간 기념일 행사에 축하인사를 하러 간 이 전장관은 축하사에서 “약가 인하는 장관직을 걸고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해, 김회장과 얼굴을 붉힌 일이 있을 정도.

경질 후 무기 연기된 ‘실거래가제’

이 전 장관의 적은 내부에도 많았다. 복지부 내 고위 관료들은 이 전 장관의 취임과 함께 타격을 받았다. 그는 취임 후 나이가 많은 국장급 2명과 서기관 1명을 대기발령한 데 이어, 지난 5월 약가인하 정책에 반대하는 국장 2명을 추가로 대기 발령했다. 6개월 이상 보직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동 해임되는 상황. 때문에 복지부 내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과 함께 이 전 장관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쌓여갔다.

“장관은 복지부 관료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장관 취임 직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국장과 간부들에 대한 평가를 내렸고, 그것을 기준으로 인사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실제 움직일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이 전 장관의 측근)

복지부 내부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자 제약업계에서는 이 전 장관을 독선적인 사람으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기관 보직을 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사를 바로 과장 자리로 발령하는 것은 복지부내 황태자를 심기 위한 속셈이었다”고 이 전 장관을 비난했다.

그러나 “심지어 지난해 3·4분기에 시장조사를 마치고 약가를 인하해야 할 약품이 있었는데, 이를 올 5월에야 보고를 하니 장관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지난해 가격인하를 했으면 수백억원의 보험재정을 절약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관행상의 15일간의 유예기간 없이 내일 당장 약가를 인하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거죠.” 이 전 장관의 핵심 비서관은 “해도 너무 하는 것은 장관이 아니라 복지부 관료들”이라고 잘라 말한다.

청와대가 이 전 장관의 약가 인하정책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약가 인하정책의 핵심인 최저 실거래가 제도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7월 들어 두 번씩이나 거부당한 것. 최저 실거래가 제도가 시장 경쟁질서를 흐트리고, 약품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다국적 기업에서 원가표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 국세청이나 검찰에서 나섰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정부부처 내에서도 협조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저 실거래가제도의 경우에도 경질되기 직전 규제위와 통과시키기로 합의를 봤는데, 이 장관이 경질되면서 심의 자체가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이 장관이 퇴임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이 전 장관의 측근인사)

청와대는 과연 다국적 제약업체들로부터 로비를 받은 것일까. 아니면 범 의료계와 관료조직의 ‘압력’과 ‘저항’ 앞에 굴복한 것일까. 문제는 이 전 장관의 약가 인하정책이 실제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에게 얼마나 유용한 제도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점. 이 전 장관이 ‘신변 정리’를 핑계로 7월15일 서둘러 지방여행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절망감을 반영한다. 장고의 여행을 떠난 이 전 장관의 행보에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주간동아 344호 (p14~15)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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