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반칙왕 오노 영웅 만들기

  • < 솔트레이크=김상수 기자/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 ssoo@donga.com

    입력2004-10-19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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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칙왕 오노 영웅 만들기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2월25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제19회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m 경기에서 한국의 김동성이 금메달을 ‘날치기’당한 다음날 한 미국 택시운전사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한국 편을 들었다. 뿐만 아니었다. 대회 자원봉사자 등 많은 미국인들에게 물어봐도 반응은 비슷했다. 단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법을 아는’ 미국인들의 특성에서 나온 발언이었을까.

    외신기자들의 반응은 한술 더 떴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기자들도 ‘할리우드 액션’이라며 자기 일마냥 흥분했다. 특히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일본 기자들이 가장 격분했다. 1000m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 룸에 내려간 한국 기자들은 오히려 일본 신문방송 기자들에게 인터뷰 당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이처럼 외신기자들과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이번 동계올림픽이 철저히 ‘미국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기 때문. 유타주 솔트레이크에서 3년째 생활하는 한국교민 김성배씨는 “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지난해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이 철저히 배타적인 애국주의로 돌아섰다는 걸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미국을 따르지 않는 국가는 모두 적”이라고 공표한 부시 대통령의 표현처럼 결과적으로 이번 올림픽도 이런 ‘배타적 애국주의’를 자국민에게 강조하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던 셈.

    이를 위한 홍보 수단은 언론이었다. 이번 동계올림픽 중계권을 따낸 NBC 방송은 미국 내 네트워크에서 70% 이상을 자국 선수 경기 중계에만 할애해 시청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미국의 유일한 전국지 USA투데이도 마찬가지. USA투데이는 대회기간 내내 ‘미국 선수들 영웅 만들기’로 지면을 깔았다.

    쇼트트랙의 아폴로 안톤 오노의 경우도 언론을 통해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케이스. 올림픽이 열리기 전엔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였고 대회기간 내내 그의 이름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미국 선수들 가운데 최다 메달리스트로 전망된 데다 19세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사전 작업이 필요했던 셈이다. 이런 작업이 효과가 있었는지 대회기간중 현지의 미국인들 사이에선 오노의 턱수염 따라 붙이기가 큰 유행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 만들기는 곧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인들의 은근한 인종차별주의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 것. USA투데이는 대회기간 내내 일본계인 오노를 ‘American’(미국인)으로 썼지만 24일자에서는 유일하게 ‘Japa nese-American’(일본계 미국인)으로 표현했다. 전날 열린 500m 경기에서 오노가 반칙으로 실격패를 당한 후의 일이었다. 좋은 일엔 다 같은 ‘미국인’이지만 나쁜 일이 생길 땐 꼭 출신지를 밝히는 것이 미국 언론의 오랜 특성 가운데 하나다. ‘단일 민족국가’인 먼 나라에서 날아온 기자로서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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