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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박’의 레인저스 챔피언 등극

2002 가상 시나리오 … 전반기에만 9승, 2년 연속 올스타, 지구 우승 1등 공신 ‘화려한 시즌’

  • <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 rough@sportstoday.co.kr

‘텍사스 박’의 레인저스 챔피언 등극

그가 일부러 못 던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의 관계도 원만합니다. 우리는 한 팀입니다.”

2002년 6월11일. 박찬호(29·텍사스 레인저스)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텍사스 댈러스 모닝뉴스, 스타-텔레그램 등 지역 언론사가 총출동한 가운데 박찬호는 차분히 자신의 심정을 표명했다. 전반기 두 달 가량 자신이 등판한 선발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 존 로커가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 데 대한 심경을 얘기하고자 일부러 기자들을 불러모은 것.

언론에서는 연일 존 로커의 태업 의혹을 보도하며 초점을 박찬호와의 관계에 맞추고 있었다. 그때까지 박찬호의 성적은 5승5패. 공교롭게 5승은 전부 완투승이었고 5패는 1~2점 앞선 가운데 존 로커가 등판해 뒤집어진 결과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일이었다. 로커는 제2선발 케니 로저스가 등판한 경기서는 제 몫을 다해 더욱 대비됐다.

관심 모은 이치로와 대결도 ‘완승’

존 로커는 팀의 외톨이였다. 2년 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내뱉었던 인종차별 발언을 철회하지 않은 것이 여전히 말썽의 원인이었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베이스볼아메리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도 그때 심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못박았던 것. 로커의 발언은 팀 내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없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심기를 건드렸다. 확인되지 않은 클럽하우스 내 기물 파손 사태도 입소문으로 번져가던 참. 이 와중에 유독 팀 성적을 둘러싸고 박찬호-존 로커의 악연이 도드라진 것이다.



그러나 박찬호는 이미 미국야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그는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 던지고 달리는 프로스포츠의 속성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의혹이 팀 성적에 방해가 된다 싶자 인터뷰를 자청해 아예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해 팀 화합을 주도한 것이다. 텍사스의 별, 제1선발다운 태도였다.

시애틀의 2년 연속 독주로 끝나는가 싶던 2002시즌 전반기는 다행히도 4게임차로 뒤진 채 종료됐다. 박찬호의 인터뷰 직후 텍사스의 성적이 수직 상승세를 그려나간 덕분이었다. 박찬호의 전반기는 눈부셨다. 4월2일 오클랜드와의 원정 개막전(네트워크 콜리세움)에 선발 등판해 9이닝 4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제1선발다운 면모를 과시했는가 하면, 전반기 16경기 등판 동안 완투 7차례, 퀄리티 피칭(6이닝 3실점 이하의 성적) 10회를 넘겼다. 최약체 텍사스 마운드는 에이스의 역투로 제 모습을 찾아갔다. 2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은 당연한 결과였다.

LA시절의 박찬호와 ‘텍사스 박’은 여러모로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우선 덥고 습한 텍사스의 날씨는 박찬호에게 제격이었다. ‘여름의 사나이’로 불리는 박찬호는 그간의 허리 통증을 말끔히 씻고 꾸준한 성적을 보여줬다. 또 하나, 그는 ‘일본야구의 영웅’인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치로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이치로와의 전반기 대결에서 그는 단 2개의 내야안타만 내주는 등 16타수 2피안타, 3볼넷의 성적을 보여줬다. 항상 여유롭던 이치로도 박찬호와 대결을 마칠 때마다 신경질적인 태도로 일관했을 정도다.

박찬호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메이저리그 최강급을 자랑하는 텍사스 타선 덕분. 10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이반 로드리게스와 메이저리그 사상 유격수 최다 홈런(53개) 기록을 갖고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I로드- A로드 듀오의 파워, 게다가 승부처마다 터진 라파엘 팔메이로의 홈런은 박찬호의 연승행진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LA다저스 시절로 따지면 박찬호는 3명의 게리 셰필드와 함께 뛰고 있는 셈이다. 클린업 트리오 A로드리게스-팔메이로-I로드리게스는 시즌 내내 합작에 성공, 140홈런 350타점 등을 기록하면서 텍사스 방망이의 막강 파워를 과시했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124홈런, 323타점 등으로 타선을 주도하더니 올해에는 더욱 원숙한 타격 솜씨를 발휘했다. 여기에 제리 네론 감독의 전폭적인 지원, 마이너리그 시절 사형(師兄)이나 다름없던 오렐 허샤이저 단장보좌역의 후원도 박찬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전반기 9승7패에 머문 박찬호는 타선의 폭발과 함께 연승행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박찬호는 시애틀과 뉴욕 양키스 등 메이저리그 최강팀과의 경기에서 무패행진을 펼쳐 강한 인상을 남긴다. 8월 톱타자 프랭크 캐털로너의 장딴지 부상과 말썽꾸러기 칼 에버렛이 또다시 주루 플레이 도중 심판에게 폭언을 퍼부어 팀내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박찬호의 특급 피칭은 계속됐다.

텍사스는 61년 창단 후(전신 워싱턴 세니터즈 포함) 월드시리즈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팀이다. 98~99년엔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거둬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맹주를 자처했으나 2000~2001년 2년 연속 지구 최하위로 주저앉았다. 박찬호는 시즌 마지막 시애틀과의 경기를 완투승으로 장식해 2년 연속 최하위의 설움을 달래고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결정지었다.

10월7일. 양키스와의 리그 챔피언 진출 결정전을 앞둔 시점. 자연스레 화제는 박찬호 대 뉴욕 양키스였다. 올 시즌 양키스는 유독 박찬호 등판 경기에서만 모두 패했다. 특히 주포 제이슨 지암비는 박찬호에게 무안타의 수모를 당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텍사스와의 디비전시리즈서 3전 전승(96, 98, 99년)을 거둔 양키스가 올해는 대단한 상대를 만난 것이다. 조 토리 감독은 시즌 내내 “박찬호는 대단한 투수다. (그를 잡지 못한 것은) 팀의 대단한 실수 중 하나”라고 털어놓았을 정도.

디비전시리즈 1차전은 박찬호와 투구 스타일 면에서 자주 비교되는 마이크 무시나와의 맞대결. 박찬호는 9회까지 완투 대결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듯했다. 박찬호는 5피안타, 3볼넷. 무시나는 4피안타, 2볼넷. 연장으로 넘어가는 듯하던 경기는 말썽꾸러기 칼 에버렛의 결승 솔로포로 텍사스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이후 내리 3연패, 텍사스는 양키스의 벽을 또다시 넘어서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만다. 4차전 선발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박찬호의 선발 등판을 점치기도 했으나 박찬호는 1차전서 이미 140개가 넘는 투구 수를 기록했다. 박찬호의 텍사스는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지만 2년 연속 꼴찌에서 디비전시리즈 진출이라는,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2001년 12월23일 텍사스 입단 인터뷰에서 박찬호는 “다저스와 다저스의 팬들은 울고 있을지 모른다”고 회한 어린 목소리로 말한 바 있다. 실제로 2002년의 다저스는 총체적 붕괴를 맛봤다. 2년간 1400만 달러에 영입한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는 또다시 팔꿈치 부상으로 인대접합 수술을 해야 했고, 마이너리그에서조차 제대로 선수 수혈이 되지 않아 시즌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LA타임스 등은 지난 90년대 초반 페드로 마르티네스(보스턴)의 방출에 이어 박찬호와의 재계약 포기를 다저스 100년사에서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버스는 이미 떠난 뒤. 박찬호는 2002시즌 종료 후 베벌리힐스의 저택을 처분한 뒤 텍사스의 주도(州都) 알링턴으로 이주했다. 박찬호는 LA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이제 놀란 라이언의 고장, 텍사스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있다.



주간동아 316호 (p68~69)

<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 rough@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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