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3

2001.12.13

“수출이 아니라 선물로 생각하고 보냈다”

99년부터 지난 9월까지 결제 한번 없이 65억원 미납 … 현금으로 사 외상으로 파는 ‘이상한 장사’ 계속할 텐가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입력2004-12-02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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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이 아니라 선물로 생각하고 보냈다”
    북한이 한국 기업과의 연불(외상)무역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아산과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지난 98년부터 2000년까지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측과 연불수출 계약을 체결, 물품을 북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아태측은 “99년부터 대금결제를 하겠다”는 계약서를 무시한 채 최근까지 대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지난 9월 현재 연불수출에 대한 북측의 미납금은 65억원 수준. 그러나 미납금이 매월 수십만 달러가 추가되고 있으며 북측은 내부 경제사정을 이유로 결제하지 않거나 연기할 것으로 보여 300여억원 대부분을 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남북 교역현황(지난 95년부터 금년 9월 말까지 집계, 통일부 작성)을 분석한 결과 밝혀진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연불교역에 나선 기업은 현대상선 현대아산 삼성전자 A가구 등 4개사로 규모는 총 14건에 걸쳐 300억원 정도. 교역 물품은 TV 등 가전제품과 침대, 자동차 등이다.

    TV, 침대, 자동차 등 4개사 총 14건

    “수출이 아니라 선물로 생각하고 보냈다”
    대북교역의 첫 테이프를 끊은 기업은 현대상선. 지난 98년 6월 소 떼를 싣고 간 트럭 100대(40여억원)를 수출한 현대상선은 98년 10월 다이너스티 등 9개 차종 20여대(6억5000만원)를 추가로 반출했다. 98년 12월에는 아토스 등 소형차 50대를 추가로 선적, 40억원 정도의 교역량을 기록했다.

    박세용 당시 현대상선 대표와 아태측이 맺은 계약서에 따르면 아태측은 차량을 넘겨받은 2년 후(2000년 6월)부터 차량대금을 현대상선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통일부가 집계한 현황에 따르면 2001년 9월 현재까지 아태측은 대금결제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계약 불이행시 제재규정이 없다는 것. ‘계약서에 규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일반 판례 혹은 쌍방이 합의해 처리한다’는 포괄적 계약내용이 전부다.



    다만 현대측이 전달한 다이너스티 등 9개 차종의 경우 “원금과 이자를 인도일로부터 1년이 지난 날(99년10월)부터 3년 내 분할 상환하며 관광요금에서 공제 충당한다”고 계약서에 명시, 금강산관광대금과 상계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놓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현대측은 사문화했고 지금까지 연불대금과 금강산관광대금의 상계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한 관계자는 “자동차의 경우 인도적 지원품목(식량, 의료품 등)이 아니기 때문에 무상 지원할 수 없어 수출형식을 빌려 지원한 것”이라며 “북측은 수출이 아닌 지원 또는 선물로 판단하고 있고 우리 정부나 기업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한 재계 인사도 “북측은 정주영 회장이 준 선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이 같은 논쟁이 일자 강인덕 통일부 장관은 “트럭은 식량·의약품 등과 같은 인도적 지원 품목이 아니므로 소를 싣고 간 트럭을 북한에 두고 올 경우 교역 차원에서 돈을 받고 팔든지 연불(외상무역) 형식으로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수출이 아니라 선물로 생각하고 보냈다”
    금강산관광사업을 맡고 있는 현대아산의 연불교역 금액은 4개사 중 규모가 가장 큰 130여억원 정도. 1999년 10월과 2000년 2월 각각 컬러TV 3만대와 2만대(총 90여억원)를 수출했다. “여름 수해로 많은 가전제품이 못 쓰게 됐으니 TV를 연불수출로 보내달라”는 북측의 요청에 따른 것. 당시 현대는 TV를 생산하지 않아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현금 90여억원을 주고 구입, 북한에 외상으로 전달해 “현금으로 사 외상으로 파는 장사도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당시 통일부는 “대가성 없는 지원은 승인하기 곤란하다”며 정식 수출임을 강조했다.

    현대아산과 아태측은 계약서를 통해 대금지불 조건에 대해 구입 대금에 연 10%의 이자를 포함하여 인도일로부터 2년 후 5년에 걸쳐 균등 분할 상환한다고 합의했으나 첫 납부기일이 지난 11월까지 대금은 한푼도 입금되지 않았다. 해당 연도에 대금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현대는 아태측에 지불할 다른 재무에서 해당금액만큼 공제한다고 계약서에 명시했다. 그러나 현대아산은 지금까지 다른 재무와의 상계문제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있다.

    2000년 7월 연불수출한 지붕재생산설비 기자재 53종(23억원)에 대한 미납금 역시 상환기일(2001년 2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2000년 8월 수출한 트럭 55대 등(총 19억원)은 결제일이 2003년 9월.

    이에 대해 현대아산 홍지영 과장은 “미납 부분에 대해 계속 상환 독촉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굳이 현대가 연불수출에 나선 배경에 대해 “그것은 통일부에 물어봐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아태측과 99년 8월부터 2001년 2월까지 2만2500대의 컬러TV 등 총 60여억원 규모의 연불수출에 나섰다. 삼성은 해외공장인 중국 톈진에서 만든 TV를 북으로 실어 날랐다. 삼성이 제공한 TV는 ‘ATEA-SAMSUNG’이라는 영문 브랜드로 평양의 호텔 등 공공장소에 설치됐다. 그러나 삼성전자 역시 당초 계약과 달리 미납금에 대한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계약대로라면 구매 1년 후부터 2년 동안 매월 일정하게 분할 지급한다는 원칙에 따라 2000년 7월부터 TV 대금을 상환받아야 했으나 북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1차 납부기일인 2000년 7월 북측이 대금 결제를 하지 않았는데도 삼성측은 2001년 2월 1만대의 TV를 추가로 반출한 점이다.

    99년 TV 수출 계약서에 서명했던 삼성전자 최길순 차장은 연불수출과 관련, “연불 수출은 삼성과 아태 간 합의사항이다”고 설명하고 미납금 상환 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의 다른 한 관계자는 “당시 컬러TV 북한 반입은 기업인 방북에 대한 대가성 물품이다”고 다른 말을 했다. 그는 “계약서에 연불수출 형태로 되어 있으나 방북 대가로 준 것으로 (대금을) 돌려받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연불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 “정부측의 권고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내부 감사 및 퍼주기 비난을 우려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A가구의 경우 97년 1월 조선56무역회사(사장 라창남)와 연불형식으로 침대 등 100만 달러 규모의 구상무역 계약을 맺는 등 지금까지 총 20여억원대의 상품을 수출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대금지불 방식은 99년과 2000년 각각 35만 달러, 2001년 30만 달러분의 목재를 A가구측에 전달하는 물물교환 형식.

    A가구는 98년 북한의 청류무역회사(회장 박명선)와 82만8000달러 규모의 가구류 수출계약을 별도로 맺기도 했다. 계약조건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매년 미화 27만6000달러분의 목재를 인도한다는 것. 현재 북측은 A가구에 지급해야 할 미납금에 대해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북측은 최근 연기한 미납금에 대한 재연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2000년 4월, 미납금을 1년6개월 연기해 달라고 해 대금 지급일을 연기했는데, 그 대금의 지급기일이 도래하자 북측이 또다시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측의 상황을 봐가며 연기 요청에 응할 계획이다. 북측과의 교역이 이처럼 원칙 없이 끌려가는 등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정경분리 원칙을 들며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

    통일부 한 실무 관계자는 “무상으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관련 기업들이 납부 기일을 연기중이고 북측도 몇 건에 걸쳐 연기신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측의 중재 역할에 대해 “민간기업 거래에 정부가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적극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2000년 12월 4차 차관급회담에서 논의된 4개 남북경협 합의서 등이 발효되면 상사 분쟁 해결 절차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 정상적인 교역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한나라당 박관용 의원은 “퍼주기식 교역이 아닌 원칙과 경제원리가 통하는 교역만이 남북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끌려다니는듯한 경제교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사업에 관계하고 있는 한 기업인도 “북한을 개방경제에 적응시키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 및 시장원칙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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