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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열두 살 새싹을 죽음으로 몰았나

급우 상습 구타 견디다 못해 투신 … 폭력에 무뎌진 우리 사회 ‘슬픈 자화상’

  •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누가 열두 살 새싹을 죽음으로 몰았나

누가 열두 살 새싹을 죽음으로 몰았나
지난 11월15일 밤 9시30분쯤 경기도 과천시 원문동 J아파트 4층에서 한 소년이 몸을 던졌다. 그 때문에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보름간 무의식 상태에서 헤맨 이 소년은 결국 한줌의 재로 변해 이 세상을 떠났다. 소년이 남긴 마지막 말은 “창 밖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다”는 중얼거림. 평소 창 밖을 쳐다보며 무언가 읊조리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투신 직전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엄마가 돌아서 부엌으로 가는 사이 자신의 방 창문을 열고 새처럼 날았다. 이제 소년은 더 이상 중얼거리지도 울지도 않는다.

12월1일 소년의 육신이 화장되던 날 부평 화장장에 모인 유족들은 슬픔보다 분노가 앞섰다. 분노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는 법. 바로 소년에게 죽음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를 주지 못한 이 사회였다. 친구를 때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아이들, 그것을 방치한 학교, 폭력을 조장하고 약자를 따돌리는 사회적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유족들에겐 증오의 대상이었다.

경기도 과천시 M초등학교 6학년 선정현군(12)이 급우들로부터 집단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리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3월, 6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덩치 큰 급우 3명이 평소 말이 없고 내성적이던 선군을 화장실과 소각장 등에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선군이 10월17일 학교에 제출한 경위서에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내용의 폭력적 내용이 가득하다.

“…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선생님한테 혼나면 (자기네들 분풀이를 하려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때리고, 끝나서는 소각장이나 313동 앞에서 때리고, 매일 매일 때리고 또 때리고, 다 때리면 엄마 아빠 선생님한테 이르면 죽는다고 한다. 막대기 같은 플라스틱으로 팔을 때려서 뿔이 날 때까지 때리고…반 여학생들은 선생님께 말해주진 못할망정 불쌍하다고 놀렸다. 난 (무서워서) 엄마 아빠 선생님한테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 나를 불러서 갑자기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계속 연속으로 쳤다. 왜 때리냐고 물어보니까 (말하기) 싫다고 하면서 또 때렸다. 쭛쭛쭛은 쭛쭛쭛과 쭛쭛쭛에게 맞을 때 재미있겠다고 얼굴을 때렸다. 내가 많이 맞았을 때(는) 화장실에서(인데) 쭛쭛쭛, 쭛쭛쭛이 화장실에 가두어 문 잠그고 물 다 내려가면 끝난다고 하면서 연속으로 팔을 때렸다. 번갈아가면서 주먹으로도 때렸다. 쭛쭛쭛은 1학기 때 때리고, 쭛쭛쭛도 때렸다. 예전에 청소하다가 여자애들이 쭛쭛쭛이 때렸다고 (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 쭛쭛쭛은 (네가) 일렀지 하면서 나는 아니라고 했는데 화장실로 끌고 가 때렸다.”

아이들은 폭력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폭력현장을 감추기 위해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를 이용하는 섬뜩함을 보이기도 하고, 폭력 사실을 이르면 죽여버린다는 협박과 공갈도 잊지 않았다. ‘고자질’에 대한 보복도 가해졌다. 폭력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대할 수 있는 장면들이 초등학교 교정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이날 학교측이 선군과 가해학생에게 경위서와 반성문을 쓰게 한 것은 화장실과 소각장에서만 행해지던 구타가 급우들이 다 보는 교실에서 이뤄졌기 때문. 선군은 이날 친구들의 발길에 차여 머리가 책상에 부딪치는 부상을 입었다. 학교측은 그제서야 선군의 부모에게 “선군이 싸움을 했다. 그런데 많이 맞았다”고 연락했다. 부모가 다그치자 선군은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이날 저녁 심한 구토 증세를 보이며 병원 응급실까지 다녀오는 홍역을 치렀다.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선군은 급우들에게 맞아 온몸에 멍이 생기고 안경이 수도 없이 부서질 때마다 “축구하다 넘어져서 그랬다”며 부모를 속였다. 급우들에게 당할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 학교도 부모도 그를 보호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덜 맞기 위해서’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 선군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가해학생들이 자신들의 상습적 폭행 사실을 적시한 반성문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정현이를 이유 없이 억지로 수없이 때렸다. 땅바닥에 떨어진 것을 먹으라고 했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다른 친구가 때리니까 그냥 때리고 싶어졌다.” “재미있을 것 같아 때렸다.” 친구들이 선군을 폭행한 이유를 분석해 보면 ‘별 이유 없이, 단지 재미있어서’다. 선군의 숨이 끊어진 11월30일 밤 가해학생들은 장례식장에서도 자신들의 폭력성을 유감없이 노출했다. “정말 정현이를 때리고 고자질하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했느냐”는 유족들의 질문에 “수도 없이 때렸고, 다른 사람한테 이르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동생까지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더라는 것. 아이들은 솔직하게 대답한 것인 줄 모르지만 피해학생의 유족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폭행 사실이 드러난 ‘그날’ 이후 학교측이 보인 ‘한심한’ 대응이다. 선군은 경위서를 쓴 후 “학교를 가지 않겠다”거나 “오전 수업만 하고 오면 안 되느냐”며 보채기 시작했고, 매일 밤 “살려달라”며 헛소리를 하는 등 악몽에 시달렸다. 이처럼 우울증 증세가 극도로 악화되자 선군 부모는 결국 정신과를 찾았고 정신과 전문의가 내린 결론은 가해학생들과 선군의 우선적 분리였다. 그러나 선군의 부모가 요구한 가해학생의 전학 요구나 분반 요구에 대해 학교측은 “가해자 부모가 반대하고 학교 사정상 담임을 바꾸는 것은 힘들다”며 이를 거절했다. 가해학생의 폭행 부분에 대해서도 “가해학생을 선도하고 선군을 적극 보호하겠다”며 가해학생의 반성문과 부모의 각서만 받아놓은 채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학교측의 태만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0월 말에 있었던 수학여행은 선군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심어줬다. 보복 폭행을 두려워한 선군과 선군의 부모는 학교측에 수학여행에 빠지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학교측이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수학여행의 동참을 종용한 것. 그러나 그 결과는 집단 왕따와 수치심을 자극하는 장난으로 끝났다.

“정현이에게 폭행보다 더한 큰 충격은 수학여행에서 친한 친구들조차 ‘고자질이나 하는 재수없는 놈 꺼져’라는 소리를 들으며 왕따가 된 것이었다. 가해학생들이 그렇게 소문을 퍼뜨렸다. 또 성기에 치약을 발라놓고 장난치는 가해학생들의 놀림은 이미 왕따가 된 정현이를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뜨렸다.”(선군의 부모)

그렇다면 10월17일 교실 구타 사건 이후 학교측의 말대로 더 이상의 폭행은 없었던 것일까. 이 학교 이모 교장은 “정현이가 자살한 것은 10월 이전에 일어난 폭행 사건 때문이다. 그 이후에 폭행은 없었다. 학교 폭력은 성폭행 사건과 같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학교측의 주장과 달리 경찰 수사 결과 선군은 경위서를 쓴 이후 모두 여덟 차례의 보복 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수사에 들어간 것도 선군이 투신한 지 4일 후인 11월19일 선군의 아버지 친구가 안양시교육청 인터넷 사이트에 선군의 투신과 관련한 내용을 올리면서부터. 그때까지 학교측은 관련 사실을 교육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에 투신 사실이 알려진 것도 다음날인 20일부터다.

이 학교 이모 교장은 이에 대해 “잘못을 충분히 깨닫고 반성하고 있지만 정현이의 죽음은 교장 개인이 책임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이고 이런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모든 시선이 학교에 쏠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이제 난 주먹을 정정당당하게 쓸 것이다. 약한 자에게 보호가 될 수 있는 주먹이 될 것이다.” 선군 사건으로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가해학생 중 하나가 쓴 반성문 속에는 아직까지 폭력을 미화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과연 선군의 친구들은 그의 죽음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선군이 세상을 떠난 11월30일 밤, 선군의 핸드폰에 남겨진 마지막 음성메시지 내용은 불행하게도 “×××야 이 나쁜 놈” 등 심한 욕설을 가득 담은 어떤 친구의 증오였다. 선군은 그렇게 장례식 날조차도 ‘왕따’를 당하며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주간동아 2001.12.13 313호 (p16~18)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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