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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시인들의 학교’ 전화통에 불났어요

전북 임실 마암분교에 도시학생 전학 문의 빗발 … 시 쓰고 그림 그리며 자연교육 만끽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꼬마 시인들의 학교’ 전화통에 불났어요

‘꼬마 시인들의 학교’ 전화통에 불났어요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선생의 교실에는 1, 2학년 합쳐 오롯이 다섯 명이 전부다. 1학년인 유신이, 은비, 학수, 정미가 선생님과 공부하는 동안 2학년인 창희는 혼자 난롯가에 앉아 책을 읽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창희에게는 다솔이라는 짝꿍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전학 왔던 다솔이가 1년 뒤 다시 서울로 가버려 창희는 외톨이가 되었다. 다행히 12월이면 서울에서 지연이와 환성이가 전학 온다. 창희는 벌써부터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두 명이나 생겨요”라며 싱글벙글 자랑한다.

전교생 스무 명. 이곳을 처음 방문한 외지인이라도 아이들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데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3, 4학년 반을 맡고 있는 박래성 선생은 지층을 가르치기 위해 현장학습을 떠난다. 자신의 승용차에 반 아이들을 모두 태우더니 강 상류로 향했다. 3, 4학년 합쳐야 6명밖에 안 되는 단출한 식구다. 학년 구분 없이 3명씩 짝을 지우고 개울가에 풀어놓으니 아이들은 알아서 배운다.

‘꼬마 시인들의 학교’ 전화통에 불났어요
요즘 마암분교의 전화는 쉴틈없이 울려댄다. 지난 10월 KBS 2TV ‘인간극장’에 ‘창우와 다희의 가을동화’라는 제목으로 학교가 집중 소개된 후 자녀를 전학시키고 싶다는 부모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11월에는 경기도 성남에 살던 학룡(6학년)이와 학민(3학년)이 형제가 전학 왔다. 어머니 조남숙씨는 99년 처음이 학교에 대한 기사를 읽고 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6학년인 학룡이는 중학교에 가는 것을 1년 늦추더라도 초등학교를 좀더 다녔으면 하는 눈치다.



12월이 되면 서울에서 성보(3학년)와 지연이(2학년) 남매 그리고 환성이(2학년)가 마암분교로 전학한다. 내년 새 학기가 되면 더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 거라며 벌써부터 교사들(조영진, 박래성, 김용택)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용택 선생은 “오는 대로 다 받으면 50명도 더 되겠구먼”이라며 웃는다. 매년 교육청으로부터 폐교 압력을 받고 있는 이 작고 낡은 분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마암분교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시인 김용택 선생이 부임하면서부터다. 폐교가 거론된 후 10년 동안 시설투자를 전혀 하지 않은 이 학교는 운동장만 덩그러니 있을 뿐 건물은 찌그러지고 내팽개쳐진 상태였다.

“부임하고 보니 ‘도대체 이런 학교도 있다냐’는 생각에 기가 막힙디다. 교실 바닥 페인트칠부터 하고 저와 안면 있는 출판사에 연락해 아이들 책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죠. 공부야 교과과정에 있는 대로 가르치면 되지 특별난 게 있습니까. 다만 제가 글을 쓰니까 아이들이 읽고 쓰는 데 좀더 신경 쓸 뿐이죠.”

김용택 선생은 아이들이 쓴 시를 모아 99년 첫 시집 ‘학교야, 공 차자’를 냈다. 이듬해에도 시집 ‘거미줄로 돌돌돌’과 일기 모음집 ‘오줌으로 만든 무지개 다리’를 엮어냈다. 올해는 1, 2학년생들이 쓴 시와 그림으로 ‘달팽이는 지가 집이다’를 냈다. “달, 별, 새 울음소리, 눈, 빗줄기, 꽃, 어머니, 강물, 물고기와 짐승들 그런 것을 보며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자체가 모두 공부다.”(김용택)

그리고 틈만 나면 교사와 아이들이 어우러져 축구와 야구를 했다. 공을 찰 때는 1학년, 6학년 구분 없이 한데 어울려 논다. 이렇게 마암분교의 자연주의 교육은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고 도시 아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은 아이들이 가장 잘해야 할 노는 일에 서툴러요. 평평한 땅만 밟고 다녀서 그런지 울퉁불퉁 시골길을 뛰다가 만날 넘어지고 까지고 상처가 아물 날이 없죠. 그러다 어느새 몸도 건강해지고 감수성도 풍부해져 한 달만 지나면 저절로 시인이 되어 있어요.”(김용택)

‘꼬마 시인들의 학교’ 전화통에 불났어요
서울에서 성보, 지연이 남매를 데리고 운암면으로 이사 갈 준비에 한창인 어머니 윤경원씨는 마암분교 교사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식에 감동한 경우다. “이곳 저곳 대안학교를 알아보다 마암분교 이야기를 들었죠. 무조건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품어주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저런 손길이 닿으면 아이가 얼마나 행복해할까 생각했어요. 10월 말경 처음 학교를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학교도 전학 오는 아이들이라면 대환영이다. 축구를 하려 해도, 야구를 하려 해도 머릿수가 모자라 난감한 형편이니 누군가 새로 전학 오면 학교는 활기를 띤다. 성보네는 함께 서울에서 전학 가는 환성이네와 한집을 얻었다. 마암분교 3학년인 창우의 어머니 이명화씨가 마을의 새 식구들이 정착할 집을 구해주었다. 마암분교가 폐교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을 사람들이 새 식구가 생기는 것을 싫어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마암분교와 인근 마을에 집중되는 관심이 늘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김용택 선생은 “매스컴에 나오니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 아이를 전학시킬 듯한 태세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일시적 호기심은 금방 식어버립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 속의 아름답고 작은 시골 학교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죠”라며 마암분교 외에도 폐교 위기에 있는 작은 학교들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99년 한 해 동안만 마암분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930여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대부분 전교생 100명 미만의 농어촌 지역 학교들이다. 정부는 교육재정의 효율적 운용과 농어촌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며 2002년까지 2077개 학교를 통폐합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학교를 지키려는 주민들과 지역 교육청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꼬마 시인들의 학교’ 전화통에 불났어요
99년 폐교 위기에 처한 농어촌 분교 학부모들이 모여 결성한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에도 날로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장호순 대표(순천향대 교수)는 “도시 과밀학교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거꾸로 도시 학부모들이 농어촌 학교로 가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충남 아산의 거산분교(전교생 34명)는 폐교 위기에 놓이자 지난 5월 천안과 아산지역 학부모들이 모여 ‘전원형 작은 학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이들은 도시 학생들에게 통학버스를 제공해 이사를 하지 않고도 도시에서 인근 농어촌 학교로 통학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을 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섬진강댐 부근 마암분교에 도시 아이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산과 강이 있는 자연 속에서 경쟁 대신 조화를 배우며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마암분교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작은 학교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주간동아 2001.12.06 312호 (p48~49)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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