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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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정책기획 수석비서관 한덕수

경제관료로 잔뼈 굵은 ‘선비형 일벌레’

  • < 윤승모/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 ysmo@donga.com

    입력2004-11-23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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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정책기획 수석비서관 한덕수
    11월16일 신임 인사차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을 찾은 한덕수 대통령정책기획 수석비서관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샌님’이었다. 11월13일 발령받고 4일 만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나가 있던 임지(프랑스)에서 돌아와 임명장을 받은 직후였다. 얌전한 선비 스타일의 용모에, 말소리도 조용해 조금 떨어져 앉은 사람은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조리는 분명했다. 심술궂은 기자들이 한수석에게 ‘청와대 왕수석’으로 불렸던 전임자, 박지원 전 정책기획수석과의 ‘비교론’을 꺼냈다.

    “박지원 전 수석이 추진하던 공기업 관련 정부 정책이 하나 있었는데, 박 전 수석이 청와대에서 물러나자마자 나머지 담당자들이 ‘이제 중단하자’며 곧바로 덮어버렸다는 얘기가 있다. 실세라는 박 전 수석이 추진한 일도 그런 상황인데, 한수석은 과연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느냐. 솔직히 박 전 수석보다 힘이 약한 것 아니냐.”

    한수석은 즉각 말을 받았다.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되는 것이 이 시대 리더십의 본질인지 의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리더십과 김대중 대통령 시대의 리더십은 다른 것이다. 공기업이든 뭐든 스스로 합리화하지 않으면 시장의 심판을 받는다. 합리성을 감내하지 않는 조직은 스스로 심판을 받게 만들어야 한다.”

    준비 없는 즉석 답변이었지만, 한수석이 결코 녹녹지 않은 인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한수석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상 전문가, 엘리트 경제관료, 학문과 실무를 겸비한 실력파 등의 평이 따라붙는다.



    20년 이상 한수석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경제계 인사 L씨는 그에 대해 “젊은 나이에 경제기획원에서 상공부로 이적해 상공부를 개혁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혼자 상공부를 개혁하는 것이 가능한 말이냐”고 되묻는 기자에게 L씨는 “솔직히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상공부는 기업과의 유착 의혹이 빈발하는 등 후진적 부처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수석의 풍부한 지식과 진지한 근무 태도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업체로부터 ‘상공부에도 이런 관리가 있구나’ 하는 평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수석은 하버드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일부에선 그가 1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잘못 알려져 ‘천재’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실제는 3년9개월이 걸렸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경제기획원 사무관 시절이던 77년부터 2년간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다녔고, 82년 상공부로 이적한 후 다시 1년9개월간 공부를 계속해 학위를 받았다는 것.

    천재는 아닐지 몰라도, 한수석은 하버드대 박사 출신답게 품위 있는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지금도 영어 명문장이 눈에 띄면 반드시 이를 숙지해 협상 테이블에서 사용할 정도로 노력파이기도 하다. 한수석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의 영어 실력은 “OECD 대사를 하는 데 불편이 없었고, 다른 나라 대사들도 평가해 주는 편”이라고 한다.

    한수석에 대한 관계(官界)의 일반적 이미지와 평가는 대개 이런 정도다. 그는 호남 출신(전북 전주에서 출생,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전학해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이지만, 그의 출신 지역이 논란이 됐던 적은 없다.

    한수석에 대한 왈가왈부는 그가 ‘경기고-서울대-행정고시’를 거친 엘리트 출신이라는 데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화합보다는 자기 주장이 강한 스타일이다” “지나치게 원칙론을 앞세운다”는 등의 비판론이 그것이다. 일각에선 한수석이 국내 정치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경제정책이나 재무분야에는 경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국내정책 전반을 조율해야 하는 정책기획수석으로는 적격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순수관료 출신인 그가 여야 등거리 입장에서 정치권과 정책협의를 원만하게 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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