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8

2001.11.08

가슴을 잡아끄는 팔색조 감성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4-11-18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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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을 잡아끄는 팔색조 감성
    지난해 음악계 최대 수확이 R&B의 무서운 신인 박효신과 박화요비의 등장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날로 희석돼 가는 보컬의 경이로움과 라이브에 대한 집중력,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신념만이 자신과 우리 대중음악을 구원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박화요비의 두 번째 앨범 ‘Nineteen Plus One’은 미국 테러사건 이후 더욱 싸늘해진 올 가을 대중음악계에 뜨거운 열기를 불어넣을 첫번째 주자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나아가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재능까지 구비하며 한국 R&B의 여왕이라는 왕관을 쓸 권리를 자신만만하게 선언한 수작이다. 열두 개에 이르는 모든 트랙은 한치의 허술함 없이 치밀하며 팝 발라드에서 R&B, 디스코, 펑키를 종횡무진하는 박화요비의 보컬은 우리 가슴속에 전율을 아로새기며 초절기교를 펼쳐 보인다.

    박효신의 보컬이 전통적인 카리스마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 박화요비의 그것은 팔색조와 같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새시대의 감수성을 장악하는 경이로운 흡인력을 지녔다. 마치 조용필의 초기 노래가 그러했던 것처럼 최재은이 제공한 ‘눈물’이나 자신이 직접 쓴 ‘난’(難) 같은 텍스트는 도입부에서 코다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감정이입의 골곡을 제공한다. 또 그것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선율 테마들은 진성과 가성을 오르내리며 복잡하고 꽉찬 하나의 드라마투르기를 완성해낸다. 윤상, 전연준, 황성제 같은 게스트 작곡가들이 제공하여 트랙 사이사이에 배치된 빠른 템포의 댄스 넘버들은 이 소리의 성찬을 화려하게 수놓는 일종의 서비스 코너다.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 이래 R&B, 곧 리듬앤드블루스는 격렬한 힙합의 비트와 더불어 90년대 한국 신세대들의 대표적인 음악적 감수성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90년대의 고만고만한 R&B 주자들은 음반사들의 통속적인 이윤동기에 휘말려 70년대 초 김추자와 박인수의 ‘님은 먼 곳에’나 ‘봄비’와 같은 변방의 독창성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투적 모방에서 맴돌았다. 이 유서 깊은 흑인의 장르는 인간의 슬픔과 기쁨 모두를 극한적으로 표출하려는 엄청난 음악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장르이며 여기에 우리는 한국이라는 특수성의 미학을 추가로 탑재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R&B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한 박화요비와 박효신이 모두 신촌뮤직이라는 레이블에 속해 있다는 것은, 따라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음반산업이 거품과 같은 아이들(idol) 스타의 반짝 인기몰이에 구금되어 있을 때 음악 그 자체의 질적 완성도야말로 대중음악의 영원한 본질임을 구현하려 한 투철한 일관성이 이와 같은 성기디 성긴 ‘앨범’을 분만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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