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9

2001.08.30

‘일본’ 수백의 얼굴, 수천의 속내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5-01-20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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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수백의 얼굴, 수천의 속내
    제2차 세계대전중 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인은 ‘이해 불가능한’ 국민이었다. 미국은 이해 불가능하고 때로는 공포스럽기까지 한 일본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효율적인 정책을 세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당시 미 전시정보국은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사회와 일본인 연구를 의뢰했다. 그 결과 1945년 ‘리포트25-일본인의 행동패턴’이 탄생했고, 베네딕트는 이 논문을 바탕으로 1년 뒤 ‘국화와 칼’을 출간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일본문화 전문가로 알려진 루스 베네딕트가 실제로 일본을 답사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루스는 직접체험 대신 미국 내 일본인과 만나고 일본에 관한 자료를 읽고, 일본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국화와 칼’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46년 전의 루스에 비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정보는 훨씬 풍부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일본 이해 수준은 베네딕트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 차이는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해 일본을 이해하고 그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과,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넘겨 짚어버리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일본문화연구소장 조양욱씨가 이번에 새로 쓴 책의 제목이 ‘물구나무 서서 본 일본’이다.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을 벌인 것이 벌써 7년 전 이야기인데 이제 물구나무라도 서서 보아야 일본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뜻일까. 조씨에 따르면 일본이란 나라는 배울 것도 많고 배워서는 안 될 것도 많다. 특히 잊힐만 하면 들고나오는 역사 왜곡과 신사 참배, 민족 차별 발언 등에 대해 저자는 따끔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이 내용은 일본 ‘아사히 신문’ 칼럼에 실린 것이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외모만 닮은 꼴이 아니라 하는 꼴도 닮았다. 한국에 3연이 있다면 일본에는 3방이 있다. 3연은 혈연·지연·학연을 뜻하는데 3방은 무엇인가. 일본에서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면 첫째가 후보 개인의 학력과 경력을 뜻하는 간방(看板), 지역성을 의미하는 지방(地方), 재력이나 선거자금을 가리키는 가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우쭐하기에는 이르다. 그들이 애써 한국을 배우려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지난해 2월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에 있던 도도로키 히로시씨가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6개월에 걸쳐 영남대로를 답사한 후 세계유산이 될 만한 훌륭한 유적들을 발견했고, 그것이 마구 훼손된 것도 발견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짓거나 각지에 거북선 복제를 전시하는 것도 좋지만, 복제를 만들 돈이 있으면 귀중한 실물유적을 제대로 유지하는 게 급선무다”는 도도로키씨의 지적은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천의 얼굴, 일본 일본 일본’이나 ‘욕하면서 배우는 일본’ 등 앞서 저자가 쓴 책들과 목소리 톤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감칠맛 나는 칼럼 모음집이다. 그러나 본문 끝에 작은 글씨로 단 ‘사족’(蛇足) 부분에서 일본식으로 말하면 ‘와사비’ 같은 쏘는 맛을 느낄 수 있으니 끝까지 음미하길 바란다.



    ‘일본’ 수백의 얼굴, 수천의 속내
    사실 일본의 속맛을 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일본 기행이다. 기행을 위해 최근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이경덕의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예담)과 건축사학자 김정동 교수(목원대 건축도시공학부)가 쓴 ‘일본 속의 한국 근대사 현장’이다. 이씨의 ‘일본기행’은 매우 사색적인 에세이 형태의 기행문이다. 저자는 “길게 누운 일본 열도는 생각보다 넓다”는 말로 시작한다. 아열대에 속하는 오키나와에서 한대의 홋카이도까지 수없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하나의 얼굴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 정도면 이 기행문이 무엇을 담아내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속의 한국 근대사 현장’은 한-일 역사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즉 지난 7년 간 일본 속에 있는 한국 근대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한 결과 70여 개소를 되살릴 수 있었다. 1부에서는 나혜석, 박경원, 김충국 등 식민지 지식인의 흔적을 찾아 나섰고, 2부에서는 내선융화의 상징으로 이용당한 고려신사, 고종의 특사들이 머물던 엔료칸, 2·8독립선언의 현장인 도쿄 YMCA 등 역사의 현장을 소개했다. 김교수는 아직도 일본 내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현장이 수백 개나 된다고 말한다.

    1995년 한국의 국립지리원과 일본의 국토지리원이 공동으로 측정한 한-일 간 거리는 1,223.251534km였다. 일제시대의 부정확한 측량자료와 비교하면 10m쯤 가까워졌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진 만큼 심리적 거리도 좁힐 수 있을지.

    ◇ 물구나무 서서 본 일본/ 조양욱 지음/ 해냄 펴냄/ 215쪽/ 8000원

    ◇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이경덕 지음/ 예담 펴냄/ 248쪽/ 1만5000원

    ◇ 일본 속의 한국 근대사 현장/ 김정동 지음/ 하늘재 펴냄/ 357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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