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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나는 벗고 싶다

나는 벗는다, 고로 존재한다

노출은 빠른 시대 변화에 대한 불안감 반영…'정신'에서 '몸'으로 가는 시대

  •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나는 벗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벗는다, 고로 존재한다
”예쁘잖아요.” S대 무용학과 4학년인 전0영양. 그녀는 지난 6월2~3일까지 경기도 이천 지산스키장에서 열린 국제세미누드예술제에 누드 모델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이전에 누드 모델 경험이 있던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눈길 앞에서 자신의 나신을 드러내려고 마음 먹은 것조차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그녀에게 “왜 누드 모델을 하려고 했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온 대답은 위와 같이 간명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몸이 예뻤고, 그것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전양은 행사 직전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생애 최초의 ‘흥분된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계획하고 있는 일을 하려면 이런 것도 필요한 것 같다”면서 “사진 누드 모델은 꼭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녀에게 최근 자신의 누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탤런트 정양과 영화 ‘썸머타임’의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가 된 가수 출신 김지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요. 나는 아직 여러 걸림돌을 뛰어넘지 못하였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색깔과 철학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잖아요.”

국제세미누드예술제에 누드 모델을 자원하고 나선 여대생은 전양만이 아니다. C외국어대학 일문과의 서o빈양과 S여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민o희양 역시 “당당히 벗겠다”고 나섰다. 물론 이전에 누드 모델을 한 경험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들은 ‘누드 이벤트’로 자신들의 인생에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약간의 흥분과 긴장을 즐기는 듯했다. 이 중 한 학생은 “유명 에로 배우가 되고 싶다”며 이번 행사를 자신을 단련시키는 계기로 삼는다는 생각을 내보였다.

온 나라에 ‘누드 담론’이 가득하다. 충남 비인고 미술교사인 김인규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신과 부인의 나체 사진을 게재한 ‘사건’은 사람으로 하여금 ‘옷을 벗고 자신의 몸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인규 교사의 행위에 대한 시중의 논쟁은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케케묵은 공방의 되풀이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김교사의 홈페이지 일부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한국통신이 폐쇄한 후인 지난 6월9일, 그의 홈페이지에서 누드 사진은 사라지고 대신 ‘현 상황에 대한 나의 입장’과 ‘우리 사진에 대하여’란 김교수 부인 이애숙씨의 글이 올라 있었다. ‘현 상황에 대한 나의 입장’이란 글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나는 나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의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나체 자체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다. 논쟁은 엉뚱한 데서 벌어졌다.”



정말 세인의 관심과 논쟁은 엉뚱한 곳에서 출발했다. 나체의 의미, 나체의 이미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나체를 실은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것의 거리는 ‘나는 벗고 싶다!’는 말과 ‘내가 벗어도 좋으냐?’는 말의 차이처럼 한참 멀다. 문제는 ‘왜 벗는가’다. 또 ‘벗는 행위에 대해 당당한 사람들이 왜 늘어나고 있는가’다. ‘벗은 몸을 대중 앞에 왜 공개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물음 역시 빠질 수 없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경찰국 소속의 28세 유부녀 여성 경관인 진저 해리슨이 자신의 누드 사진을 플레이보이 7월호에 공개하기로 해 화제를 낳고 있다. 해리슨은 “남성들이 대부분인 경찰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고, 나체를 공개한 뒤에도 동료들과 아무렇지 않게 업무를 해나갈 자신이 있다”며 “LA 경찰국이 보수적 시각을 버리고 그냥 누드로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인터넷 공간에 자신의 누드를 올리는 일은 점점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누디스트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 스스로 ‘현직 란제리 모델’이라고 밝힌 20대 여성이 자신의 신상명세와 함께 호텔방 등지에서 찍은 자신의 나체 사진을 홈페이지에 잔뜩 올려놓은 일이 있었다. 80년생이고 서울에서 혼자 산다는 이 여성은 “예술가의 기분과 모델의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벗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누드 사진 게재 이유를 밝혔다. 물론 노출 욕구가 강한 젊은 여성의 욕망 차원인지, 관음 취향 네티즌의 장난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셀프 누드’ 현상은 일회성에 그칠 태세는 아니다.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에는 누드 카페(동호회)가 수십 개씩 있다(다음 기사 참조).

‘왜 벗는가’에 대한 대답은 똑같을 수가 없다. 여대생 전o영양처럼 자신의 예쁜 몸을 언제까지라도 간직하고 싶은 단순한 나르시즘, 남녀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 ‘욕망’이 나체에의 열망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탤런트 정양이나 가수 김지현처럼 나르시즘과 육체의 상품화가 혼재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관음증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 소설가 배수아는 ‘몸 이야기’를 다룬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에서 “관음증은 이제 ‘본다’는 행위뿐만 아니라 ‘보여준다’는 행위까지도 쾌락의 영역으로 확대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인규 교사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34개 시민단체와 문화단체들이 문화개혁시민연대의 이름으로 발표한 성명서는 이를 “‘몸’에 대해 상업적이고 남성 편향적인 우리 사회의 ‘외설적인 시각’에 던진 하나 의 외침”이라고 표현했다. 김교사 부인 이씨도 이렇게 쓰고 있다. “마침내 나는 그의 작품이 되는 데 동의했다. 사진을 찍을 때까지 그것은 나지만 작품이 되는 순간 그건 내가 아니다. 다만 작품일 뿐이다.”

갤러리 ‘사비나’의 이명옥 대표는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술계의 주된 흐름이었다”며 “이는 현대인의 자기 정체성 찾기와 연결된다”고 말한다. “갈수록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불안한 사회에서 배설하고, 성욕을 느끼고, 꿈을 꾸는 인체야말로 가장 정직한 것이라는 인식이 정말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뿐이라는 작가의식으로 발전했다”는 것. 이대표는 말한다. “이제 몸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되기보다 발언하고 싶어한다. 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기존의 통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우 도발적인 그림과 사진, 에세이를 싣고 있는 ‘누가 그림 속의 즐거움을 훔쳤을까?’라는 책을 최근 펴낸(스테디북) 화가 이혁발씨는 그의 작업의 출발점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사유하기 이전에 원초적 지각으로 느끼는 존재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흥분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런 그가 “육체의 판단은 정신의 판단만큼 완전한 것이며, 육체는 결코 폐기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유의 습관을 얻기 전에 먼저 삶의 습관을 획득하고 있다”(알베르 카뮈). “몸은 정신을 담는 물질적 용기의 측면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몸이 단순한 유기체로서가 아니고, 의미를 담고 있고 가치를 가진 구체적인 인간의 몸으로 파악해야 한다”(메를로 퐁티) 등의 말을 인용하고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몸은 감상의 대상이기보다 발언하고 싶어한다”

최근의 ‘셀프 누드’ 현상에 대해 그는 “정신에서 몸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자기애적인 발로든, 대사회적인 발언이든 일반이 이제 “몸에 대한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8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부흥한 시기와 함께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한 젊은이들에게 이념은 더 이상 필요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이때부터 ‘압구정 오렌지’ 얘기가 나왔고, 개인적 다양성이 표출하기 시작했다. 몸의 등장은 이때부터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 가운데 단 한 가지 별종인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인간의 본성에는 자신도 잘 모르는 노출 욕구가 있는지도 모른다. 동물학적 인간론으로 유명한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스트리킹에 대해 “사적인 행위를 갈수록 사람 앞에서 드러내려는 사회 전체의 경향을 하나의 단순한 행동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맨워칭’이라는 저서에서 생태학적인 인간의 행위를 62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에는 과잉노출도 포함된다. 그는 여기에서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특정한 상황에 대한 관습이 점차 불분명해졌으며, 그것은 우리가 관습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래의 관습을 지키다가는 더 이상 사회의 끊임없는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그것이 고의든 우연이든 과잉노출은 시대의 빠른 변화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딱딱한 노출 부족과 품위가 떨어지는 노출 과잉 사이에서 사교적 줄타기의 만찬에 직면한 셈이다. 그것은 마치 사회가 아직도 빅토리아 시대의 코르셋을 착용하였는데도 브래지어를 벗어서 불태우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 사회의 코르셋은 얼마나 견고한가.





주간동아 2001.06.21 289호 (p28~31)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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