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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한 전력송전 요청은 대남 협력의지”

박재규 前 통일부 장관… “2차 남북정상회담 때 군사적 긴장 완화 최우선 과제”

  • < 김영식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pear@donga.com

“북한 전력송전 요청은 대남 협력의지”

“북한 전력송전 요청은 대남 협력의지”
지난 3·26개각으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떠나던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의 밝은 표정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굳은 표정의 일부 국무위원들과는 다른 이런 모습은 재직 기간에 거둔 그의 성과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분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총괄·조정하는 기구인 남북장관급회담의 수석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남북회담에 참여해 온 노련한 북한의 회담 전문가인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를 상대했고, 2차 회담에서는 남북 군사당국자 회담 개최문제로 진통을 겪자 밤 열차를 타고 동해안에 현지 지도를 나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담판을 벌이는 뚝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체제 기반 구축의 대장정에서 주춧돌 역할을 다했다는 성취감이 물러날 때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는 민간인의 신분으로 국내외를 다니며 우리 대북정책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6·15선언 1주년에 즈음해 남북관계 개선 주역의 한 명인 그를 만나 현재 한반도 정세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통일부를 떠난 뒤 어떻게 지냈습니까.

“대북정책을 올바로 알리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특히 6월은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는 달이기 때문에 각종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6일 북·미 대화 재개선언을 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한 성명을 통해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 북·미 관계 개선 등을 목표로 한 포괄적 대북접근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대화로 문제해결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한반도 문제가 국제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일 관계 진전 등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로 인해 북·미, 남북관계의 변화가 예상됩니다. 향후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정세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방위전략에 따른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모색에 대해 일부에서는 성급하게 신냉전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또 북한·중국·러시아의 신(新)삼각체제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냉전이 끝나며 이미 실패한 동맹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세 나라 모두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본이 서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어서 미국 전략의 기본틀을 변경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북한 전력송전 요청은 대남 협력의지”
-미국이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단계마다 ‘검증’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북·미는 물론 남북관계 진전에도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까요.

“미국 부시 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듯이 북한도 자신들의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북한과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미국의 단계별 검증전략은 일정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며, 이에 따라 남북관계 진전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단계별 검증전략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상회담 당시 인상 깊은 일은 무엇입니까.

“남북의 두 정상이 남북을 화해협력으로 이끄는 기틀이 된 6·15공동선언에 합의하고 서명하신 일입니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정일 위원장이 순안공항에서 대통령을 영접할 때도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예감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남북장관급회담의 수석대표로 지난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끌던 네 차례의 회담을 평가하신다면….

“장관급회담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볼 때 몇 가지 성과가 있습니다. 경의선 철도 및 도로연결 합의, 군사당국자 회담 개최, 이산가족 문제와 남북경협 확대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이같은 합의는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남북관계의 성격이 달라졌음을 실증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성과를 합의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여론을 전달해 북한 동의를 구하는 것이나, 남북의 격차가 상상보다 크기 때문에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주의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점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북측 관계자들이 외부세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는 대화를 통한 접촉과 교류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회담 때와 2차 장관급회담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는데, 개인적으로 김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께서 베를린 선언을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을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평가한 뒤 부당한 평가라는 언론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 말씀이 김위원장에 대한 평가로 적절하다고 봅니다. 북한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호방성도 지니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저를 개인적으로 불러 만난 것 자체가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 기저에 깔려 있는 용인술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위원장을 만나면서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까.

“김위원장은 올해 벽두부터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하자는 ‘신사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그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던 과거의 태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같은 구상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미 감지되었고, 지난해 9월1일 지방 모처에서 다시 김위원장과 면담할 때도 확인된 것입니다. 이것이 올 초에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입니다. 김위원장은 남측 경제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방문한 IT(정보기술) 단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활발한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남측에 북한의 당 간부와 경제팀을 구성해 시찰단을 보내겠다고 한 것입니다. 현재 해외로 수없이 많이 나가는 경제시찰단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겁니다.”

-2차 장관급회담 때 지방에 있는 김위원장을 만나러 가느라 기차에서 김용순 노동당 비서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셨는데, 그때 논의한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김용순 비서는 우리 대북정책의 진실성을 알고 싶어했고, 저는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 등이 바뀌었는지를 탐색하는 질문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김비서는 우리측을 불신했다는 점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2년간 대북정책을 보면서 어느 정도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습니다. 그의 남북관계나 주변상황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현실에 기반했으며 실용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합니다.”

-김용순 비서가 남측에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갖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비서는 북측이 남측을 불신한 것은 과거 정권의 흡수통일 구상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도 흡수통일을 숨기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처음에 가졌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허가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지원하는 모습을 본 뒤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다르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차 정상회담을 포함해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는 북한의 전력지원 요청을 수락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북한이 송전방식으로 전력을 지원해 달라고 한 것은 대남 협력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올 2월의 1차 남북전력협력실무협의회에서 우리측은 전력실태를 공동조사한 뒤 협력문제를 논의하자고 했고, 북측은 전력 50만 kW 지원을 전제로 한 제한적 실태조사를 주장했습니다. 양측이 기본입장을 제시한 만큼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동의 기반을 마련한다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정상회담에서 정부가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입니다. 남과 북 사이에 항구적인 평화의 길이 열리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차 정상회담에서 확인했듯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큽니다. 따라서 2차 정상회담의 개최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열리더라도 민족의 장래를 위해 한마음으로 지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경남대로 다시 자리를 옮기셨는데 앞으로 계획은….

“이제는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의 신분입니다. 통일부 장관 재직시에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을 연구하는 대학원 학생들이 북한의 실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준비에 열중하겠습니다.”



주간동아 2001.06.21 289호 (p22~23)

< 김영식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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