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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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스 콤플렉스’ 극복 첫걸음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2-24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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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밍스 콤플렉스’ 극복 첫걸음
    ‘고개 숙인 수정주의’라는 책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4부 ‘평가’ 편을 펼쳐볼 필요가 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이해’와 책의 제목이 된 ‘고개 숙인 수정주의: 한국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출발’ 등 두 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진 4부는 저자인 전상인 교수(한림대 사회학)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미국 내 최고의 한국전문가로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는 1981년 쓴 ‘한국전쟁의 기원’을 통해 한국현대사 연구를 촉발하고 ‘커밍스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커밍스의 이론적 배경은 ‘수정주의’와 ‘세계체제론’이었다. ‘수정주의’는 냉전의 기원을 둘러싸고 미국 사학계가 벌인 학문적 대립과 절충 속에서 태어났다. 즉 1950~60년대를 주도한 전통주의 혹은 정통주의 학파는 냉전의 원인을 소련의 무제한적 팽창주의와 스탈린의 야망에서 찾았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내에서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이 심화하면서 미국(미국의 대외정책)이 냉전의 일차적 책임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수정주의 학파 혹은 신좌파 역사학이 태동한다. 196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한 커밍스가 수정주의 이론의 세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논문 한 편을 할애하며 커밍스의 이론적 성장배경을 설명한 까닭은, 사실상 한국현대사 연구가 1980년대를 전후로 커밍스 이전과 커밍스 이후로 구분될 만큼 커밍스라는 존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사 연구는 1980년대 이전 전통주의에 압도된 ‘예종의 시대’를 지나 80년대 ‘커밍스 신드롬’과 함께 수정주의가 풍미한다. 여기에는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뿐 아니라 한길사가 80년부터 펴낸 ‘해방전후사 인식’ 시리즈도 촉발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커밍스 신드롬’은 ‘커밍스 콤플렉스’와 ‘커밍스 알레르기’라는 극단적인 양태로 나타났다. 80년대 ‘커밍스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90년대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선택적 관계로 보지 않고 둘의 지양(止揚)이 필요하다는, 제3의 시각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연구역량의 축적과 새로운 사료의 출현이 바탕이 됐다. 전상인 교수의 ‘고개 숙인 수정주의’는 바로 커밍스 콤플렉스와 알레르기를 동시에 극복하겠다는 90년대 연구경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책의 앞머리 1부 ‘해방’ 편으로 돌아가면 ‘1946년 경 남한주민의 사회의식’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먼저 자신의 연구방향이 관점이나 시각을 우선시하는 연역법 대신, 사실과 실증을 중요시하는 귀납적 분석방법을 택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교수는 미군정 당시 실시했던 광범위한 여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등 뒤에서 작용하는’ 구조적인 힘이 아닌, 직접 행위자인 보통사람들의 사회의식 분석에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

    결과적으로 광복 직후 일반사람들은 농지재분배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토지개혁을 정부수립 이후의 과제로 생각했다는 것과 토지개혁 방식에 있어서도 비교적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또 미국의 대한정책에 대해 남한주민들이 대체적으로 비판적이었지만 결코 반미라고 하기 어렵다.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는 사회주의가 지배적이었으나 그렇다고 그 사회주의가 반드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아니며 모호한 ‘열정적인 시대정신’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글의 결론에서 “숨막히던 정치-사회적 갈등 속에서 치러냈던 치열한 삶의 체험이 보통사람들의 사회의식을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또한 상식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을까?”라는 의문부호를 단다. 그것은 비단 1946년 만의 문제가 아닌 반세기 이상 흘러간 지금의 시점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2부 ‘전쟁’ 편은 역사사회학적 이론에 기초하여 한국전쟁이 한국사회의 근대적 이행과 국가형성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또 한국전쟁 연구의 공백이라 하는 보통사람들의 한국전쟁 체험을 사회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부분도 돋보인다. 이 부분은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학)의 ‘전쟁과 사회’(돌베개 펴냄)와 입장을 같이한다. 김동춘 교수는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논문의 대부분은 오로지 전쟁의 발발 원인과 책임규명, 특히 소련과 북한의 침략성을 부각시키는 데 과도하게 집중돼 있고 그 나머지 영역은 거의 황무지였다.

    전교수는 전쟁이 끝난 뒤 우리는 감정적 차원의 증오심과 적개심만 키워왔을 뿐, 한국전쟁을 학문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 연구가 시작된 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고 그것도 좌파 수정주의의 세례를 통해 전쟁의 기원이나 발발, 냉전과 국제정치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어느새 6·25 대신 널리 쓰이는 ‘한국전쟁’이라는 말부터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전쟁은 1950~53년의 전쟁이 유일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마지막으로 3부 ‘비교’ 편은 ‘양반과 부르주아’ ‘세계체제 속의 혁명과 전쟁-한국과 베트남’의 비교를 시도했다. 특히 두번째 논문은 20세기 한국과 베트남의 현대사를 세계체제론의 시각에서 비교한 논문으로는 거의 최초로 기억될 만큼 의미 있는 연구다.

    여기에 실린 10편의 논문은 저자가 96년부터 2000년까지 각종 학술지에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광복, 전쟁, 비교, 평가라는 4가지 큰 주제 아래 묶인 10편의 논문은 80년대를 풍미한 수정주의 사관에 대한 반성과 함께, 90년대 한국현대사의 새로운 연구경향을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권의 책으로 읽어도 어색함이 없다. 棟

    고개 숙인 수정주의/ 전상인 지음/ 전통과현대 펴냄/ 452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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