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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에는 ‘번역’이 없다

번역 경시는 ‘지식인의 반역’

문명 접촉 일차적 관문 못 본 체… 난해하게 풀어낸 ‘외국 고전’ 읽어도 뜻 몰라

번역 경시는 ‘지식인의 반역’

대학생이던 1970년대에 고전독서 모임에서 단테의 ‘신곡’을 함께 읽은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몰라 영역본과 우리말 번역을 함께 읽었다. 우리말 ‘신곡’ 번역자는 이탈리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으로 당시 외국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역본과 우리말 번역을 대조하며 읽으면서 실망스러웠다. 무수히 눈에 띄는 오역들 때문에 내용 파악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같은 무렵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택한 방법 중 하나는 영문 원서를 번역서와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었다. 종로 2가의 한 서점에서 영국 작가 H. G. 웰즈가 쓴 역사책을 한 권 구입했는데, 마침 이 책이 당시 서울의 어느 명문 여대에 계시던 한 교수님에 의해 번역된 것을 알고 번역서도 구입했다. 그러나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 읽으면서 정말 놀라움과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일개 대학생이 더듬더듬 사전을 찾아가며 읽는 중에도 숱한 오역과 졸역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몇 해 전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을 번역본으로 한 권 구입했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고, 무엇보다도 번역자가 믿을 만한 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와 총장을 거쳐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을 지내신 분이 번역을 했으니 당연히 잘된 책이지 싶었다. 그러나 앞부분을 몇 장 들춰보다가 그냥 덮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말 문장이 어찌나 난해한지(!) 필자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읽어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명 학자들의 조악한 번역서들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수 본인이 불성실하게 번역한 경우인데, 명색이 교수라면서 일개 대학생에게 책잡힐 정도로 부실한 번역을 했다면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대학원생들에게 적당히 나눠 번역을 맡긴 다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 경우인데, 이것은 도덕 불감증 차원을 넘어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일이다. 조악한 상품에 그럴듯한 가짜 상표를 붙여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이태원의 가짜 외제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대학 신입생이 읽어야 할 ‘고전 목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곤 한다. 그러나 의문이 생긴다. ‘고전 목록’에 오른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은 다 되어 있는지, 번역은 믿을 만하게 되어 있는지, 그리고 추천한 교수들 자신은 읽기나 하고 추천을 하는 건지?



그렇다고 해서 대학생들에게 고전을 읽으려면 직접 영어 독일어 등 원서로 읽으라고 말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에 젖은 지식인의 낯뜨거운 위선이요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속도는 얼마나 느릴 것이며, 내용 파악은 얼마나 부진하겠는가. 잘된 번역을 읽는 것보다 능률이 10분의 1도 안 될 것이다. 번역은 궁극적으로 정보의 대중화,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런 중요한 작업을 경시한다는 것은 ‘지식인의 반역’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번역 작업을 사전만 한 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여기는 연구자들을 간혹 볼 수 있다. (대개 번역 경험이 전혀 없는 ‘논문’지상주의자들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얼마 전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푸른역사 펴냄)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번역에 필요한 참고문헌 구입비만 100만원 가량 들었다. 호메로스, 샤를마뉴, 돈 키호테, 레판토 해전, 베네치아, 비잔티움 등에 관련된 수많은 사실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외래어 표기법의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번역 작업에 들어가면, 영어사전만 해도 대여섯 종류가 동원되고(좋은 역어를 찾기 위해), 그 밖에 그리스어`-`라틴어-`독일어 사전-`그리고 웹스터 인명사전과 지명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이 동원된다. 논문을 쓸 때는 원문의 난해한 부분을 적당히 피해가면서 쓸 수도 있지만 번역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일본의 번역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목사님은 1992년에 이스라엘에 유학 가서 성서고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고고학 강의를 들으면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학기말에 엄청난 과제물로 허덕이는데, 같이 공부하는 일본 친구가 도서관에서 뒤적이는 책을 보니 모두 일본어로 된 책이더라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된 성서고고학 분야의 주된 텍스트들이 그 당시 일본어로 이미 번역되어 있었고, 그 친구는 이스라엘에 오기 이전에 벌써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 알다시피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전문적인 성서고고학 분야의 책들뿐만 아니라 고대어에 대한 주된 텍스트들이 이미 모두 일어로 번역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 펴냄)를 보면,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는 데 번역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이미 19세기 말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과 더불어 정부 내에 번역국(飜譯局)을 두고 조직적으로 서양 서적들의 번역을 추진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메이지 초기에 이미 서양 고전들이 대거 번역되었다. 1881년에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이, 1883년에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몽테스키외의 ‘로마인 성쇠 원인론’이 번역됐다.

이 무렵 일본은 그야말로 번역의 홍수에 빠져 있었다. 오죽하면 ‘역서독법’(譯書讀法)이라 하여, 엄청나게 쏟아지는 번역서들을 안내하는 책자가 나올 정도였다. ‘역서독법’의 저자 야노 후미노는 이 책 서두에서, “최근 번역서 출간이 성황을 이루어 그 권수가 몇 만 권을 헤아린다”고 밝히고 있다. ‘역서독법’이 출간된 해가 1883년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일이다.

특히 1927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는 일본의 번역 문화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필자는 지난 1999년에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소나무)를 출간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 시인 존 밀턴이 쓴, 언론사상사의 고전 ‘아레오파기티카’에 대한,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번역, 주석, 연구서다.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하지 않던 시절이라, 자료 수집과 집필 작업에 10년 가량 걸렸다.

그런데 알아보니 이 문헌은 벌써 1953년에 이와나미 문고에서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 우리와 일본의 격차가 반세기 가량 벌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격차가 반세기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과 몽테스키외의 ‘로마인 성쇠 원인론’은 아직도 번역되지 않았고,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수준 미달의 번역서가 한 권 나와 있을 뿐이다. 격차가 100년 이상인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이미 19세기에 어마어마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을, 우리는 지금도 그 필요성마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상 어느 문명이든 다른 문명과 처음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수행되는 작업은 바로 번역이다. 예컨대 서양 세계는 중국과 접촉을 시작했을 때, 중국 고전을 서양어로 번역하는 일부터 착수했다. 영국인 제임스 레그(James Legge)는 이미 19세기에 중국 고전을 영역하여 정본화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중국 연구는 레그의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도 동양학 관련 박사학위 논문의 반 이상은 중국 문헌의 번역으로 점유되고 있다.

근자에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널리 운위되고 있지만, 필자는 이 말이 썩 내키지 않는다. ‘위기’란 한창 잘 나가다가 추락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문학은 광복 이후 한번도 잘 나가본 적이 없었다. 떡잎 단계부터 영양실조 상태로 비실대며 오늘에 이른 것이 우리 인문학이다.

그리고 번역 작업을 통해 텍스트를 제대로 축적하지 못한 우리의 어두운 공백은 오랫 동안 후학들에게 부담스런 짐이 될 것이다. 번역을 통한 지적 자원 확충 문제는 이제 21세기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영원히 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1.04.12 279호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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