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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 기업 “부실채권이 기막혀!”

뼈 깎는 노력으로 회생시켰더니 ‘빚 내놔라’ … 막강한 자금력 있는 ‘외국계 펀드’ 배불려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워크아웃 기업 “부실채권이 기막혀!”

지난해 워크아웃을 졸업한 경남 마산의 소주생산업체인 ㈜무학 이보상 상무는 최근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기껏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동으로 옮긴 뒤 회복실 행을 기다리고 있던 중, 최근 ㈜무학이 계열사인 무학건설에 지급보증했던 102억원 규모의 보증채권 변제 문제가 다시 발등의 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무학건설이 화의를 신청하고 주채권은행인 동남은행이 당시 1차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문을 닫아버리자 이 대출채권은 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갔고 자산관리공사는 이를 당시 26개의 법정관리 및 화의기업의 부실채권과 함께 묶어 미국계 구조조정 전문펀드인 론스타(Loan Star)에 팔아넘겼다. 이 당시 론스타측이 자산관리공사로부터 사들인 102억원대 부실채권의 규모는 액면가의 3% 수준인 3억600만원. 무학소주는 그러나 지리한 협상 끝에 최근 부실채권 회수 금액을 84억원대로 결정지었다. 론스타 입장에서 보면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회생 과정에 있는 무학측에 84억원이라는 금액으로 부실채권을 되팔면서 8개월 만에 가만히 앉아서 28배 가까운 차익을 남기는 ‘횡재’를 얻었고 무학 입장에서 보면 다운당했다가 일어나면서 다시 카운터 펀치를 맞은 것이다. 이상무는 “이 금액을 우리가 모두 변제해야 한다면 다시 부도날 판”이라고 말했다.

“변제하려다 또다시 부도날 판”

게다가 협상 과정에서 론스타측은 무학소주가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나자 60억∼70억원 에서 부실채권 매각 협상을 벌이던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 부실채권 금액 102억원에 연체이자까지 합친 금액(140억원대)을 소송 및 강제집행 절차를 거쳐 전액 회수하겠다는 최고장을 보내는 등 압박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무학측이 84억원이라는 금액을 받아들인 것도 이런 압박작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무학측 관계자는 “매출채권에 대한 가압류가 들어오고 론스타측에 원금과 연체이자를 전액 지불했을 경우 다른 채권은행들의 대출금 회수 압력 때문에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문제는 이들 외국계 투자펀드가 챙겨가는 막대한 차익이 결국은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투입된 공적자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낮은 가격으로라도 우선 팔아치워서 외국인 투자가들을 유치하는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기껏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기업을 회생해 놓았더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빚을 몽땅 다 내놓으라는 식이어서 이들 외국계 투자펀드의 ‘카운터 펀치’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미국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구조조정 전문펀드인 론스타는 최근 여의도 동양증권빌딩과 SK증권빌딩을 잇달아 사들이면서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한 부동산 투자회사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론스타 펀드는 구조조정 과정에 있는 국가에 사무실을 차리고 부실채권 인수 후 매각을 통해 차익을 남기는 구조조정 전문 펀드로 더욱 유명하다. 특히 론스타의 존 그레이킨 회장은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수조원을 끌어들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능한 구조조정 전문가로 꼽힌다.

그렇다면 과연 무학소주의 경우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케이스에 불과한 것일까. 금융전문가들은 기업구조조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지난 98년부터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매각에 골드먼 삭스 등 외국계 투자은행과 론스타 등 구조조정 전문 펀드들이 입찰에 응하면서 부실채권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부실채권 시장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외국계 구조조정 펀드나 투자은행들은 우선 구조조정회사를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인 자금 조달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전담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근 자산관리공사가 주관하는 부실채권 매각을 위한 입찰에는 론스타나 골드먼 삭스, 모건스탠리뿐만 아니라 일부 국내기업을 포함해 10여개 업체들이 응찰하는 등 날로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삼성생명과 같은 국내 우량 금융기관도 도이체방크 등 유럽계 금융기관과 합작해 유동자산 관리회사를 세우는 등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기업의 실적은 미미한 편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실질적인 부실채권 관련 업무는 도이체방크에서 담당하고, 조인트 벤처에 참여해 이제 막 노하우를 익혀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기관의 경우 외국계 투자펀드들보다 국내 금융시장의 관행에 훨씬 익숙하고 업계의 인맥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들 중에서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기업은 별로 없는 형편. 지난해 10월 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 설립을 위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실무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 데다 투자 매력이 있는 워크아웃 기업도 별로 없어 ‘국내 1호 CRV’는 생겨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진폭은 줄어들고 경쟁은 치열해지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외국계 투자은행이나 투자펀드들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시장 역시 더욱 심한 각축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IMF 위기 직후인 98년만 해도 ‘헐값’ 논란이 일 정도로 싼값으로 부실채권을 팔아치우는 데 급급했지만 그 이후 경매 입찰 방식을 도입하면서 액면가의 30∼40% 수준으로 가격이 뛰어올랐다. 당연히 구조조정 전문회사들 입장에서는 마진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 론스타에서 근무했던 외국계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론스타도 25%의 목표 수익률을 내놓고는 있지만 실제로 그런 수익률을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부동산 담보 채권의 경우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면 10%의 수익률도 올리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편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한국 기업들이 구조조정 시장의 생리에 익숙지 않아 미숙한 대응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골드먼 삭스의 한 관계자는 “일부 워크아웃기업을 보면 재무정보는 하나도 내놓지 않고 도망만 다니다가 외국계 구조조정회사의 ‘그렇다면 법대로 하자’는 논리에 말려드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호 협상을 통해 부실채권 가격을 적정 선에서 조정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무학소주의 경우도 론스타측이 원리원칙대로 원금+연체이자를 모두 회수하겠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이 구조조정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은 부실채권 인수 등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댈 능력을 갖고 있는 은행이 거의 없는데다 채권단과의 협상 능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 역시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구조조정 회사 설립의 길이 열렸지만 철저히 상업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이들 부실채권 시장에 적응하려면 하루빨리 구조조정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앙대 오규택 교수(경영학)는 “외국계 구조조정 전문 펀드의 경우 대상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어부지리를 노리거나 불로소득에만 관심이 있는 투자펀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01.04.12 279호 (p22~23)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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