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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 ‘음지’에서 ‘양지’로

3·26 개각 이후 자신감 회복 … “당의 주인은 우리, 이제부터 목소리 내겠다”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권노갑 … ‘음지’에서 ‘양지’로

권노갑 … ‘음지’에서 ‘양지’로
”권노갑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다 아는데 무슨 명함이 필요 있나.”지난 3월28일 일선에서 물러난 지 3개월여 만에 서울 마포에 새로 사무실을 연 자리에서 당 고문 추대설을 묻는 질문에 대한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대답이다. 이날 그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석했던 김옥두 의원도 “(정위원은) 없는 사실을 사실인 양 말해 한나라당만 기쁘게 했다. 인기에 영합하는 소영웅주의는 용납할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정위원의 2선퇴진론을 소영웅주의로 깎아 내렸다.

권 전 위원은 이튿날에도 “내가 쇄신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 음해성 유언비어 갖고 말해 하도 어처구니없어서 최고위원직을 물러난 것”이라며 “민주당은 40년 피와 땀이 배어 있고 그동안 온갖 고난 고초 당하고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내가 쇄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새삼 강조했다.

지난 3·26 개각 이후 권 전 위원을 필두로 한 동교동 구주류의 자신감이 어디까지 올라가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권 전 위원이 개각의 의미를 다 흐려 놓았다”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개각을 하면 그 내용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에도 불구하고 얼마간 국정 쇄신의 분위기가 형성되게 마련인데, 개각하자마자 구주류들이 목청을 높이는 바람에 민생이 아니라 ‘동교동 구파’를 위한 개각처럼 모양이 변질돼 개각 본래의 목적과 효과가 상실됐다는 지적이다. 4월1일 단행된 21명의 차관급 인사는 바로 이런 정황이 십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동교동 구주류는 개각 직후의 ‘흥분기’를 지나면서 보폭 조절을 하고 있다. 너무 액셀러레이터를 밟다 보면 또다시 다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로 3월30일 수명의 민주당 초선의원 핵심들이 회동, 폭탄주를 돌리면서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한 사과 요구 등 구주류의 최근 행태를 성토하면서 ‘집단 움직임’ 재개를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권노갑 전 위원이 최근 “공개사과 요구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우연히 나온 말일 뿐”이라고 자신의 발언 강도를 낮춘 것도 이런 움직임을 의식한 듯하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1일 오후 귀국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권 전 위원의 공개사과 요구에 대해 “지금은 소소한 일에 얽매일 때가 아니며 여야 정치인 모두 구식정치를 버리자”고 말함으로써 사과를 할 용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지금은) 할 일 많은 미래를 향해 당당하게 전진할 때”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 동교동 신주류와 구주류는 여전히 예각을 세운 채 대치하고 있다.

신임 박지원 청와대정책기획수석은 지난 3월28일 당시 미국에 있던 한화갑 최고위원에게 전화한 얘기를 하면서 ‘왜 한위원에게 전화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나를 권노갑 최고위원 계보로 잘못 분류하니까…”라고 답한 적이 있다. 박수석은 평소 자신이 구주류도 신주류도 아닌 ‘김대중 계보’임을 강조해왔다. 사실 박수석은 계파에 상관없이 범 동교동계 인사들을 아우르는 허물 없는 관계를 두루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는 권노갑 전 고문을 위시한 구주류와 가깝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 점에서는 신건 국정원장도 마찬가지다.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권 전 고문을 필두로 남궁진 정무수석, 박지원 수석, 안동선 최고위원, 이해찬 정책위의장, 김옥두 전 사무총장 등이 구주류로 분리되는 것은 이들이 ‘당의 주인은 우리’라는 강한 공감대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옛날 평민당 시절부터 시작해 민주당과 국민회의를 거쳐 집권 새천년민주당이 되기까지 당을 살찌우고 정권교체를 이룩해낸 일등 공신이자 주인공은 우리라는 끈끈한 유대감이 이들을 묶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영입 인사들에 대한 일정한 반발 내지 배척으로 나타나는 것.

따라서 김중권 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쳐 민주당 대표로 왔을 때 구주류의 당혹감과 낭패감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일을 당한 그런 심정이었던 것. 권노갑 전 고문은 사석에서 “김대표가 대권 후보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김대표와 권 전 고문 사이에는 일종의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있어 두 사람 의 관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3월 몇 차례 골프 회동 및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는 권 전 고문이 김대표에 대한 예전의 ‘적대감’을 어느 정도 거둬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김대표가 권 전 위원과 정위원의 중재에 나서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이에 대해 김대표의 한 측근은 “권 전 고문을 만나고 온 김대표의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만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주류와 구주류 사이의 긴장관계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권 전 위원의 ‘평창동 캠프’ 인사들에게서는 구주류가 다시 힘을 얻은 이상 과거의 일을 정리하고 손볼 것은 손보고 넘어가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읽힌다. 또한 권 전 위원의 최근 행보에는 단순한 명예 회복 이상의 의미가 담긴 듯하다.

이와 관련,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권부(권 전 고문의 별칭)는 ‘포스트 DJ’를 노리고 있다. 어차피 김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누군가는 민주당을 새로 장악해야 한다. 새 주인이 필요하게 돼 있고, 권부는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지에만 머물러 있던 자신의 이미지와 위상을 일대 쇄신할 필요성이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한 사과 요구에는 막후 참모가 아니라 양지의 실력자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번 개각을 통한 구주류의 재입성과 약진은 ‘포스트 DJ’를 노리는 각 세력이나 인사들간 파워 게임의 본격 개막이라는 새로운 불씨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화갑 최고위원과의 관계가 새삼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최고위원은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3월31일 “개각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대답을 회피하며, 권 전 고문의 사무실 개소에 대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현재 구주류는 “(김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 회복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전임 김성재 정책기획수석 시절 만들어졌던 ‘성공한 대통령론’이 이들의 정치적 명분으로 내세워진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주간동아 2001.04.12 279호 (p18~19)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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