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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16>|광주민주화운동과 군 진압

“군인들 구타 당하는 사진 찾아라”

전두환 “군부 과격진압에 대한 반박자료 챙겨라” 지시 문맥곳곳 ‘까만색 떡칠’ 내용궁금

“군인들 구타 당하는 사진 찾아라”

“군인들 구타 당하는 사진 찾아라”
“시민들이 군인 폭행하는 사진 찾아라.”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해 놓은 미 국방부의 비밀문서들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밀 분류에서 해제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정보공개법(FOIA·Freedom of Information Act)에 따라 특정 시기, 특정 사건, 특정 부처 문서의 비밀 해제를 요청할 경우에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문건들은 여전히 엄밀한 비밀 해제 작업을 거쳐 검정 띠로 여기저기가 가려진 채 공개된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 문건의 경우 펜타곤의 국방정보국(DIA) 자료는 문맥을 이어나갈 수 없을 만큼 까만 ‘떡칠’이 되어 나온다. 광주 현장에서 첩보 활동을 했던 국방정보국 소속 보고자의 이름, 보고 날짜, 한국군 부대명은 물론, 국방정보국 내 접수처와 심지어 접수 날짜 및 시간조차 가려 있는 경우가 흔하다.

국방정보국의 일부 첩보정보보고서(Intelligence Information Report)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1982년에도 특전사령부 병력의 이동을 샅샅이 추적하고 있다. 다음은 삭제되지 않은 내용 가운데 일부를 가려 뽑은 것이다.

‘특전사 제27대대는 평시 임무인 대통령 경호 업무를 수행중.’

‘특전사 제11연대와 제13연대는 각각 1개 대대가 감축된 채 운영되기 때문에 현재는 분리된 상태인 것으로 보임.’



‘특수 임무를 맡고 있는 제 707 대대는 최소 1개 본부 중대와 1개 고공낙하(HALO·High Altitude Low Opening) 중대, 1개 반(反)테러 중대로 구성되어 있음. 2월 제주도의 C-123기 추락 사건 (스쿠버 중대 소속 병력 50명 사망) 사망자 장례식에서 이 대대 소속 병력 일부가 ×××××(문서 내용 삭제된 부분: 역주). 반테러 중대 소속일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병력은 민간인 복장을 착용하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으며, 여타 병력은 검정색 군복을 착용하고 있음.’

‘한국군 1군 지역에 있던 특전사 제11연대가 전라남도 담양 인근 지역으로 이동할 것이며, 초원 계곡(의정부 지역: 역주)에 주둔하던 제13연대는 충청북도 청주 인근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임.

부대 이동의 가장 주된 이유는, 위의 2개 연대가 너무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교전 상태가 발생할 경우 불가피하게 재래식 전투에 개입하게 되고,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임. 새 주둔지는 비행장에 가장 가까운 지역임.’

그러나 제11연대가 새로 주둔하게 된 지역은 반대파(dissent)의 온상(hotbed)인 전라남도 지역으로, 1개 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곳임. 정보원에 따르면 한국군은 11연대를 국내 치안용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음.’

특전사의 기구와 구성, 주요 인물 및 배치 상황을 지도와 도표를 첨부해 보고하고 있는 이 문서(제목: 한국군 특전사 구성, 정보 보고일: 1982년 6월24일)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보고서에 비하면 삭제된 내용이 훨씬 덜한 편이다.

1980년 5월의 국방정보국 정보보고서는 한반도 약도 및 남한 지도와 부대 구성 및 배치 도표 등이 매 문서마다 첨부되어 있어 지역 전투 상황 도표를 보는 듯한 정도며, 물론 대부분의 주요 내용은 삭제되거나 가려 있어 문맥을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군인들 구타 당하는 사진 찾아라”
이에 비하면 국무부의 비밀 전문들은 삭제의 정도에서 상태가 꽤 양호한 편이다. 주한 미 대사관이 국무부 동아시아 지역국으로 타전한 광주민주화운동 상황 보고 전문은 거의 일지 형식에 가깝다. 하루에 열두 건을 타전한 경우도 있다.

펜타곤에서 부분적으로 삭제되어 공개된 문서 가운데 가까스로 전체 문맥을 파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전라도 출신 육군 장교들의 광주 수송’이라는 제목이 붙은 1980년 5월21일자 문서다. 워싱턴 국방부의 국방정보국이 접수처로 되어 있고 서울 미 사령관실, 호놀룰루의 미 태평양 사령부, 워싱턴 국무장관실, CIA 등에도 배포되었으며, 전체 문장은 영문 8행짜리다.

‘한국 시각 5월21일 오전을 기해 한국 육군은 전라도 출신 장교들을 폭동 진압 임무를 위해 광주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렸음. 이 지역 출신 장교들이 더 성공적으로 데모를 진압할 것이며, 지역 유대감과 지역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명령을 하달한 이유임. 이 명령은 일부의 반발을 샀으나 큰 저항은 아니었으며, 대부분은 마지못해 명령에 복종했음.’

1980년 6월25일, 국방정보국이 작성한 또 하나의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조사에 대한 정보다. 국방정보국의 다른 광주민주화운동 문서와 마찬가지로 군데군데가 삭제되어 있다.

‘전두환은 정부 조사관들에게 학생이나 민간인들이 군인을 구타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필름)을 찾아낼 것을 명령했음. 이 사진을 구하려는 것은, ‘타임’ ‘뉴스위크’ 등 외신이, 저항하는 민간인에 대해 군인들(대부분 특전사 병력)이 잔혹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도한 것을 상쇄시키려는 의도임. 또한 그러한 물증은 반정부 활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음. 아무 것도 발견된 것이 없음. 아마도 광주 주민들이 정부 대표자들에게 협조를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임.

친정부적으로 비치거나 광주 시민에 호의적이지 않게 보이도록 편집이 된 필름을 구하는 노력과 관련해, 전두환은 주일 한국 대사관에 일본 텔레비전에 방영된 필름의 VTR를 보내도록 지시했음.’

그러나 당시 군부가 원했던 그림 자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일본 텔레비전에 방영된 동영상은 특전사 병력의 무자비한 폭동 진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문서는 당시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림 자료 조작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일본 텔레비전 보도물은 전두환이 의도하는 바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광주 상황에서 특전사 병력이 과잉 대응했다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될 것임. 만약 전두환이 그 필름의 일부라도 활용하고자 할 때는 상당 부분에 손을 대야 할 것임.’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한 특전사 병력 투입 및 강경 진압과 관련해, 군 내부에서 이의가 제기되었으며 책임자에 대한 징계 조치가 거론되었다는 사실도 이 문서는 밝히고 있다.

‘광주 사태 발단시 특전사 병력이 보여준 모습이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긴 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음. ×××(문맥으로 보아 ‘징계’인 듯함: 역주) 조치가 취해질 경우 이제 군 내부에서 잡음의 소지가 될 수 있음(주로 핵심 그룹이 그 잡음의 소지가 될 것인 바, 특전사 지휘관들은 군부 내의 첫째 가는 핵심 그룹 멤버들이었기 때문임).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적절한 징계 조치는 장시간에 걸쳐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취해질 것임.’

1980년 당시 미 국방부와 국무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riot) 또는 ‘사건’(accident)이라 불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명칭은 변함이 없으며, 광주의 진상을 밝혀낼 자료는 여전히 비밀 문서고에 재워져 있다.

사건 당사자인 국내에서는 국회 청문회와 진상 조사 과정을 거쳐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이 되긴 했지만, 사태의 시말을 밝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서들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청문회에서 오간 증빙 자료 없는 논쟁과, 사후 피해자 조사에 의한 현장 기록만이 1980년 5월의 광주를 공허하게 대변하고 있을 뿐, 정작 공식 기록은 없다.

광주를 말하면서 아직도 미 국방정보국 첩보정보보고서의 글자 하나 문장 한 줄에 매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주간동아 2000.12.14 263호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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