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 코미디의 경우라면 배우의 몫은 더 커진다. 자유자재로 동작과 표정을 바꾸어가며 천연덕스럽게 착한 사람도 되었다가, 또 천하에 몹쓸 악인이 될 수도 있는 사람. 그러면서 10분마다 한 번씩 관객을 웃음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수 있는 배우가 과연 있을까. 그의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떠올릴 수 있는 이름, 바로 짐 캐리다.
짐 캐리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영화 ‘마스크’에서 그는 소심한 은행원이었다가 가면만 쓰면 멋진 영웅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이번엔 가면도 벗은 채 이성적이고 착한 찰리와, 원시적인 리비도의 결정체 같은 행크를 동시에 연기해냈다. 서로 싸우는 행크와 찰리를 혼자서 연기하는 짐 캐리를 보고 있자면, 그가 태생부터 타고난 코미디언임을 느끼게 된다. ‘마스크’가 그랬듯,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역시 짐 캐리에 의한, 짐 캐리를 위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세상의 모든 금기를 깨는’ 영화감독 패럴리 형제의 작품이란 점이다. 성과 배설에 대한 외설적 개그를 스크린에 펼쳐놓는 것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들 형제 감독은 ‘덤 앤 더머’ 이후 다시 짐 캐리와 손잡고 엽기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탄생시켰다.
17년 경력의 로드 아일랜드 경찰 찰리는 아내가 흑인 운전사와 눈이 맞아 아이들을 두고 떠나버렸지만 화 한번 안 내고 아이들을 키우며 착하게 살아간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 마냥 속으로 삭이며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 뒤 포악하게 돌변한다. 마음속에 쌓인 분노가 행크라는 전혀 다른 인격체를 만들어낸 것. 행크는 찰리와 달리 거친 욕을 해대며 인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여자 앞에서 섹스만 밝히는 인물. 어느 날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에 연행돼 온 아이린(르네 젤위거)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둘이 동시에 아이린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피 튀기는 전쟁을 시작한다.
패럴리표 영화답게 기괴하고 불편한 장면이 많아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영화지만, 정서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기발한 장면이 많다. 짐 캐리의 뛰어난 연기를 감상하면서, 내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나와 은밀한 만남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주간동아 251호 (p174~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