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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신라의 전령사’를 아십니까

17년째 경주 안내 ‘코리아 렌터카’의 박정호부장… “신라 역사 손금 보듯”

‘신라의 전령사’를 아십니까

‘신라의 전령사’를 아십니까
경주(慶州)를 찾는 관광객이 들르는 코스는 대개 정해져 있다.

경부고속도로 경주톨게이트에 들어와 우회전한다. 그러면 벚꽃길과 보문호수를 끼고 보문관광단지가 나온다. 놀이공원-콘도-호텔-온천-외식업소-골프장이 즐비한 이곳에서 여흥을 즐기고 자동차로 5분을 가서 불국사-석굴암을 둘러보면 ‘경주관광은 끝’이다. 조금 더 경주에 관심이 있다면 경주박물관이나 천마총 정도가 추가된다. 경주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지만 2000년 역사를 가진 도시를 보고 온 경험이 이런 이유로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외지인들에게 경주의 모습이 이처럼 단순하게만 알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1983년부터 17년째 ‘신라의 전령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코리아렌터카 영업부장 박정호씨(45). 그는 관광안내를 의뢰한 국내외 관광객들을 승합차에 싣고 경주의 구석구석을 돌며 문화재에 얽힌 얘기를 해주며 살아간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도 한몫

박씨를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보통의 여행사 가이드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경주 평야와 경주남산에 수천, 수만 가지로 널려 있는 이름없는 바위 하나, 기와 한 장에서도 고대제국의 화려한 옛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1월13일 오전 대구 동대구역에서 박씨는 서울에서 온 손님 4명을 태우고 경주로 향했다. 박씨의 ‘명성’을 듣고 그에게 경주문화재 안내를 부탁한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첫 방문지는 신라 38대 신문왕릉으로 알려진 외동읍 괘릉. 보문단지나 불국사등 유명 관광지에선 꽤 떨어진 시골길 주변에 위치한 사적지다. 한 학생이 왕릉 주위를 돌아보다가 왕릉받침 부분에 붉은 먹물로 깊게 쓰인 12자의 한자들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박씨는 거침없이 궁금증을 풀어줬다. “신라시대 때 쓴 글이 아닙니다. 글 내용을 해석하면… 음, 결국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이 능으로 야유회를 온 조선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이 왔다간 것을 알리기 위해 낙서를 한 겁니다.”

박씨는 학생들을 능 아래 무인석상 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능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는 이 석상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장대한 체구를 가진 서역사람의 얼굴이죠. 더 자세히 보면 앞니 몇 개가 함몰된 60대의 모습입니다.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살짝 덮고 있죠. 조각가는 이렇게 정교한 기법으로 나이까지 묘사했습니다. 이런 점으로 봐서 이 석상은 실제인물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석상의 주인공은 아마 실크로드나 뱃길로 서기 700년대의 신라에 와서 오랫동안 신라왕을 보위한 아랍의 노병인지도 모르죠.”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씨의 눈길은 이번엔 무인석상 옆 동물조각상들에게 향했다. 학계에선 이 동물들을 사자로 보고 있다고 박씨는 소개했다. 다음 부분은 이에 대한 박씨의 개인의견이다. “사자를 조각한 것이 맞긴 한데 주위의 다른 정교한 조각들과 비교했을 때 사실성이 크게 떨어져요. 결론은 사자가 이 시대에 신라에까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라인은 사자를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사자에 대해 전해져 온 말이나 사자그림 같은 것을 보고 이 상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맹수인 사자에게도 ‘인격’을 부여했죠. 석상 옆 사자의 입은 웃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경주를 방문한 관광객이 괘릉을 찾아갈 확률은 거의 없다. 만약 이곳을 들르더라도 한 번 흘끗 보고는 5분도 안돼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박씨의 안내를 받은 학생들은 어느새 괘릉의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괘릉에 얽힌 신라인의 정서를 현장에서 어느 정도 느끼고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박씨 일행은 이날 오후 경주남산에 갔다. 박씨가 가장 사랑하며 아끼는 곳이다. 40여개의 등산로가 모두 폐쇄되고 지금은 포석정에서 통일 전까지 8km 길이의 등산로 한 곳만 통행이 허용된다. 이 길을 따라서 만 50여개의 유적들이 보인다. 신라시대엔 남산 주변에 궁궐이 있었고 성곽, 수많은 절과 가옥들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서울의 남산보다 조금 큰 경주남산은 그래서 지금은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다. 박씨 일행은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서출지’에 이르렀다. 편지가 나온 연못이라는 지명이다. ‘신라시대 21대 소지왕이 이 연못을 지날 때 봉투를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쓰인 편지를 받았다’는 전설이 박씨의 구수한 입담을 통해 흘러나왔다.

박씨는 고졸 출신이지만 역사학, 고고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가의 전문가들이 경주를 방문할 때 꼭 찾아와 동행을 부탁하는 사람이다. 동양미술의 가이드로 박씨를 따라갈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박씨는 일본인들에게 더 유명하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 한정된 시간에 꼭 알고 지나가야 할 것들만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스케줄관리 능력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와세다-교토-시가현립대학 등 일본 각지의 대학생들이 단골고객이다. 지난해 박씨는 150여명의 일본손님에게 문화재 안내를 했다.

지난해 11월24일엔 스웨덴 왕립회의 고고학-동양미술사 전공회원 2명의 경주답사에 동행했다. 지난해 11월8일부터 21일까지 일본학자 2명에게 강릉-안동-충주-원주 등지를 안내하기도 했다.

박씨의 유명세는 15년전 부인과 사별한 뒤 혼자 살면서 서울대 법대에 다니는 아들(23) 뒷바라지 외엔 오로지 신라문화재 연구에만 정열을 쏟은 결과다. 박씨는 한국고미술역사학회, 석조문화연구회, 신라문화진흥회, 삼국유사절터찾기모임, 사진서클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다양한 문화체험을 한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서관과 대학, 인터넷에 산재해 있는 경주문화재 관련 연구논문과 책들을 열람하거나 수집해 자신의 경험을 체계화시켰다고 한다.

박씨의 과외활동도 문화재와 관련된 것들이다. 박씨는 98년 12월 경주 왕경지구에서 신라시대 당시 건설된 20m 정도 길이의 하수구를 발견했다. 고대 경주시의 영역이 98년 당시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었다는 증거가 나온 셈이었다.

박씨는 자신의 역할을 전문가와 일반인을 연결해 주는 데서 찾는다. 문화유산을 연구실에만 가둬 두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박씨는 “대중이 문화유산을 즐겨 찾으며 그 의미를 공유할 때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피할 수 있습니다. 저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고 말했다.

일본인 학자들과 동행할 때 박씨는 가슴 아픈 일을 종종 경험한다. 일본인 학자들은 때때로 한국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신라문화재에 관한 정보를 들고와 현장 안내를 부탁한다고 한다. 박씨는 일본학자들이 일제시대 자신의 선배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수많은 신라유적들과 그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에서 그런 정보들을 얻으리라고 추론할 뿐이다.

경주는 박정호씨에게 어떤 의미일까. 박씨는 정일근시인의 ‘길-경주남산’을 읊으며 자신의 마음을 빗대고 있다.

“나는 천 년 전에도 이 길을 걸어 가던/ 신라의 사람이었으리/ …/ 다시 천 년이 흘러간 뒤에도 나는/ 즐거이 이 길을 걸어가려니….”

프로필

● 75년 경북 울진군 후포고 졸

● 79년 삼진렌트카 입사

● 88년 한국고미술역사학회 회원

● 94년 신라문화진흥원 전문간사위원 삼국유사절터찾기모임 부회장

● 95년 코리아렌터카 영업부장

● 가족관계:77년 결혼한 유화자씨 (85년 사별)와의 사이에 1남




주간동아 219호 (p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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