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9

2000.01.27

‘인사 X파일’ 그것이 궁금하다

인성-활동-여자관계 등 개인 신상정보 상세 기록… 인재 등용 자료로 활용, 객관성엔 의문

  • 입력2006-06-21 12: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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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 X파일’ 그것이 궁금하다
    ‘박태준 내각’이 들어선 지난 1월13일의 개각에서 김대중대통령이 기존의 ‘존안카드’, 즉 인사 파일을 거의 참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대통령 인사참고 자료의 우선 순위가 크게 바뀌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김대통령은 인사할 때 존안카드에 의존하지 않는 스타일” 이라면서 “김대통령의 머리가 곧 존안카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문용린 교육부장관의 발탁이 항간에서는 의외라고 하지만 김대통령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교수를 교육부장관에 임명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존안카드를 보면서 어떤 사람을 발탁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사람을 정해놓고 그 사람에게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지 존안카드를 참고하는 정도라는 것.

    따라서 김대통령의 인선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청와대의 존안카드가 그렇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김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검증한 사람은 외부 비판이나 이견에 별로 개의치 않는 인사 스타일을 보여왔다. 박지원 문광부장관, 이강래 전정무수석, 김태동 전경제수석의 발탁 과정이 증명하듯 김대통령은 존안카드 내용이나 외부 이견보다 자신의 판단에 충실한 경우가 많다.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존안카드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든 측근 인사들에 대해서는 김대통령이 다 알고 있으므로 측근 인사들에게는 존안카드 내용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김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경우, 굳이 존안카드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

    김대통령이 존안카드를 멀리하는 데에는 과거 정권에서 작성된 존안카드의 내용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작용하는 듯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권 때의 존안카드에는 현 정권과 가까운 사람은 거의 나쁘게 기록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존의 존안카드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처음부터 존안카드를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98년 2월 대통령당선자 시절 김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진 인선 과정에서 모두 5종류의 존안카드를 참조했다. 청와대와 안기부(현 국정원)를 비롯해 검찰, 경찰, 기무사 등의 존안카드였다. 당시 김중권비서실장이 ‘김영삼 청와대’로부터 넘겨받은 존안카드에는 장차관을 비롯한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산하 단체장과 임원, 재계와 군 인사, 대학 교수와 언론사 부장급 이상 2665명의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기관의 것들은 훨씬 방대한 분량이었다는 것.



    당시 김중권실장은 이례적으로 청와대 사회복지수석 후보로 거론된 모 차관의 존안카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존안카드 내용이 이렇듯 공개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일부 공개된 그 내용을 보면 ‘거제군수와 경남지사… 등 역임. 현안에 발빠르게 대처한다는 평. KAL기 괌 추락사고 당시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고… 산책과 등산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등 자기관리에 철저함. 문민정부에서 요직을 지내 참신성은 미비하나 지역안배 차원에서… 거제군수 시절 지역유지가 거둬준 촌지를 불우 이웃에게 나눠줘 신망….’ 등이다.

    당시 김실장은 이를 공개하면서 “이것은 청와대에서 만든 게 아니다”고 말했다. 김실장은 또 “내 카드는 어떻게 돼 있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내 것은 빼고 보냈더라”고 소개했다. 소위 여권 실세라 할지라도 자신의 존안카드 내용을 알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민회의의 한 부총재는 “내 존안카드 내용이 알고 싶어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또 당시 이종찬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내정자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존안카드를 해명자료로 참고하는 것은 몰라도 (인선의) 기본자료로 해서는 곤란할 것”이라며 “존안카드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위원장은 “노태우전대통령이 나를 까닭없이 미워하는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존안카드에 내가 ‘노태우씨는 결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종종 존안카드에 기재된다”고 밝혀 존안카드에 대한 궁금증을 일부나마 풀어주었다. 그가 강한 어조로 존안카드의 해악성에 대해 말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렇듯 김대통령 인선 참고자료의 우선 순위가 바뀌는 것과 병행해 최근 중앙인사위원회(위원장 김광웅 전서울대교수)가 ‘국가인재 활용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사회 각 분야의 간부급 인사들은 최근 중앙인사위로부터 발송된 서류 하나씩을 받았다. 이는 중앙인사위가 추진하는 이른바 ‘국가인재 DB(데이터 베이스)’ 구축 작업의 일환. 이 서류에는 기초적인 경력 학력 병역과 함께 주요자격-면허증, 주요 활동, 외국어 능력, 업무능력 및 자질에 대한 자기평가, 자신있게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등이 들어 있다.

    이와 관련, 김광웅위원장은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는 열린 정부의 한 모습”이라며 “양질의 인력을 발굴, 적재적소에 배치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위원장에 따르면 최근 문화관광부에서 국립박물관장과 심사위원에 적합한 사람들을 문의해 와 DB에서 20여명 정도 선택해 명단을 제시했더니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 김위원장은 “우리 DB 작업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고 장차관 임명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하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임명권자도 우리 DB 내용을 필요로 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권에 정통한 한 인사도 “기존의 존안카드는 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담당자들의 편견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면서 “이제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 자료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중앙인사위는 현재 각 사회단체와 기관을 통하여 해당 분야의 인재를 추천받는 중이다. 지금까지 사무관 이상 공무원 4만7000여명, 민간기업 및 사회단체 임원 이상, 예술가 등 민간인 1만여명 등 5만7000여명 정도가 입력되었는데, 김위원장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 추천을 더 받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인사위측의 작업과 상관없이 자신을 인재라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중앙인사위 홈페이지(www.csc.go.kr) ‘국가인재 DB’ 코너의 ‘민간전문가 등록’란으로 들어가면 직접 등록할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을 담당하는 이인호씨는 “현재 1000여명 정도가 민간 전문가로 자신을 직접 등록했다”며 “엉터리로 기입하거나 황당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중앙인사위는 “개인정보는 공직에의 추천 및 인사정책 수립을 위한 내부 자료로만 활용하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가 없도록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중앙인사위의 ‘국가인재 DB’의 활용은 김위원장의 말처럼 임명권자의 선택과 의지에 달린 듯하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 구축이 완성되고 활용도가 높아진다 해도 존안카드 자체가 없어지는 일은 없을 듯하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국가인재 DB가 대략적인 인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몇 배수로 확정된 다음부터는 아무래도 존안카드 내용을 참고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취합 관리하는 존안카드와 별개로 아태평화재단에서 그동안 만들어온 극비 인사자료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중권전실장이 존안카드 내용 일부를 공개하면서 “존안카드를 보니 여자관계를 깨끗이 해야겠더라”고 말한 것처럼, 상세한 ‘사생활 정보’는 때에 따라 인재 등용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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