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1

1999.12.02

떠나야 할 때 떠나는 선동렬

  • 김상수/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ssoo@donga.com

    입력2007-03-15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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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계에 전설처럼 흘러내려오는 일화 몇 토막.

    고려대 81학번 동기인 LG 정삼흠과 선동렬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나이는 정삼흠이 두살 위였지만 동기인 데다 죽이 잘 맞아 학교 때부터 잘 붙어다녔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상대 구장으로 원정을 가면 서로 대접을 극진하게 해서 돌려보냈다. 물론 이 대접이라는 게 거나한 ‘술대접’이 대부분.

    한번은 LG 정삼흠이 해태와의 경기를 위해 광주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어김없이 저녁에 만난 둘은 다음날 선발투수라는 사실도 잊고 ‘부어라, 마셔라’ 밤새 술을 마셨다. 1차를 거쳐 2차를 지나 3차까지 가고 나니 어느 새 동이 터오기 시작.



    그나마 그날 게임이 밤에 벌어졌으면 좋으련만 하필 낮경기. 눈도 제대로 못붙이고 광주구장에서 마주친 두 사람. 입에선 술냄새가 진동하고 눈은 벌개져 있으니 서로 웃음을 참지 못할 수밖에.

    하지만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둘의 대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불꽃이 튀겼다. 결과는 선동렬의 1대 0 완봉승. 정삼흠이 “인간이 아니다”며 혀를 내두른 것은 물론이었다.

    정삼흠은 85년 선동렬이 몸값을 올리기 위해 프로계약을 회피하고 해태 구단 관계자들을 피할 때 자신의 집 ‘다락방’을 은신처로 제공하기도 했다.

    선동렬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고스톱. 선수들이 한가할 때 심심풀이로 치는 고스톱이었지만 ‘선동렬의 지갑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대단한 실력파였다.

    비상한 머리도 머리지만 많은 사람들은 남에게 절대로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일화도 수없이 많고 실력도 대한민국에서 첫 손가락인 선동렬.

    그가 11월22일 은퇴를 발표했다. 팬들에겐 많은 아쉬움이 남겠지만 “정상에 있을 때 유니폼을 벗겠다”는 평소 소신을 실천한 셈이다.

    타자를 압도하는 다이내믹한 투구폼을 이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물러날 때’를 제대로 아는 그의 ‘명예로운 은퇴’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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