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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마라톤팀 파문

42.195km… 우린 뛰고 싶다

단장 간섭 . 일방 통행식 훈련 . 베짱기업 ‘3災’에 ‘마라톤 한국’ 와르르

  • 김화성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mars@donga.com

42.195km… 우린 뛰고 싶다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졌다. 코오롱마라톤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코오롱마라톤팀은 이미 껍데기만 남았다. 아울러 한국마라톤은 적어도 10년 이상은 뒷걸음질치게 됐다.

10월20일 선수 전원의 사표를 수리한 뒤 코오롱측은 “선수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팀 해체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봉수감독의 사표는 반려하고 그대로 감독의 지휘권을 맡기겠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선수 없는 팀의 감독이 무슨 소용인가. 아니면 꿈나무들을 다시 모집,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인가. “돌아오는 선수는 받아들이자”며 마지막으로 코오롱 이동찬명예회장에게 눈물로 호소한 정봉수감독도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대로 고향으로 떠나버렸다.

코오롱마라톤팀은 사실상 국가대표팀이나 마찬가지. 남녀국가대표선수 6명 중 이봉주 김이용 권은주 오정희 서옥연 등 5명이 ‘코오롱맨’이다. 지난해 동아마라톤 우승자 형재영(29·조폐공사)만이 유일하게 정봉수사단이 아니다. 이들이 하루아침에 운동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이들은 현재 국가대표임에는 틀림없지만 시드니올림픽 대표는 아니다. 이들이 시드니올림픽 티켓을 따려면 올 10월1일부터 내년 4월30일까지 치러지는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내야 한다. 그 기록순으로 남녀 3명씩을 뽑게 된다. 현재 이들 중 어느 누구도 10월 이후 대회에 출전한 사람은 없다. 더구나 대회에 나갈 만큼 몸이 만들어져 있지도 않다.



마라토너는 대회에 출전하려면 최소한 4개월 전부터 하루 50∼60km씩을 뛰어야 한다. 일주일만 뛰지 않으면 근육이 풀어지고 몸무게가 늘게 된다. 몸무게가 1kg만 늘어도 기록이 2∼3분 늦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몸무게가 3kg이 더 늘면 그 때부터는 무릎과 발목에 부상이 온다. 그만큼 하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더 몸이 불면 속칭 마라토너들 말로 은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내년 3월의 동아마라톤이나 4월에 있는 런던마라톤 로테르담마라톤에 나가려면 지금부터 훈련에 들어가야 한다. 백번 양보해도 11월부터는 훈련에 들어가야 내년 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2시간07분44초의 한국최고기록 보유자 이봉주(29). 한국마라톤 차세대 유망주 2시간12분00초의 오성근(24), 2시간14분32초의 손문규(26), 2시간17분13초의 제인모(26). 2시간26분12초로 한국여자마라톤 최고기록보유자인 권은주(22), 2시간35분11초의 오정희(21), 2시간39분31초의 서옥연(20)과 하프마라톤 1시간25분12초 기록의 김수연(20).

이들 8명 전원은 22일 밤 서울 대치동 미도아파트에 있는 코오롱마라톤팀 숙소를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이에 앞서 2시간07분49초로 이봉주와 5초 차이로 한국 2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이용은 이미 10월12일 군에 입대해 버려 제일 먼저 코오롱의 품을 떠났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떠나곯 됐는가. 이들의 주장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열심히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왜 감독과 코치가 있는데 프런트가 ‘밤 놔라 대추 놔라’하며 상관하는가. 송상수단장과 정하준부장 등 프런트의 간섭을 줄여달라”.

한마디로 프런트의 간섭이 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외에 정봉수감독과 약간의 갈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이용이 말한 ‘손찌검 문제’나 ‘훈련스타일’문제가 바로 그것. 김이용은 사실 위장이 약하다. 시합 일주일 전 사흘간 고기만 먹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식이요법은 김이용 자신에게는 고역이다.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토하기도 하고 결국은 위장수술로까지 이어졌다. 외국의 경우 식이요법은 선수에 따라 각각 다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선수에 맞지 않으면 고집하지 않는다. 하기사 케냐 같은 아프리카 선수들은 식이요법이니 뭐니 요란을 떨지도 않는다. 시합 전날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면 뭐든 먹는다. 도대체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러고도 각종 국제대회는 그들이 휩쓴다. 우리하고는 체질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 외에 김이용은 올 로테르담마라톤에서 2시간07분49초로 이봉주의 기록과 불과 5초 차이로 좋은 기록을 냈는데 왜 10원 한장 주지 않느냐는 것. 이봉주는 격려금에 한국신기록 포상금까지 수천만원을 받은 바 있다.

이봉주도 사생활 간섭 배제와 숙소이전 등을 내걸었다. 이봉주가 말하는 사생활 간섭이란 “나도 이제 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인데 훈련이 끝난 시간에 여자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왜 바꿔주지 않느냐”는 것.

이에 대해 정감독의 생각은 단호하다. 손찌검은 훈련하다 보면 할 수 있으며 문제는 선수와 감독 사이의 믿음이라는 것. 이봉주의 여자친구 문제에 있어서도, 마라톤선수는 결코 은퇴 이전엔 여자를 사귀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이번 사태에서는 지엽적인 것에 속한다. 한마디로 정감독과 선수들간의 문제는 아니다. 이번 사태에 있어서 정감독은 시종 회사와 선수들간의 중간입장을 취했다.

더구나 코오롱측이 △사생활 간섭배제 △숙소 이전을 약속하고 김이용이 섭섭하게 생각했던 △포상금 및 직위체계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이봉주가 9월20일 홀로 팀을 뛰쳐나갔다가 19일만인 10월9일 복귀한 이후 코오롱측이 낸 후속대책이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이번 기회에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재신임을 묻겠다며 마라톤팀 프런트 2명과 정봉수감독 김순덕총무 임상규 오인환코치 6명에게 일괄사표를 받은 것. 이 때부터 선수들은 “코치 2명을 자르기 위한 수순밟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모든 것은 프런트에 책임이 있는데 왜 애꿎은 코치들을 자르느냐”며 회사에게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코오롱측은 “인사권에 대해 선수들이 간섭하는 것은 말도 안되며 이것은 회사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선수들은 ‘집단 사표’로 맞섰고, 회사는 ‘사표수리’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코오롱측은 “아무도 마라톤을 거들떠 보지 않을 때인 87년 우리는 엄청난 돈을 투자해 오늘날의 한국마라톤을 일궈냈다. 그런데 그 은혜도 모르고 선수들이 회사의 조치에 반발해 나가다니 정말 배신감을 느낀다”는 입장. 더구나 스승인 정감독의 만류도 뿌리치고 나가다니 한마디로 배은망덕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기업이나 조직의 논리로 따져 보면 코오롱의 이야기가 맞을지도 모른다. 선수들이 인사권 문제까지 거론한 것도 어찌보면 월권이다. 그러나 운동선수는 단순하다. 특히 마라토너들은 더욱 그렇다. 그들은 다만 운동하는데 신경쓰이니 이런 것은 고쳐 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사실 이봉주가 팀을 뛰쳐나간 것은 이번이 다섯번째다. 전에는 왜 가만히 있었는가.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왜 우리가 비싼돈 들여가며 마라톤팀을 운영하는데 칭찬은커녕 욕까지 먹어야 하는가’ 라며 ‘감정적으로 조치’한 것은 아닌가.

“우리 같으면 이런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에 운동팀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운동선수는 운동선수의 논리로 운동에만 전념하게 해주면 된다. 그동안 코오롱이 마라톤으로 얻은 유형무형의 이익은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 쏟아부은 돈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재벌기업에서 스포츠팀 단장으로 있는 어느 기업인의 말이다.



주간동아 207호 (p64~65)

김화성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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