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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홈스쿨

‘눈높이 홈스쿨’ 기쁨 2배 - 보람 2배

50명 중 한명 꼴 부모가 직접 지도 ‘성취도’ 높아... “학비, 왕따 걱정 없어요”

  • 강영진 워싱턴 통신원 / 협찬=삼성전자

‘눈높이 홈스쿨’ 기쁨 2배 - 보람 2배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사는 조사야는 올해 여덟살.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나이인 그는 학교에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멜빌의 소설 ‘백경’을 독파하고 요즘은 잉카와 아스텍문명에 푹 빠져 있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높다.

조사야에겐 집이 곧 학교다. 선생님은 엄마 캐이시 케이스(34)와 아빠 데이비드 케이스(37). 한 기독교 기관의 국제봉사프로그램(Truro Inter-national Program and Services) 책임자인 데이비드는 부인과 교대로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조사야 등 세 자녀를 직접 교육시키고 있다.

“요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안좋은 말을 쓰거나 문제있는 행동을 해도 바로잡아 주지 못하잖아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대해 가르쳐 줘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또 한가지, 조사야는 네살 때부터 글을 배워 책읽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학교 진도를 따라가다 보면 따분해 하고 책읽는 취미마저 잃게 될까봐 홈스쿨을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시간관리 자녀들도 만족



부모와 함께 짠 주간 학습계획표에 따라 스스로 시간관리를 하며 공부하는 조사야는 ‘그만의 학교’에 대해 썩 만족하는 눈치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갈 수 있고, 괴롭힘이나 놀림을 안당해도 되잖아요. 공부 과목 중에선 엄마 아빠한테서 우리 가족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어요.”

워싱턴DC 근교 폴스처치에 사는 성진(7) 성권(6) 두 형제는 ‘Faith Christian Academy’에 다닌다. 전교생이 두 명인 이 홈스쿨의 교장은 엔지니어 겸 전도사로 일하는 아빠 차태광씨, 교사는 엄마 변수경씨(34). 학교 이름은 엄마의 미국 이름 ‘Faith’(믿음이란 뜻)에서 따왔다. 열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온 변수경씨는 약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지난해 초부터 홈스쿨을 시작했다. 한국 교민 중에는 보기 드문 홈스쿨 가정이다.

“큰애가 킨더가든(초등학교 입학전 과정) 다닐 때 아침 7시30분에 나가 오후 3시가 되어야 오는 거예요. 집에 오면 숙제하고 그 다음엔 나가서 친구들이랑 뛰어놀기 바쁘고, 내 둥지에서 이 여섯살짜리 아이를 벌써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어요. 어린애를 학교에 내던져 버린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어요. 안되겠다 싶어 홈스쿨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1년 좀 넘었는데 아이들도 아주 좋아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됐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어요. 가족간의 유대가 두터워지고 더욱 화목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홈스쿨을 하는 학생수는 현재 미국에 약 150만명 이상. 이는 미국 초중고생의 2%를 웃도는 수치다. 최소한 학생 50명 중 한명은 홈스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가정교육연구소는 홈스쿨을 하는 숫자가 매년 약 15%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작년과 올해 연이은 학교총격사건이 전 미국에 충격을 주면서 홈스쿨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이 크게 늘고 있다.

홈스쿨의 이러한 증가 추세는 학교교육에 문제를 느낀 젊은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대안 찾기에 나선 결과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학교교육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심지어 학교에서 근무하는 현직 교사들마저도 자신의 자녀들만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을 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워싱턴DC의 한 중학교 교사인 디나 파월(42·산업기술 담당)도 그런 케이스. 자신의 딸 레이첼(15)과 아들 크리스토퍼(14)가 어렸을 때는 사립학교에 보냈었다. 그러나 교사 월급으로 감당하기엔 학비가 너무 벅차(두 남매 합쳐 당시 연간 약 6000달러) 포기하고 91년부터 지금까지 8년 넘게 홈스쿨을 해오고 있다.

홈스쿨을 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 보니 이들을 위한 커리큘럼이나 교재들이 다양하게 개발돼 있어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거의 없다. 홈스쿨을 하는 학생들은 월반을 많이 함에도 불구하고 정규학교에 다니는 동급생들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게 여러 가지 연구 결과 드러나고 있다. 지난 98년 루드너 박사(매일랜드주립대)가 2만여명의 홈스쿨 학생과 일반 학생의 시험성적을 비교 분석한 결과, 홈스쿨 학생의 70~80%가 상위권에 들어 있어 공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 학생들보다도 학업성적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입학시 플러스요인으로

미국에서는 홈스쿨로 고교과정을 마쳐도 대학 진학에 별 지장이 없다. 홈스쿨 출신 중 하버드 예일 등 소위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학생들이 많다. 홈스쿨 학생을 위한 대학진학 가이드북(제목: And What About College?)을 저술한 캐피 코헨은 “대학측이 신입생을 뽑을 때 가장 신경쓰는 대목이 학생집단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홈스쿨을 했다는 것은 대학 입학시 마이너스요인이 아니라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나의 두 남매도 홈스쿨을 했는데 아들 제프는 공군사관학교에, 딸 타마라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 입학했다”고 밝혔다.

한편, 내년 가을학기부터는 홈스쿨 학생들을 위한 최초의 대학이 문을 열 예정. 지난 9월 초부터 버지니아주 퍼셀빌에서는 홈스쿨 가족의 법률-권익단체인 HSLDA(HomeSchool Legal Defense Association) 주도로 패트릭 헨리대학 건립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또래들과 어울릴 기회 따로 마련

홈스쿨에 대해 일반인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아무래도 또래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어 대인관계나 사회성 형성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홈스쿨을 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다양한 그룹활동의 기회를 마련해 주려고 애쓴다. 우선 각 지역마다 홈스쿨가정의 모임이 조직돼 있어 일주일에 한번 정도 함께 모여 공동수업(Cooperation Class)을 한다. 과학이나 역사, 라틴어 등 학부모 혼자 가르치기 힘든 과목을 중심으로 전문교사를 초빙하거나 학부모 중 이를 전공한 사람이 교사로 나서 수업을 진행한다. 공동수업이 끝난 뒤에는 함께 어울려 공을 차고 한달에 한번 정도 소풍을 가기도 한다. 홈스쿨 학생들끼리 울타리 없는 학교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홈스쿨 학생들은 유스클럽이나 봉사활동, 스포츠 등 다양한 과외활동에 참가해 단체생활의 경험을 쌓는다.

홈스쿨에 대한 법적인 제약은 거의 없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들에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는 점. 홈스쿨을 하려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누리는 자유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자녀들의 공부를 돌보아 주고 가르쳐 주려면 부모 또한 같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

경제적인 희생도 만만치 않다.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은(또는 교대로) 자신의 직업과 자아실현의 기회마저 유예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맞벌이를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대다수 서민층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홈스쿨이다. 그래도 상당수 가정에서는 그런 재정적 타격을 감수하고 다른 지출을 줄이면서까지 자녀교육을 위해 홈스쿨을 택하고 있다.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자녀사랑의 표현인 셈이다.



주간동아 207호 (p48~49)

강영진 워싱턴 통신원 / 협찬=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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