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2016.06.29

사회

경비행기 사고 났다 하면 사망

쉽게 딴 면허에 안전불감증…수리비 부담으로 대충 정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6-27 15: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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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7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부근에 경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3명이 전원 숨졌다. 이들은 비행훈련 중이었고 30대 초반의 교육생 2명, 교관 1명이었다. 교육생 이모 씨가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의 아들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기체는 완전히 부서져 일부가 불에 탔고, 사고 원인 규명에는 수개월 이상 걸릴 전망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항공진흥협회에 따르면 2009년 10월 경량항공기제도 도입 이후 2015년까지 총 13건의 경량항공기 사고가 일어났다. 올해는 2월과 6월 추락사고가 1건씩 발생해 6월 현재까지 총 15건의 사고가 집계된 셈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레저용 경비행기 이용자가 2500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경비행기 사고율이 자동차 사고율에 비해 높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비행기는 공중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많아 도로 교통사고보다 치명적이다. 안전문제 대책을 제대로 수립해야 하는 이유다. 대중 레저로 확산되는 경비행기. 한순간 목숨을 앗아가는 경비행기의 위험성은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먼저 경비행기의 범주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경비행기는 법적 용어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다. 항공법에서는 최대 이륙중량, 비행 속도, 기능 등에 따라 항공기, 경량항공기, 초경량비행장치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경비행기는 이 가운데 경량항공기(자체 중량 115kg 이상, 최대 이륙중량 600kg, 2개 이하 좌석 보유)를 의미하며 4~6개 좌석을 보유한 소형 항공기까지 경비행기 범주에 넣는 사람도 있다.

    경량항공기를 조종하려면 교통안전공단이 주관하는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데, 만 17세 이상으로 비행경력이 총 20시간 이상이고 전문 교육기관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면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일반적으로 교육과 시험 준비를 합쳐 6개월 동안 400만 원 정도를 투자하면 경량항공기 조종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유지비 부담에 미등록 비행기로 전락

    조종사 자격증 취득의 문턱은 낮지만, 경비행기를 소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구매 비용은 물론,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값싼 중고 경비행기는 4000만~5000만 원, 비싼 신형 경비행기는 3억~10억 원 선이다. 대한스포츠항공협회 관계자는 “경비행기는 ‘타지 않아도’ 매년 수백만~1000만 원 이상 유지비가 든다. 보험료 200만 원, 기종별 안전지침에 따른 정비 100만~200만 원, 주기료(격납고 보관료) 300만~500만 원, 교통안전공단이 주관하는 안전성인증검사, 유류비 등 관리 비용이 꽤 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비행기 소유자 다수가 비용 부담 때문에 기체를 허술하게 관리하고, 이것이 안전사고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경기도에서 경비행기 수리업체 ‘벤토코리아’를 운영하는 조주휘 대표는 “경비행기는 부품비가 워낙 비싸다. 수입 프로펠러만 100만 원 내외다. 수리비가 많이 들다 보니 사고가 나도 외관만 대충 고치거나 미인가 부품을 쓰고, 심지어 정비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며 “교통안전공단의 안전성인증검사를 받지 않고 국토교통부에 등록조차 하지 않은 채 운행되는 경비행기도 일부 있다. 도로를 다니는 ‘대포차’와 같은 셈이다. 경비행기를 타고는 싶은데 경제적으론 부담되니 불법으로 조종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에 경비행기 수리를 믿고 맡길 만한 업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공기부품업체 직원 A(40)씨는 “국적기 항공사의 자체 정비업체를 제외하면 국내 경비행기 정비업체는 대부분 영세하다. 경비행기 수리는 높은 기술력과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데, 이런 영세업체는 정비공 수가 적고 급여도 낮다. 4년제 대졸자는 월 150만~180만 원, 전문대 졸업자는 월 100만 원 내외인 실정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부족한 수의 직원이 일하다 보니 정비가 늦고 미흡하다. 심지어 엔진은 국내에 수리 전문가가 거의 없어 미국 공장으로 보내고 있다. 최근 사고가 난 무안국제공항 주변에도 완벽하게 정비되지 않은 경비행기가 꽤 많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 좀 더 실력을 갖춘 사람을 고용해 정비를 보완할 수는 없을까. A씨는 “정비업체들도 정비공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인식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실정이다. 국내 경비행기가 200~300대뿐이라 수리할 일감 자체가 많지 않다. 정비공을 교육하고 정비 환경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수익이 낮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준 낮은 정비업체가 경비행기를 수리하고, 그 경비행기가 금방 고장 나 다시 정비업체로 들어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천변 개조한 활주로 “교육시설 열악”

    초보 조종사의 미숙한 비행이 사고를 유발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주휘 대표는 “자격증을 갓 취득한 조종사 가운데 일부는 안전의식이 미흡하다. 숙련된 조종사인 한 지인은 과음한 다음 날 비행하다 추락사고를 냈다. 비행 경험이 거의 없는 초보 조종사라면 안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오히려 과감하게 비행하다 사고를 내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경비행기 조종사의 안전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과 시험이 보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기일 항공안전정책연구소 소장은 “무안국제공항 추락사고의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교관과 교육생의 나이가 모두 30대 초반인 걸로 봐서 교관의 비행경력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며 “신입 수준의 교관이 비행경력을 쌓으려다 조종 과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짐작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량항공기 조종 교육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기존에도 있었다. 2011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경량항공기 사고의 주요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보고, 신규 조종사 자격 취득을 위한 최소 비행시간을 20시간에서 30시간으로 늘리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하지만 유관기관의 반발 등으로 20시간을 유지해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 법안 개선을 반대한 대한스포츠항공협회 관계자는 “자격증 취득 요건은 미국법을 따르기에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고 본다. 안전문제를 해결하려면 활주로 등 교육·훈련시설 개선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전국 곳곳에는 경비행기 이착륙 용도의 활주로 30여 개가 있다. 대한스포츠항공협회 관계자는 “하천변을 개조해 포장이 제대로 안 된 활주로가 많아 초보 조종사의 교육이나 훈련에 적합하지 않다. 정부는 개수만 늘리려 하지 말고 제대로 된 활주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조종사들이 더 안전하게 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항공 전문가는 “경비행기 조종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안전대책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기일 소장은 “항공사고는 조종 과실, 기체 결함, 기상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먼저 안전에 기반을 둔 교육 및 훈련이 이뤄져야 하고, 고장 난 기체는 신속하게 수리해야 한다. 특히 개인이 사들이는 중고 경비행기는 30~40년 이상 노후한 기체가 많아 고장이 잦다. 경비행기 이용자는 비행을 즐기는 것보다 항공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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