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강유정의 영화觀

앤드루 헤이그 감독의 ‘45년 후’

‘완전한 결합’이라는 새빨간 거짓말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05-17 15: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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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년이란 어떤 시간일까. 그것도 누군가와 함께한 45년이라면 말이다. 부모 자식 간 인연이 두텁다 해도 45년씩이나 동거하는 부모 자식은 드물다. 하지만 부부는 어떤가. 반생애를 같이하는 사람, 그가 바로 반려자, 부부다. 그렇다면 45년은 한 사람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앤드루 헤이그 감독은 45년이란 서로를 속이기엔 충분하지만 완전히 알기엔 여전히 부족한 시간이라고 대답하는 듯하다.

    영화 ‘45년 후’의 원작은 데이비드 콘스턴트의 소설 ‘다른 나라에서(In Another Country)’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케이트(샬럿 램플링 분)와 제프(톰 코트니 분)는 결혼 45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 파티를 계획한다. 대개 파티는 10년 주기로 이뤄지지만 이 부부의 40주년 때 남편 제프가 생사를 오갔기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케이트와 제프는, 그러니까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고 죽을 고비까지 함께 넘기며 45년 시간을 함께해온 부부다.

    그런데 파티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남편에게 외국어로 된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편지에는 어떤 이의 시신이 언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쓰여 있다. 스위스 산맥에서 실족한 뒤 사라졌던 남편의 첫사랑, 그의 시신이 얼음에 갇힌 채 발견된 것이다.

    문제는 케이트가 남편에게 그런 첫사랑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것은 편지를 받은 후 남편이 잃어버린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 푹 빠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케이트는 처음엔 그 상실감에 동참해 남편을 위로한다. 하지만 점점 자신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대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남편의 첫사랑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뿐 아니라 여전히 20대에 머물러 있다. 스위스에 곱게 빙장된 첫사랑은 여전히 젊디젊은 ‘그녀’로 남편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결코 변하지 않는다. 반면 거울에 비친 아내, 케이트는 늙고 변했다. 이는 회복할 수 없는 세월의 대가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갈등은 사진이라는 소재를 통해 증폭되고 폭발한다. 케이트는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를 낳지 않았기에 두 사람 사이엔 다른 사람처럼 기념하거나 기록할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편지를 받은 후 남편은 밤마다 다락방에 올라가 뭔가를 찾는다. 알고 보니 제프는 첫사랑의 사진을 아직 간직하고 있었고, 밤마다 그것을 찾아내 다시 보고 있었다. 심지어 사진 속 여인의 배는 만삭으로 부풀어 있다. 즉 제프는 첫사랑과의 사이에 아이를 가졌던 것이다.



    말하자면 첫사랑 여인은 45년간 케이트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제프의 모습을 알고 있고, 또 갖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케이트가 45년간 알아온 제프의 모습은 진짜 제프가 아닐지도 모른다. 45년간 결혼생활 전체가 어쩌면 허구이자 연기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파국이 기다리는 것일까.

    가장 끔찍한 것은 이런 일들을 겪고 난 후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45주년 기념파티가 열린다는 점이다. 파국도, 파멸도, 결별이나 싸움도 없이 남편은 축사를 읊고 아내 케이트에게 또 한 번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미 이들 삶에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케이트에게 남편은 그 어떤 타인보다 낯선 사람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부부는 돌아서면 남이라고도 한다. 꼭 부부만 그럴까.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관계 가운데 과연 진짜 ‘나’와 ‘너’가 만나는, 그런 완전한 결합이 있기는 할까. 삶에 대한 깊은 허무와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품, ‘45년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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