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7

2016.05.11

책 읽기 만보

내려가기는 쉽지만 올라가기는 어렵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5-10 11:46:1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보고 싶지 않은데 봐야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있다. 미우라 아츠시의 보고서 ‘격차고정’이 그린 일본 사회의 모습이다. 저자는 1999년 ‘컬처스터디연구소’를 설립해 일본의 소비·도시·문화를 연구해오다 2005년 출간한 ‘하류사회: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에서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사람으로 양분돼 있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1억 총중류 사회’의 신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1억 총중류 사회’란 1970년 일본 인구가 1억을 넘어선 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하류사회’ 후 10년간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쓰비시 종합연구소가 매년 3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생활자 시장 예측 시스템’ 조사 결과(2014)를 통해 본 일본 사회는 충격적이다. ‘당신 가정의 생활수준은 일반적으로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상중하 3단계로 구분했을 때 상 13%, 중 36%, 하 43%, 모른다 7%였다. 스스로 빈곤층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중산층보다 훨씬 많았다. 10년 전만 해도 상 15%, 중 38%, 하 39%, 모른다 8%로 중산층과 빈곤층이 거의 비슷했다. 점심은 400엔(약 43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고, 취미는 외출 대신 스마트폰, 양복과 자동차를 사지 않는 사람이 일본인의 평균 모습이 된 것이다.  

    연소득이 300만 엔(약 3200만 원) 이하인 사람은 결혼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42%가 미혼이다. 당장 먹고살기 빠듯하니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하고 이사할 여유도 없어 지리적 이동이 거의 없다. 이른바 ‘이사 빈곤’이다. 더 큰 문제는 10년 전에도 빈곤층은 계속 빈곤층이고, ‘중’에서 ‘상’으로 계층이 높아진 사람보다 ‘중’에서 ‘하’로 떨어지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격차고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일반 직장인과 공무원을 비교했을 때 스스로 ‘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공무원 29%, 일반 직장인 16%였다. 10년 전 ‘상’이었고 10년 뒤에도 ‘상’인 일반 직장인은 41%에 불과했지만, 공무원은 100%가 여전히 ‘상’이었다. 공무원은 연공서열 덕에 연소득도 저축도 많다. 결혼, 주택 구매도 유리하다. 소비를 그대로 유지하며 부부가 함께 여행을 즐긴다. 저자는 ‘공무원은 벼슬인가’라고 묻는다.

    “공무원은 경제활동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 물론 신제품과 신기술에 예산은 배분하겠지만 그들은 히트 상품도 새로운 사업도 직접 만들지 않는다. 그들이 상류층이 되고 새로운 상품과 사업, 기술을 궁리하는 민간기업 직원들이 빈곤층이 되는 시대,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우리도 묻고 싶은 말이다. ‘공무원이 상류층을 구성하는 신봉건사회’까지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위기의식이 없다면 ‘격차사회’는 곧 우리의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림으로 보는 신들의 사랑
    김원익 지음/ 메티스/ 392쪽/ 2만 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올림포스 12신 제우스, 포세이돈, 아폴론,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 디오니소스(이상 남신), 헤라, 데메테르, 아테나,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이상 여신)에 하데스와 헤스티아를 보태 14명의 신들 이야기를 ‘사랑’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고, 각각의 신이 대변하는 인간 유형을 분석했다. 내 사랑은 어떤 신의 사랑을 닮았을까, 나는 과연 어떤 신을 닮았을까.




    위기는 다시 온다
    조윤제 지음/ 한울아카데미/ 232쪽/ 2만2000원


    거시경제와 금융을 전공한 학자이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이코노미스트,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현장 경험을 쌓은 저자가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금융 규제 강화 과정을 정리했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과 영국에서 금융 규제·감독이 개편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한국 경제와 금융 부문이 풀어야 할 과제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세속 도시의 시인들
    김도언 지음/ 이흥렬 사진/ 로고폴리스/
    368쪽/ 1만6000원


    “글쓰기라는 행위 속에 가장 적확하게 정의되고 있는 시인이 바로 김정환인 듯하다. 그 말고 누가 중단 없는 행위의 운동성을 통해 자신이 시인이라는 것을, 당대의 지식인이라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해 보였는가.” 삶의 진부함에 맞서는 15명의 시인을 인터뷰해 지문과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저자가 찾아낸 시인의 다른 시선, 다른 태도란 ‘인문주의적 파르티잔의 길’(김정환), ‘고통으로부터의 자유’(황인숙), ‘불가능한 것과 대치하기’(이문재) 등이다.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바다출판사/ 328쪽/ 1만3800원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인문학적 시선’과 하루키의 열렬한 팬으로서 ‘편애하는 마음’이 결합해 탄생한 하루키 비평 에세이. 비평 대상은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 기행문, 의미론 같은 비문학적 텍스트까지 총망라했다. 저자는 ‘소설 이외의 텍스트’야말로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나’를 보여주는 ‘소설 작품에 대한 해설’이라고 주장한다.




    김원중 교수의 마음에 쓰는 고전
    김원중 지음/ 한겨레출판/ 280쪽/ 1만4000원


    득수응심(得手應心). 손으로 터득해 마음으로 느낀다는 뜻 그대로, 이 책은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한 자씩 써내려가면서 마음에 새기는 고전 필사 공부법을 알려준다. 삶을 관통하는 6가지 주제, 즉 마음(心), 현명(賢), 생각(思), 인연(緣), 성공(成), 행복(福)에 따라 120가지 명문을 뽑고 한문으로 된 원문과 출처, 해석, 해설을 실은 뒤 직접 필사해보는 여백을 두었다.




    생각을 여는 그림
    이명옥 지음/ 아트북스/ 288쪽/ 1만9000원


    미술과 친해지려면 작품을 체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안한 것은 ‘키워드’와 ‘스토리텔링’을 융합한 미술 감상법이다. 예를 들어 ‘태양’이라는 키워드로 ‘파라오 아크나톤과 왕비 네페르티티, 자식들이 태양신에게 기도하는 모습’ 부조, 밀레와 고흐가 각각 그린 ‘씨 뿌리는 사람’, 김기창의 ‘태양을 먹은 새’, 엘리아손의 ‘날씨 프로젝트’를 나란히 놓고 보는 것이다. 예술가는 각각 태양을 어떻게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을까.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메멘토/ 456쪽/ 2만2000원


    감사와 복식부기 같은 회계도구는 근대 자본주의및 국가의 근간이 됐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복식부기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프랑스 루이 16세는 부도 난 왕실 회계장부가 공개되면서 단두대로 보내졌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르네상스부터 리먼 사태까지 회계 관점으로 본 번영과 몰락의 세계사. 예나 지금이나 투명한 회계는 어렵고, 회계 부정에 대한 유혹은 강하고 끈질기다.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이랑주 지음/ 인플루엔셜/ 280쪽/ 1만5000원


    지난해 11월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은 서가를 치우고 5만 년 된 카우리 소나무로 만든 대형 테이블을 놓았다. ‘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서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리뉴얼 작업을 지휘한 저자가 ‘보는 순간 사고 싶게 만드는 9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왜 핑크색만 보면 배스킨라빈스31이 생각날까’ ‘대형마트 입구에는 왜 과일 코너부터 있을까’처럼 평소 궁금하던 마케팅 전략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