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7

2016.05.11

사회

말로만? 좌초 위기 경희궁 복원사업

상가 세입자 자살, 돈의문 복원 계류 상태…문화재청 “완전 복원 불가능할 듯”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5-10 11: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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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함께 추진해온 경희궁 복원사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전체 복원 계획의 첫 사업이던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철거와 돈의문(서대문) 복원 및 역사문화공원 조성이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연기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화재청 측은 “당초 계획대로 복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27일 문화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2004년 중단됐던 경희궁 복원사업을 2014년을 기점으로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복원작업에는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공동참여하며 소요 예산은 국비 70%, 시비 30%로 충당해 2023년까지 완료한다”는 게 세부 내용이었다. 복원사업 재개 발표 후 3년이 흘렀지만 경희궁은 2004년 복원이 멈춘 당시 모습 그대로다. 시작됐어야 할 초기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4월 25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현실적 문제로 계획안대로 복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여론의 반발이나 교통문제로 경희궁 복원사업은 사실상 멈춰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늑장 진행으로 사업은 계속 연기 중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2013년 문화재청에 제출한 ‘경희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에 따르면 2014년 재개 예정이던 경희궁 복원사업은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철거와 돈의문 복원이 전체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다시 말해 2개 사업이 결론을 맺어야 다른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돈의문 복원사업에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함께 나선 이유는 경희궁과 돈의문 일대를 관리하는 종로구청이 복원의 세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안을 서울시가 통과시켜 예산을 편성하는 형태로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경희궁지 복원사업과 돈의문 복원은 완전히 별개 사안처럼 보이지만, 경희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의 목표를 궁극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함께 진행해야 할 사업이다. 경희궁지 복원사업의 당초 목적이 과거 경희궁을 둘러싼 문화재 구역을 동시 복원해 인근 지역을 최대한 옛 모습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시대 말까지 경희궁 담벼락과 돈의문은 50m 내 지척 거리에 있었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 옛터(현 구세군회관)와 돈의문 옛터(새문안로 정동사거리) 간 거리는 400m에도 미치지 않는다(지도 참조).  



    따라서 경희궁의 완벽한 복원을 위해서라도 두 사업은 함께 진행해야 한다. 복원될 흥화문이 제 기능과 위치를 되찾으려면 흥화문 옛터와 돈의문 옛터를 잇는 옛길이 되살아나야 하기 때문. 옛길을 내려면 인근 새문안로의 도로 정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재 일부 복원된 흥화문은 1988년 이전 및 복원 당시 구세군회관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채 옛터를 차지한 까닭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잠시 지금 자리에 옮겨놓은 것일 뿐이다.

    경희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에 첨부된 돈의문 일대 복원도를 보면 돈의문에서 흥화문 옛터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전부 도보길로 바꾸고, 돈의문에 의해 차단되는 새문안로 부분은 그 밑에 지하차도를 만들도록 계획돼 있다. 이와 동시에 돈의문으로부터 흥화문 옛터에 이르는 길목 주변도 역사문화공원(강북삼성병원과 현 경희궁 흥화문 사이 일대)으로 조성된다(그림 참조).  

    경희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에 따르면 이 두 사업은 2015년 이미 착수됐어야 한다. 그러나 확인 결과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철거사업의 경우 최근에서야 예산이 확보됐다. 현재 경희궁내 전각과 건물을 관리하는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올해 비로소 서울시로부터 미술관 철거 예산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예산이 실제 언제 집행될지도 미지수지만, 설령 미술관 철거가 바로 이뤄진다 해도 갈 길은 멀다. 철거된 미술관 자리에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을 옮긴 뒤 현 주차장 자리에 전각(옛 경희궁 편전, 침전)을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관 철거는 전각 복원을 위한 선행 작업에 불과한 것.

    미술관 철거와 함께 경희궁 전체 복원의 첫 단추인 돈의문 복원사업의 앞날도 예측하기 어렵다. 돈의문 복원사업의 전제조건이자 계획상으론 2012년 철거가 완료돼야 했던 서대문 고가도로가 지난해 9월에야 비로소 철거됐기 때문이다. 새문안로 정동사거리를 가로막고 돈의문을 복원한 뒤 그 밑으로 지하차도를 내야 하는 까닭에 서대문 고가도로가 철거되지 않으면 돈의문 복원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서울시는 당초 돈의문 철거 100주년인 2015년까지 돈의문 복원사업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복원 전제조건인 서대문고가 철거가 3년 늦춰지면서 돈의문 복원사업은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 특히 돈의문뉴타운사업과 연계해 2014년까지 완료 예정이던 돈의문 옛터 인근 상가지역 주민의 이주 및 철거 작업도 최근 들어 완료된 상태다.


    극심한 반발,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

    결국 돈의문 복원은 2022년으로 미뤄졌다. 서울시는 돈의문 복원을 2022년 중·장기 과제로 연기했지만 이마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다. 돈의문 복원사업 전체 예산 1295억 원(2012년 발표) 중 30%를 부담해야 할 서울시의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 데다 문화재청도 나머지 70%의 예산 910억 원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려운 처지다. 전국 문화재 보존을 위한 문화재청의 1년 예산은 2000억 원에 불과하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돈의문 복원지역 바로 옆에 조성될 역사문화공원 대지 확보와 관련해 강제퇴거당한 상가 세입자가 분신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4월 13일 돈의문뉴타운지역 내 이전 및 철거 대상 상가지역의 세입자 고모(68) 씨가 분신자살한 것. 고씨의 가게는 돈의문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역사문화공원이 들어설 지역 인근에 있었다. 고씨는 세입자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상가를 지키고자 활발하게 활동해왔다고 한다. 재개발과 복원사업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책임을 지는 기관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이다.  

    건설사와 재개발조합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돈의문뉴타운 시공사인 GS건설은 “우리 관할지역이 아니다”라며 발을 뺐다. 양문석 GS건설 홍보팀 과장은 “GS건설은 ‘경희궁 자이’라는 아파트단지를 짓는 시공사일 뿐 (역사문화공원 예정지) 철거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공원 대지는 아파트 시공에서 빠져 있는 부분이라 관여할 권리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원 대지는 돈의문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돈의1구역조합)에서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것으로 안다”며 “GS건설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돈의1구역조합 관계자는 “(역사문화공원 예정지 상가)의 기부채납은 2006년 돈의뉴타운사업 인가 당시 전제조건이었다. 철거를 서두른다고 조합에 이익이 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철거 담당 회사가 철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지 조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못 박았다.

    돈의뉴타운사업을 인가한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서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알지만 시에서 돈의문사업을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실제 진행 주체가 종로구청이고 서울시는 예산을 심의하고 집행할 뿐이니, 관련 사건에 대해선 종로구청에 문의하라”고 했다. 반면, 종로구청 관계자는 “종로구는 단순히 (역사문화공원) 터를 관리할 뿐”이라며 “경희궁과 돈의문의 소유주는 서울시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인가를 거쳐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니 당연히 서울시에 문의하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복원 계획은 아직도 수정 중

    상가 세입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지만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과 관련해 여전히 계획만 세우는 중이다. 서울시는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을 ‘새문안 마을 조성사업’으로 이름만 변경해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다. 변경된 계획안에 따르면 역사문화공원 계획 대신 경희궁과 연계된 역사마을을 조성하고, 이 마을에 SH공사가 170억 원을 투입해 건축박물관과 유스호스텔 등을 지을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의 예전 모습을 갖고 있는 마을을 복원해 박물관 형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질남 돈의1구역조합 총무이사는 “인가 당시 근린공원(역사문화공원)으로 기부채납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가 근린공원을 역사단지로 변경하는 안을 제시해 관련 사항을 종로구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조합과 서울시, 종로구청은 역사마을 내 비조합원 입주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이윤하 종로구청 궁능문화재과 주무관은 “돈의문 뒤 공원 대지를 근린공원에서 역사문화단지로 용도 변경하는 계획 변경안이 아직 구청에 계류 중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그렇지 않아도 늦어진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있다. 4월 27일 서울시는 “새문안마을에 지을 예정이던 건축박물관 대신 도시건축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며 “새문안마을을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2023년까지 시행하기로 돼 있던 단기 계획안에는 돈의문 복원사업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일단 현 경희궁 복원을 위해 문화재구역에 포함되지 않고 개인 재산으로 사용되는 과거 경희궁 터(총 67만5800m2)에 대한 매입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와 함께 돈의문에서 이어지는 성곽을 전면 복원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관련 예산조차 책정되지 않았다. 최영민 서울시청 문화재보존과 주무관은 “올해 경희궁 보수사업으로 책정된 예산은 있으나 복원사업과 관련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최 주무관은 “사업이 많이 늦어졌지만 조금씩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경희궁 복원 수난사▼ 서울시, 복원 중인 궁지에 미술관, 박물관 건축 ▼
    경희궁지 복원사업은 서울의 다른 4궁(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에 비해 규모가 큰 사업이다. 다른 궁들은 전각이 일부 혹은 대부분 남아 있으나, 왕의 기운이 서린 궁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경희궁터에는 전각 하나 남아 있지 않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부 헐리거나 흩어졌기 때문이다.

    경희궁 훼손은 고종 시절부터 시작됐다. 고종은 집권 초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경복궁을 중건했다. 중건 과정에서 목재가 부족하자 경희궁 전각을 일부 철거해 조달했다. 경희궁의 수난이 극에 달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는 남은 건물을 전부 해체해 목재로 사용했다. 일부 아름다운 전각이나 문은 위치를 옮겨 다른 곳에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정전인 숭정전은 대화정 조계사(현 동국대 정각원)로 옮겨져 법당으로 사용됐다. 정문인 흥화문은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로 옮겨져 사당 정문이 됐다. 텅 빈 궁터에는 1909년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경희궁지는 과거 궁의 영광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44년에는 태평양전쟁에 대비하고자 방공호를 건립하기도 했다. 현재 일제가 만든 이 방공호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시 예산 24억 원을 들여 문화재 창고로 개축하고 있다.

    1980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경희궁터 일부를 사적 제271호로 지정하면서 그곳에 있던 서울고등학교(옛 경성중)가 옮겨갔다. 자리가 비자 곧바로 경희궁 일부 대지에 대한 복원사업 계획 수립이 시작됐다. 84년 서울시가 대지를 매입하고 85년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해 88년 복원공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이 현 자리로 이전 및 복원된 것도 그때였다.

    1994년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재건했고, 98년에는 자정전과 월랑을 복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경희궁을 복원하면서도 한편으론 복원을 방해하는 일도 했다. 88년 서울시립미술관을 궁내에 개관하는 것을 시작으로(현 서울시립미술관은 2002년 서소문 본관으로 이전하고 경희궁 내 미술관은 분관이 됐다), 97년 서울시립박물관(현 서울역사박물관)을 궁내에 건립했다. 2002년 태령천과 금천교가 복원되며 경희궁은 현 모습까지 복원됐다. 그러나 복원사업은 2004년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추가 예산 문제를 합의하지 못해 중단된 상태다.

    경희궁 복원 미래 청사진▼ 2035년까지 1912년 당시 궁지 모두 매입 ▼
    현재 경희궁지 복원사업의 기본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2013년 1월 27일 문화재청에 제출한 ‘경희궁지 종합정비계획안’이다. 2014년 1월 문화재청이 통과시킨 이 계획안에 따르면 경희궁 복원은 크게 단기, 중기, 장기 세 단계로 나뉜다. 단기 사업의 세부 내용은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을 이전하는 것이다. 과거 주차장 자리에는 흥정당(편전), 화상전(침전), 융복전(침전)이 복원된다. 돈의문은 2022년까지 근교 성곽을 전부 복원해야 한다. 이를 제외하고도 앞으로 복원해야 할 경희궁터 대지 매입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가 단기 계획의 목표다.

    단기 계획의 목표가 경희궁 대지 정리 작업이라면, 중기 계획(2023~2035)의 목표는 과거 경희궁에 포함됐던 토지를 다시 사들여 원 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 계획의 시작은 현재 궁지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정부기관을 이전하는 일.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교육청, 기상청, 서울복지재단에 대한 이전 계획을 각각 세워 차츰 이전해나갈 예정이다. 1912년 당시 경희궁 크기를 기준으로 토지 구매 및 경계 정비도 함께 진행하는 게 목표다. 토지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전각 및 궁내 도로를 정비해 지속적으로 복원사업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기 계획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장기 계획은 2035년 중기 계획이 끝난 이후 계속될 후속 조치를 말한다. 복원된 궁터에 전각을 올려 경희궁의 옛 모습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매입된 토지에 각 전각을 복원하고 경희궁을 둘러싼 담까지 복원하는 것이 장기 계획의 궁극적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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