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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의 큐리어스타

눈길 사로잡던 미스코리아에서 입맛 사로잡은 식품 사업가로 변신, ‘코바 언니’ 김예분의 인생역전

“지난 20년은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눈길 사로잡던 미스코리아에서 입맛 사로잡은 식품 사업가로 변신, ‘코바 언니’ 김예분의 인생역전

  • ●MC로 한 우물 파지 않은 것 후회
    ●제품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직접 관여
    ●한식보다 케이크, 초콜릿 만드는 재미 쏠쏠
    ●연예인 봉사단 이끌며 ‘소확행’ 찾아
다이어트에 좋은 곤약젤리를 개발하는 등 요리연구가 겸 식품 사업가로 인정받은 김예분. [조영철 기자]

다이어트에 좋은 곤약젤리를 개발하는 등 요리연구가 겸 식품 사업가로 인정받은 김예분. [조영철 기자]

1990년대 후반 도회적인 외모와 귀에 쏙쏙 박히는 말솜씨로 방송 진행에서 두각을 나타낸 미스코리아 출신 MC가 있다. 1994년 미스코리아 미로 당선한 그해, SBS에서 파격적으로 선보인 게임프로그램 ‘생방송 달려라 코바’의 진행자로 활약하며 연말 신인 MC상을 거머쥐고야 만 김예분(47)이 그 주인공이다. 

최고 시청률 35%를 기록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MC로서 재능과 스타성을 인정받은 그는 SBS ‘생방송 TV 가요 20’, KBS ‘TV 데이트’ 등 예능프로그램과 SBS 라디오프로그램 ‘영 스트리트’를 잇달아 진행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1999년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한동안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춘 그가 사업가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지영의 큐리어스타(Curious+Star)’라는 타이틀을 걸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스타를 인터뷰하는 기사를 기획하면서 그 첫 번째 대상으로 김예분을 만났다. 

3월 31일 그가 운영하는 식품기업 ‘비원비오에프’의 서울 강남구 본사를 찾았을 때 김예분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40대 후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날씬하고 고와서다(그 비결이 궁금하다면 아래 동영상을 클릭!).



이곳에서 그는 두 회사를 이끈다. 하나는 전국에 가맹점을 둔 햄버거 체인업체 ‘도니버거’고, 다른 하나는 식품 연구개발과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비원비오에프다. 2013년 김예분이 창립한 비원비오에프는 ‘이성미의 꼼꼼한 식탁’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자사 제품을 홈쇼핑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젤리RO’라는 프리미엄 곤약젤리를 출시했다. 출시 직후 현대백화점에 입점한 젤리RO는 ‘김예분 젤리’로 불리며 다이어트 식품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차별화

-어쩌다 곤약젤리를 개발하게 됐나. 

“비원비오에프는 제품을 개발해 홈쇼핑 판매에 주력해왔다. 2015년부터 ‘이성미의 꼼꼼한 식탁’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촙스테이크, 소불고기, 육수팩 같은 육가공식품을 선보였다. 그러다 홈쇼핑 측으로부터 내 이름을 건 다이어트 도시락을 개발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 역시 다이어트식에 관심이 많아 바로 개발에 착수했는데, 품질과 단가를 맞추기 어려웠다. 그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이 곤약젤리다. 곤약젤리는 포만감이 뛰어나고 열량이 낮아, 나처럼 식탐이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개발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젤리RO가 시장에서 좋은 평을 듣고 있다.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7가지 맛(블루베리루이보스, 라임녹차, 복숭아보이차, 체리블랙티, 자몽히비스커스, 칼라만시레몬밤, 석류홍삼)으로 출시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고, 열량이 방울토마토 1개와 흡사한 5kcal밖에 되지 않아 다이어트 효과가 좋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운동량이 줄면서 비대면 쇼핑이 가능한 마켓컬리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만든 제품을 다 팔아 3월에 다시 생산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 개발 단계부터 까다롭게 접근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은 과일맛 젤리가 주류라 차별화를 위해 과일에 차를 매칭했고, 맛이 어우러지는 최상의 조합을 찾을 때까지 개발을 거듭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입맛도 까다로워 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품질이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유사 제품과의 비교 분석은 물론, 소비자 품평회도 거쳤다. 그렇게 5~6개월간 공을 들여 에리스리톨(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는, 포도당을 자연 발효시킨 알코올 화합물)을 이용한 5kal 수준의 무설탕·저카페인 곤약젤리 개발에 성공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방송 경험도 많은 데다, 미스코리아 타이틀도 갖고 있다. 그런 이력과는 동떨어진 식품 관련 사업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20대 초반부터 음식을 뚝딱뚝딱 만들고, 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는 평을 듣곤 했다. 주위에서는 의류나 미용 쪽이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는데, 음식 쪽에 더 호감이 갔다. 원래 먹는 걸 좋아하고 식탐도 많아 어릴 때부터 음식을 뚝딱 잘 만들었다. 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는 평도 많이 들었다. 늦게나마 음식 쪽 공부를 해보고 싶어 2010년부터 호서대 한식조리학과에서 한식을 전공하고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음식을 연구개발하고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 비원비오에프를 창립한 이후 ‘김예분의 파스타 앤 샐러드’라는 파스타집을 운영할 때도 메뉴 개발을 직접 했다. 그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식당 꾸려가는 소상공인들이 얼마나 힘든지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 

-요리 관련 자격증이 많나. 

“한식조리사 자격증은 따지 않았다. 한식요리를 공부하면서 케이크랑 초콜릿 같은 디저트에 관심이 많아져 케이크 디자이너, 초콜릿 마스터 같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취미가 케이크와 초콜릿 만들기다.”(그가 만든 케이크와 초콜릿은 예술작품 수준이다. 초콜릿 공예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김예분이 만든 케이크와 초콜릿. 그는 초콜릿 공예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예분 인스타그램]

김예분이 만든 케이크와 초콜릿. 그는 초콜릿 공예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예분 인스타그램]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 신앙으로 극복

-1999년 미국 어학연수 반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걸로 안다. 그 후엔 뭘 했나. 

“연예계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라디오 DJ를 하면서 방송이 나와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드림뮤직이라는 CJ 계열사에서 인터넷 라디오 프로그램의 웹 PD로 활동하고, 더미디어라는 삼성 계열사에서 마케팅 프로모션 담당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 3년 반 동안 회사원 생활을 하다 다시 방송에 복귀하려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MC가 아닌 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와 고사했다. 그때는 그런 기회들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몰랐다. 김원희, 박미선 씨처럼 방송 진행자로서 한 길을 걸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동안 한 그 어떤 경험도 헛되다고 생각진 않는다.” 

-식품 분야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도전을 했다.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인가, 아니면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 

“인내심이 부족해 그렇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다 보니 예전에는 조금만 힘에 부치고 내게 부족한 면이 보이면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며 포기하고 다른 일을 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는 것을 많은 경험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2008년 MC 활동을 재개했다 다시 연예계를 은퇴하다시피 했다. 그 이유가 뭔가. 

“2008년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이라는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개인기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화도 없어서 친분이 있는 개그맨 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촬영 전 작가와 사전 인터뷰를 할 때 꺼냈다. 내 에피소드로 써도 된다고 동생에게 허락을 받고, 작가도 그냥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그 일로 ‘거짓 방송’ 논란이 일었다. 알고 보니 개그맨 동생의 경험담이 아니고 익히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기자들로부터 수도 없이 전화가 왔지만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 동생이나 작가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됐다. 차라리 내가 욕먹고 말아야지 했는데, 악플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미움받는 게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 일주일 동안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람들은 내가 죽어야 덜 미워하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일이 방송 활동을 그만둔 계기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무엇으로 버티고 견뎠나.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도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신앙의 힘이 컸다. 신앙에 온전히 의지하면서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다.”

김예분이 이끄는 연예인봉사단 ‘더브릿지’의 활동 모습. [사진 제공=김예분]

김예분이 이끄는 연예인봉사단 ‘더브릿지’의 활동 모습. [사진 제공=김예분]

-‘더브릿지’라는 봉사단을 이끌며 같은 신앙을 가진 연예인들과 수년째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고 들었다. 나눔 활동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신학대학의 의대 교수라 어린 나를 데리고 의료 선교를 다니곤 했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 주변의 다문화가정이나 미혼모, 탈북자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 내가 처한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더 많이 갖게 된다. 살다 보면 감사할 일이 무척 많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다섯 손가락이 다 있는 것도 감사하다. 내가 늘 마음에 새기는 말도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고, 늘 깨어 기도하자’다.”

선택과 집중의 소중한 교훈

-일자리가 부족한 시대다. 인생 선배로서 청년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어떤 일이든 쉬운 건 없으니, 자기 적성에 맞는 길을 찾은 뒤 선택과 집중을 잘해 한 우물을 파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방황하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 내 길을 찾느라 방황한 나처럼 말이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면 과감히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미래에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가길 원한다면 지금은 힘들더라도 시간을 소중하고 알차게 할애하면서 20대부터 차근차근 계획하고 준비했으면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헛된 시간이 아니며, 내가 바로만 살고 있다면 어떤 고난이든 다 이겨낼 수 있고 그만큼 돌아오는 것들이 선하게 작용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은 뭔가. 

“내가 개발한 제품을 꾸준히 찾고 맛있다고 평가해주는 분을 만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이성미의 꼼꼼한 식탁’을 통해 조만간 선보일 조림, 탕 같은 새로운 반찬과 최근 출시된 프리미엄 곤약 클렌저 주스도 많은 분으로부터 사랑받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만든 케이크와 초콜릿으로 자선 전시회라는 또 다른 나눔의 장을 열고 싶다.”





주간동아 1234호 (p36~39)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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