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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게임은 공정성 해치는 기만 행위”

정의당 류호정 후보로 불거진 대리 게임 논란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3-17 13: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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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인 류호정 후보는 16일 "정의당에게 주어지는 도덕성의 무게를 더 깊이 새기며 총선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인 류호정 후보는 16일 "정의당에게 주어지는 도덕성의 무게를 더 깊이 새기며 총선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대리 게임’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 때문에, 정의당 비례대표 1번 류호정 후보가 구설에 올랐다. 논란의 내용은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 대리 게임. 2014년 그의 계정을 지인이 대신 사용해, 게임 등급을 대신 올렸다는 것. 이 사안에 대해서는 동아리 회장으로 있던 시절 류 후보가 의혹의 내용 일부를 인정하고 사과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이 되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그가 쌓아온 ‘게임 스펙’의 시작에는 대리 게임으로 만든 성적이 있었고, 게임으로 인지도와 경력을 쌓아 정치를 시작한 만큼, 비례대표가 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단순히 게임 성적 때문에 논란이 불거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학위도, 학교 성적도 아닌 취미 생활에 불과한 게임인데, 이 성적을 일부 부당하게 올렸다고 해서 문제가 되느냐는 것. 하지만 업계와 게이머들은 대리 게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게임에서 이뤄낸 높은 등급이 실제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게임 스펙 뒤를 따르는 대리 게임 오명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엇게임즈 제공]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엇게임즈 제공]

    류 후보는 대학 시절부터 정치권 입성 직전까지 게임계 스펙을 착실하게 쌓아왔다. 이화여대 게임 동아리 KLASS 회장과 전국 대학 e스포츠 동아리 연합회인 ECCA 총무를 맡는 등 동아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동시에 여성 아마추어 게임 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아 유명세를 탔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티어였다. LOL 랭크 게임에 참여하는 유저들은 모두 실력에 따라 이 티어를 받게 된다. 류 후보의 과거 티어는 다이아5. 상위 4% 실력을 갖춘 게이머가 받을 수 있는 랭크다. 

    게임하는 여성 인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그는 금방 게임계의 관심을 끌었다. 동아리 회장 자격으로 언론 인터뷰나 방송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2014년 대리 게임으로 랭크를 높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원래 티어는 골드1(당시 상위 14% 정도)의 실력이었으나, 준 프로급 실력의 지인이 대신 게임을 해 이를 다이아5까지 끌어올렸다는 것. 결국 류 후보는 책임을 지겠다며 동아리 회장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후 게임 회사에 입사해 노조 결성을 거쳐, 정치권에 들어갔다. 그런데 대리 게임으로 쌓은 이력인 만큼 정당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류 후보 측은 “대리 게임으로 과거 성적이 올랐던 것은 사실이나, 이후 연습을 통해 해당 성적에 맞출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고 해명했다. 



    정치권에서 대리 게임 이슈는 생소하지만, 사실 대리 게임은 오래 전부터 크게 성행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단순히 성행한다는 말을 넘어, 하나의 산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검색창에 대리 게임, 혹은 대리랭(대리 랭크 게임의 줄임말)을 검색하면 돈을 받고 대리 게임을 해주는 업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가격은 티어에 따라 달랐다. 높은 티어일수록 이를 올리기 어려우니 그에 따라 가격이 높아지는 구조였다. 가격은 등급 당 2만 원 선부터, 20만 원 선까지 다양했다. 아예 사업자 등록증을 내놓고 대리 게임을 하는 곳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일부 프로게이머까지 대리 게임에 참여, 팀에서 방출되는 사건도 있었다.

    티어는 또래 사이 또 하나의 성적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게임의 등급을 올리는데 돈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게다가 사람과 경쟁하는 게임인 만큼, 어차피 대리 서비스가 끝나고 본인이 게임을 직접 하게 되면 점수는 제 자리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대리 게임을 찾는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리 게임이 성행하는 이유를 현재 유행하는 게임의 형태에서 찾는다. LOL, 오버워치 등 지금 유행하는 게임은 대부분 팀 기반 대전 게임이다. 모르는 상대와 임의로 팀을 맺고 대전에 임하게 된다. 팀 기반 게임에서는 본인이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같은 팀원들이 실수가 잦다면 승리하기 어렵다. 자신이 좋은 실력을 가졌음에도,(혹은 그렇게 착각한 상태에서) 팀원들의 실수로 패배가 잦은 사람 중 일부는 대리 게임으로 점수를 올린다. 높은 성적을 내는 다른 팀원들과 게임을 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승부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때 아르바이트로 대리 게임을 한 적이 있다는 A씨는 “하위 티어의 사람일 경우, 금방 원하는 점수까지 올려 줄 수 있다. 연속으로 승리하면 현재 티어에서 이기기 더 어려운 상대를 매칭해 주는데, 이를 이겨 나갈수록 점수가 오르는 폭이 크다”고 밝혔다. 

    단순히 공명심을 위해 대리 게임 업자를 찾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최고 점수를 맞추기 위해 대리업자를 찾는 것. 대리 게임을 통해 티어를 올렸다는 B씨는 “잘생기고, 공부를 잘 하는 것처럼 게임 실력도 매력의 일부다. 부끄럽지 않은 점수대를 원했으나, 실력이 되지 않으니 대리 게임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생태계의 암적 존재, 올 하반기부터 처벌

    대리 게임 처벌 법안을 발의한 이동섭 의원. [동아DB]

    대리 게임 처벌 법안을 발의한 이동섭 의원. [동아DB]

    게임 몇 판 대신 해 준 것이 무슨 문제냐 싶겠지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리 게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대리 게임 없이 정당하게 랭킹 경쟁에 임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 게임업체에서도 대리 게임은 게임의 수명을 단축하는 일종의 질병으로 인식된다. 게임업체 관계자는 “LOL등 대전 기반의 게임은 비슷한 실력의 상대를 매칭한다. 너무 실력차가 커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리 게임이 늘어나면 하위 랭크에서 실력자를 만나는 초보자가 늘게 된다. 일부 초보자들은 이를 진입장벽으로 인식하고. 게임을 그만 둬 버리게 된다. 새로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늘지 않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게임사 입장에서는 손해”라 설명했다. 

    게이머와 게임사 양측에 손해가 되는 일인 만큼, 대리게임을 처벌하는 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대리게임 처벌법)에 따르면, 게임사가 승인하지 않은 방법으로 게임의 점수나 성과를 대신 획득해 주는 용역이나 알선은 금지된다. 게임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기 때문.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이 시행되는 시점은 올해 6월이다. 이 의원은 “대리 게임은 일반 사용자, 게임사는 물론 e스포츠 생태까지 망치는 암적인 존재였다. 개정안이 통과됐으니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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