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1

2018.03.28

한창호의 시네+아트

‘분노의 시대’가 낳은 희생자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

  • 입력2018-03-27 11: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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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코리아]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코리아]

    마틴 맥도나 감독은 블랙코미디 범죄물에 강점을 갖고 있다. 그를 세계 영화계에 알린 장편 데뷔작 ‘킬러들의 도시’(2008)는 동료 킬러 2명이 벨기에 중세도시 브뤼주에 피신 갔다 갑자기 서로 적이 돼 싸우는 한바탕의 블랙코미디다. 범죄라는 외피를 걸치고 있지만, 사실은 허점투성이 킬러들의 본모습이 드러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들의 약점이 우리를 비추는 거울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두 번째 장편 ‘세븐 싸이코패스’(2012) 역시 돈이 없어 애완견을 훔치는 가난한 작가를 그린 코미디다. 미국에서도 작가는 도둑질할 만큼 가난하다. 신작 ‘쓰리 빌보드’에도 맥도나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 감각이 잘 표현돼 있다. 단, 이번엔 비극 정서까지 풀어놓았다. 

    미국 미주리주 에빙(허구의 도시)이라는 도시 외곽엔 낡아빠진 광고판 3개가 서 있다. 영화 원제인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그대로다. 오래전 사용을 중지했는지 광고판은 찢기고 빛이 바래 버려진 쓰레기처럼 보인다. 에빙, 더 나아가 미주리주가 어떤 조건에 놓였는지 단박에 알게 하는 신호인 셈이다. 

    중년 여성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 분 ·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는 광고판 3개를 임대한다. 그리고 ‘강간당하고 죽었다’ ‘그런데 아직도 체포된 사람이 없다’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이라고 차례대로 써 붙였다. 7개월 전 딸이 사고로 죽은 것에 대한 분노의 표시다. 밀드레드가 보기에 경찰은 무능하고 오만하며 ‘흑인들 고문하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밀드레드는 수사를 방기하는 듯한 경찰의 태도에서 딸의 죽음이 무시되는 모욕을 느낀다. 분노한 그는 사적 복수에 나선다.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코리아]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코리아]

    하급 경찰 딕슨(샘 록웰 분 ·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수상)은 남부 악질 경찰의 상징 같다. 그는 인종주의자이고, 동성애 혐오주의자이며, 알코올 중독자다. 특히 멕시코인과 흑인에 대한 무시와 욕설이 일상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남부 백인’ 캐릭터다. 늘 술에 취해 있는 그는 쉽게 분노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그에게 광고판을 통해 경찰서장을 공개적으로 공격한 밀드레드는 공권력을 무시한 ‘무법자’다. ‘쓰리 빌보드’는 이 두 캐릭터의 분노가 충돌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밀드레드에게 딕슨은 ‘악질 경찰’이고, 반대로 딕슨에게 밀드레드는 ‘무법 시민’이다. 

    그런데 ‘쓰리 빌보드’는 타자에게 붙이는 그런 선입견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지 성찰하게 한다. 얼핏 보면 딕슨은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의 ‘멍청한’ 희생자 같다. 반면 복수에 나선 밀드레드는 비극의 ‘순수한’ 주인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맥도나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처럼 여기서도 인물의 성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두 캐릭터의 특성은 서로 뒤섞이고, 그 모든 결점은 우리를 비춘다. ‘분노의 시대’에 우린 어떤 행동을 하는지, ‘쓰리 빌보드’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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