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멸치 무침회.
봄 멸치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했을 정도로 맛 좋은 생선으로 꼽힌다. 멸치(蔑致), 멸어(滅魚), 수어(水魚)라고도 부르는데, 멸치와 멸어는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뜻이고 수어는 ‘물고기의 대명사’라서 붙은 이름이다.
멸치는 젓갈로 담그는 게 보통이지만 봄 멸치는 살이 많고 달아 횟감으로 그만이다. 머리, 내장, 뼈를 제거해 살만 남은 멸치를 미역, 김치, 마늘, 고추 등과 함께 초장에 콕 찍어 먹는다. 미나리, 쑥갓, 돌나물 같은 봄 채소와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등 양념을 넣고 칼칼하게 버무려 무침회로 먹기도 하는데 뜨거운 밥에 곁들이면 맛있다. 신선한 멸치의 부드러운 살코기는 고소하고 담백한 향이 은은하게 난다. 생멸치에 소금을 뿌려 석쇠에 굽거나 통째로 튀기기도 하고, 얼큰하게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한다. 경남 기장, 통영, 남해 등에 가면 다양한 멸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마늘, 레몬즙, 허브와 곁들여 먹는 안초비(왼쪽). 안초비는 소금에 숙성시킨 멸치를 허브 오일에 담가 만든다.
잘 씻은 멸치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 오일에 넣어 저장한다. 그 전에 식초에 2시간 정도 담가 육질에 탄력과 맛을 더하기도 한다. 오일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에 해바라기씨유, 포도씨유, 카놀라유 같은 식물성 기름을 반 정도 섞어 사용한다. 올리브 오일만 넣으면 냉장 보관을 할 때 딱딱하게 굳기 때문이다. 오일 저장 시 로즈메리, 월계수 잎, 타임, 마른 고추, 마늘 등을 넣어 은은하게 향과 맛을 입혀도 좋다. 무엇보다 오일로 멸치를 완전히 덮어 공기가 통하지 못하게 해야 오래 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열흘가량 냉장실에서 다시 숙성시키면 맛좋은 안초비가 된다.
안초비는 레몬즙을 짜 넣고 통째로 빵이나 크래커에 올려 먹는다. 다진 양파와 함께 파스타 소스를 만들면 풍미 가득한 요리가 완성된다. 안초비와 오일, 마늘, 올리브를 섞어 곱게 갈아 페이스트로 만들어 브루스케타 스프레드로 활용하거나 파스타에 버무려 먹기도 한다. 흰밥에 짭조름한 젓갈을 곁들여 먹듯, 안초비도 그렇게 쓸모 있는 저장 식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