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6

2011.05.09

묻지마 소송 피해자는 국민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11-05-06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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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일입니다. 제가 자주 출입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대박’을 터뜨릴 만한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내용인즉 전·현직 대통령이 피소돼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건 진행 기록을 확인하니 사실이었습니다.

    ‘2010가합00000, 사건명 : 손해배상, 피고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 외 1명.’

    5월 17일엔 변론까지 잡혀 있으니 말 다했죠. 원고명을 살펴보니 그 이름도 상당히 낯익었습니다. 유명 정치인과 이름이 동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당 재판부에 사건 내용을 확인할 차례. 그러나 담당 재판부 관계자는 사건 내용을 묻자 상당히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원고가 유명 정치인과 동일 인물인가요?” 그러자 그 관계자에게서 “아닙니다. 일반 사람인데…. 이 사건이 법률적 조건을 갖춘 게 아니라서 어떻게 알려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조건 갖춘 사건이 아니라면?”

    “범죄 사실에 대한 구체적 이유가 없고, 법령 적용도 모호하다는 거죠.”



    원고가 제기한 손해배상 액수는 무려 4조 원. 엄청난 소가임에도 원고는 변호인도 없이 지난해 5월 소장을 접수했고, 올 2월에야 개인적으로 준비서면을 만들어 제출했더군요. 게다가 재판부에 소송비용을 부담해달라는 소송구조 신청까지 했습니다. 재판부는 일반 소송과는 다른 차원으로 이해하라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사실상 ‘묻지마 소송’에 가깝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2010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9년 한국 법원이 처리한 민사사건은 413만 건입니다. 이지아와 서태지 이혼 건처럼 소송 중간에 취하한 건수까지 합하면 헤아리기 어렵겠죠. 인구 대비 건수로 따지면 일본의 4배가 넘고, 유럽 국가와는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답니다.

    묻지마 소송 피해자는 국민
    물론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원고 처지에선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죠. 그러나 이런 소송은 법관의 업무를 가중시켜 꼭 필요한 소송을 진행하는 국민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소송 증가 현상을 우려해 국회에서 대법관 수를 늘리자는 논의까지 나온 게 아닐까요.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다면 소송이 필요하지만 사법부를 ‘골탕 먹이려는’ 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 나라의 재판 서비스 수준은 국민 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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