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광저우 에버그란데FC 경기에서 서울 고광민(왼쪽)이 광저우 엘케손과 공 경합을 하고 있다.
조별리그를 통해 아시아권에서만큼은 여전히 K리그가 주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K리그는 조별리그에 나선 4개 팀이 모두 16강에 올랐다.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호주를 아우른 동아시아 권역에 배정된 16강 티켓 8장 중 K리그는 50%를 차지했다. 나머지 4장은 일본과 중국이 2장씩 가져갔다. 챔피언스리그에 나선 K리그 4개 팀 모두가 토너먼트에 오른 것은 2010년 이후 5년 만이다.
4차례 정상 차지한 관록의 K리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16강전에서 각 조 2위는 홈에서 1차전을 치른 뒤 적지에서 2차전을 갖는다. K리그 4개 팀은 5월 19일과 20일에 걸쳐 국내에서 1차전을 치르고 26일과 27일 각각 일본과 중국으로 가 2차전을 펼친다. 2위 팀 홈에서 먼저 경기를 하는 건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1위 팀에게 어드밴티지를 준 것이다. 전북 등 4개 팀이 K리그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기 위해선 먼저 16강이란 2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 클럽 대항전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다. 아시안클럽챔피언십(1967~2002) 시대에 이어 아시안컵위너스컵과 통합돼 2002~2003시즌 출범했다. 그동안 K리그 클럽은 통산 4차례 정상을 밟았다. 2006년 전북을 시작으로 포항스틸러스(2009), 성남일화(성남FC 전신·2010), 울산현대(2012)가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K리그 4개 팀이 조별리그에 출전하는 현 방식은 2009년 시작됐다. K리그는 이후 매년 평균 3개 팀씩 16강에 올랐다. 2010년에는 성남, 전북, 수원, 포항이 나란히 16강에 올랐고 이들 4개팀은 또 모두 8강까지 올랐다. 하지만 4강에는 성남만 진출했고, 결국 성남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11년 3개, 2012년과 2013년 2개, 2014년 3개 팀이 16강에 진출했다.
올해로 13번째 시즌을 맞은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이 전부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것은 초대 대회(2002~2003시즌) 이후 처음이다. 16개 팀이 출전해 아랍에미리트(UAE) 알아인이 우승한 당시 대회에는 성남일화와 대전시티즌이 K리그 대표로 출전했고, 두 팀 모두 조 2위를 차지했지만 4강 진출(각조 1위)에는 실패했다.
2014년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이번 챔피언스리그에 나선 전북은 9년 만에 아시아 패권 탈환을 노리고 있다. 올 시즌 개막에 앞서 미디어데이에서 최강희(56) 전북 감독이 “클래식 우승보다 챔피언스리그 트로피에 욕심을 내겠다”고 할 정도로 다른 팀과는 ‘격이 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는 전북은 ‘두 팀을 꾸려도 충분할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동국-에두-에닝요-레오나르도 등 포워드진을 이끄는 ‘F4’는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화력을 갖췄다. 최 감독의 지론인 ‘닥공’(닥치고 공격)을 충분히 실현하고도 남는다. 클래식에서 10라운드까지 8승1무1패, 승점 25를 기록하며 2위 수원(5승2무3패·승점 17)을 제치고 여유 있게 1위를 질주하고 있을 정도로 전북은 공수 짜임새에서 K리그 대표주자다운 전력을 자랑한다.
‘클래식’ 우승보다 ‘챔피언스리그’ 트로피 탐나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용병 레오(왼쪽)가 5월 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궈안(중국)과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후 서정원 감독(오른쪽)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기뻐하고 있다.
서정원(45) 감독 부임 3년 차를 맞는 수원은 16강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일본)을 만난다. 화끈한 ‘설욕의 무대’를 다짐하고 있다. 서 감독은 사령탑 데뷔 시즌이던 2013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홈경기에서 가시와에 2-6으로 대패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원정에서도 0-0으로 비겼던 수원은 결국 4무2패, 조 꼴찌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가시와는 2012년 전북에 5-1 대승을 거두는 등 유독 K리그 팀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던 팀이다.
2013년 조별리그 탈락에 이어 지난해에는 챔피언스리그에 출전조차 못했던 서 감독은 가시와와의 16강전에서 반드시 응어리를 풀어내겠다는 다짐이다. “선수들과 내 마음이 똑같다. 반드시 8강, 그 이상에 올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수원의 ‘믿는 구석’은 올 시즌 제2 전성기를 열어 제치고 있는 ‘왼발의 마술사’ 염기훈과 어시스트에도 눈을 뜬 ‘최전방 공격수’ 정대세다.
천신만고 끝에 16강에 오른 서울의 처지는 절박함 그 자체다. 전북을 비롯한 K리그 소속 3개 팀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16강 진출을 이뤄낸 것과 달리 ‘독수리’ 최용수(42) 감독이 이끄는 서울은 그야말로 힘겹게 16강 티켓을 따냈다. 5월 5일 원정으로 진행된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와 H조 최종 6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몰리나의 결승골 덕분에 3-2로 이겨 극적으로 16강 티켓을 손에 넣었다. 몰리나의 골이 터지지 않아 비겼다면 16강에 나설 수 없었다. 더구나 전형적인 ‘슬로스타터’로 불리는 서울은 10라운드까지 3승2무5패를 거두며 클래식에서도 여전히 하위권에 처져 있다. 서울의 고민은 빈곤한 득점력. 가시마전에서 오랜만에 3골을 터뜨렸지만 이전 경기들에선 경기당 평균 1점도 넣지 못할 정도로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올 시즌을 앞두고 전격 복귀한 박주영은 챔피언스리그 엔트리에 포함될 수 없어 최 감독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매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힘을 냈던 서울이 이번에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4개 팀 중 유일한 시민구단인 성남은 빈약한 선수층과 부실한 지원 속에서도 K리그 최고 지략가로 꼽히는 ‘학범슨’ 김학범(55) 감독의 지도 아래 챔피언스리그 돌풍을 꿈꾸고 있다. 김 감독은 “시민구단이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짧고 강렬한 멘트로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김 감독이 16강에서 만날 광저우 에버그란데 FC 사령탑은 이탈리아 스타 출신으로 올 시즌 아시아 축구를 처음 경험하고 있는 파비오 칸나바로다. 한국의 지략가와 이탈리아 스타 출신 감독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