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예비경선이 열렸다.
새 지도부 선출을 계기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 승리의 기틀을 닦으려 새정치연합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 그 시각.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은 태평양 건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 언론은 안 의원이 IoT(사물인터넷)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 중소기업과 벤처업계가 CES를 기회로 해외 시장에 더 많이 진출하길 바란다. 적극적으로 이를 돕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너무 안이한 것 아닌가. 당이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중요한 시점에 전직 당대표가 개인 일정 등을 이유로 외국에 나가 있는 모습을 당원과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2012년 대선 출마 이후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에 입성하기까지 안 의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왔던 한 인사는 혀를 끌끌 찼다.
정치인 안철수? 안랩 대주주 안철수!
“오늘(1월 7일) 안 의원의 행보만 놓고 보면 ‘정치인 안철수’가 아니라 ‘안랩 대주주 안철수’에 더 걸맞은 것 같다. 몸에 맞지 않는 옷(국회의원)을 걸치고 부자연스러워할 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성과를 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새정치연합 예비경선 직전, 안 의원 측근들은 ‘안철수는 왜?’라는 책을 펴내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2012년 대선 과정, 특히 안 의원이 대선후보에서 사퇴한 직후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소상히 공개했기 때문이다.
‘내가 출마를 포기한다고 해서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당연히 문재인 지지로 넘어가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지지층의 기반도 다르고 지지의 이유도 다르죠. 그렇다면 나를 지지한 사람들이 문재인을 지지할 수 있도록 명분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문재인 측에서는 이것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책에 서술된 안 의원의 이 같은 언급은 2012년 대선 당시 자신의 사퇴로 결과적으로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뤄졌음에도 시너지 효과가 없었던 원인과 책임을 문재인 후보 측에게 돌린 것으로 해석됐다. 파장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안 의원은 “책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나와 상의한 적 없다”고 거리를 뒀다. 그 대신 그는 “당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 지난 대선에 대한 불필요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유감”이며 “지난 대선과 이후의 정치적 선택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측근이 펴낸 책이 파문을 일으켜 불똥이 튈 것 같으니까 ‘자신의 뜻과 무관하다’고 해명하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렵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전대(전당대회) 이후로 출간 시점을 늦추라’고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출간 자체를 만류했어야 한다. 리더는 앞장서 리드하는 사람이지, 사후에 해명하거나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다.”(안 의원의 전 측근)
헌정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대선후보, 국회의원, 당대표를 거치며 화려한 정치 이력을 쌓은 안철수 의원이 하루아침에 고립무원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당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측근으로 활동한 이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는 것. 안 의원의 급격한 부침은 ‘빨리 다는 화로가 빨리 식는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추락하는 안 의원에게 날개는 있는 걸까.
정치권 인사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안 의원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이들은 ‘하기 나름’이라며 여전히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측근으로 곁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안 의원에 대한 주변 평가가 박한 이유는 ‘모호한 새 정치’에서 기인한다. 정치는 흔히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도자가 제시한 철학과 가치가 추상적이거나 모호하면 곧 한계에 부딪힌다. 역대 대통령의 사례를 보면 김영삼의 ‘군정종식’, 김대중의 ‘수평적 정권교체’, 노무현의 ‘권력분산’, 이명박의 ‘747’,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등 대부분 당시 국민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인 대중언어로 제시해 집권에 성공했다.
빨리 다는 화로가 빨리 식는다
2014년 7월 31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가 7·30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런데 안 의원에게는 ‘자원봉사자’만 있었을 뿐, ‘동지’라 일컬을 만한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안 의원의 핵심 측근이자 동지로 몇 명의 변호사가 거론되지만, 그들은 법률 전문가이지 정치 전문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 의원이 정계에 진출한 후 정치권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은 주변에 안 의원을 도와 함께하려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동지는 리더의 뜻을 대중에게 전파해 세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가치와 철학이 불분명한 정치는 공허하고, 동지 없는 리더는 외롭기 마련이다.
새누리당은 친이(친이명박)와 친박(친박근혜)으로 크게 세력이 구분되고, 새정치연합은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가 있을 뿐, 친안(친안철수)이나 비안(비안철수)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명에 안 의원이 주장한 ‘새 정치’를 집어넣었다고 안 의원이 ‘새 정치를 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친노와 비노로 나뉜 새정치연합 틈바구니에서 안 의원은 나 홀로 가슴에 배지를 달고 빛바랜 새 정치 깃발을 붙잡고 홀로 떠 있는 섬처럼 비친다.
안 의원은 2012년 펴낸 ‘안철수의 생각’에서 진로 선택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재미를 느끼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아 선택해야 한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직업이라 해서 죽을힘을 다해 그곳에 도달했는데 막상 자신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면 허무한 일이니까요.’
2015년 1월 정치인 안철수는 과연 행복할까. 안 의원은 국민이 다시 한 번 자신을 호출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