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후쿠야마 교수가 작금의 미국 정치 상황을 설명하려고 끌어들인 ‘정치적 쇠퇴’라는 개념은 주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변화하는 사회와 정치질서’(1968)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것이다. 근대화에 나선 제3세계 국가들의 기존 정치제도가 변화하는 경제사회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불일치 현상 때문에 정치적 불안정이 도래한다는 게 골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신생 독립국가들의 정치 현상을 설명하고자 고안한 개념이 21세기 미국 정치 상황에 꼭 들어맞을 만큼 워싱턴 정치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1800년대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유럽의 구시대 권력정치와 비교해 극찬했던 최첨단 미국 정치제도 역시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해 쇠퇴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적 경직성과 기득권층의 반(反)개혁적 행태가 맞물려 미국 정치의 자기 수정 기능이 정지된 상태”라면서 “미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는 정당도, 유권자인 시민도, 이익단체도 고칠 수 없다”며 한마디로 ‘개혁 난망’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제시한 현실은 암울하다. 민의의 전당인 의회는 가진 자들의 이익단체가 막대한 정치자금을 대주고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한 법안을 사는 ‘장터’로 묘사된다. 그 구체적 증거는 의회 대상 로비 회사가 1971년 175개에서 81년 2500개로 늘어났고, 2009년 현재 1만3700명의 로비스트가 35억 달러에 이르는 로비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 ‘유전 유법, 무전 무법’ 사회라는 말이다.
‘유전 유법, 무전 무법’의 사회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사법부는 자신들이 양산한 규제법안을 통해 거꾸로 행정부의 비대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진 여야 정치권은 ‘견제와 균형’을 벗어나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거부권 정치’(vetocracy)에 젖어 있다. 정치권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정치제도 역시 갖가지 문제가 상승작용을 하면서 정치의 기능장애 현상이 전반적으로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발표 직후 ‘포린어페어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찬반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이 글은 곧 발표될 저서 ‘정치 질서와 정치 쇠퇴’의 핵심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이 글과 저서는 25년 전 저자의 ‘역사의 종말’론이 들어맞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 성격이 짙다. 후쿠먀아 교수는 6월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역사의 종언’ 출간 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시장경제가 침체를 겪는 등 예견과는 다른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한 것은 이를 실행에 옮길 정치적 지배구조가 정착하지 못하고 부패가 득세했기 때문”이라고 반론을 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