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계의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개선하려면 문화적으로 성숙한 자세, 자제와 상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은 한 극장의 예매 창구 모습.
필자는 최근 한 잡지 원고에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관객, 곧 소비자가 왕이라면 그 수준과 책임을 거론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위 글로 필자가 설화(舌禍)를 입은 것도 아니고 글의 반향 또한 작았지만, 계속 신경은 쓰인다. 과연 관객은 왕인가. 과연 관객은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을 원하는가.
공동배급사 설립 추진에 주목
지난해 6월 ‘은밀하게 위대하게’ 흥행 돌풍은 그 정도가 예상 밖이었다. 무엇보다 개봉 초반 신기록 수립은 경이적이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기본적으로 스토리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은데도 ‘스크린 싹쓸이’에 대한 논란이 더 가중됐다. 개봉 일주일 만에 400만 명을 돌파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 독주는 9일째에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이 개봉하면서 무너졌다. 그 주말 완벽한 양강구도를 형성한 두 영화는 전국 극장 스크린의 약 57%, 매출액의 약 90%를 가져갔다.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는 없다.
관객 대부분이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고, 대박 영화가 중·대형관을 독차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스크린 독과점이란 대박 영화 한두 개가 차지하는 상영관 수보다 좌석 수 문제다. 이런 상황은 각 멀티플렉스마다 1개 영화 점유율을 스크린 수 40% 이하로 제한하려는 반(反)독과점법 제정의 실효성에 회의를 낳게 한다. 그렇다고 스크린 수 말고 좌석 수 점유율을 제한하는 방식은 입법 실현성이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입법 투쟁보다 대기업 및 중견 배급사의 독과점에 맞서 공동배급사를 설립한 것은 하나의 대안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스크린 독과점이 흥행을 부추긴다는 의견은 ‘닭과 달걀 논쟁’으로 비친다. 극장 측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관심을 끌고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크린 수가 늘어난 것”이라며 “1341개(전체의 약 55%)까지 올랐던 스크린 수가 관심이 낮아지자 871개로 떨어진 것이 이를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평론가들의 혹평에도 이 영화는 상업적 측면만 따졌을 때는 성공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타깃층을 정확히 설정하고 공략해 기획영화의 의도를 잘 살려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관점이다. 이런 견해는 문화의 지나친 상업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에도 역행한다.
영화 관람 쏠림이나 스크린 독과점은 아무 문제없거나, 문제가 있다 해도 관객에겐 그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가 없다는 보수주의자 내지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은 이렇다. 영화도 상품이고 관객은 왕이므로, 오로지 ‘관객 선택’에 따라 멀티플렉스 스크린 수, 곧 상영 작품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나 충무로 상업영화의 문화적 지배니, 스크린 독과점이니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으며, 더욱 자유시장경제 원리와 극장의 영업자유권을 침해하게 마련인 ‘규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다. 하지만 최근 시장경제 흐름과 수정주의적 자유주의 담론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그 주장이나 이론이 불충실하고 낡았다.
먼저 영화가 상품이고 대체로 오락인 것은 사실이지만(국내 시장 매출의 98% 이상을 상업영화가 차지하는 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영화는 한 나라의 정신과 언어와 문화가 담긴, 즉 문화상품이라는 특수한 상품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내 시장질서와 국제 통상 마찰에서 자주 도마에 오르는 ‘문화적 예외’ 논쟁을 떠나 우리가 식물, 문화, 영화 등의 종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약한 종의 보호와 육성을 외면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박찬욱, 김기덕, 봉준호 같은 이가 세계적 감독으로 성장하기까지, 또 한국 영화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지금의 신(新)황금기를 맞기까지 저예산 단편·독립·실험·예술영화 등 다양성을 갖춘 영화가 성장과 발전의 중요한 자양분으로 쓰였다. 영화문화의 지나친 상업화, 저질화를 막아줄 방부제로도 작용한다.
흥행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설국열차’ ‘광해’ 포스터(왼쪽부터).
또 관람 영화 결정이 오롯이 대중 선택일 수만은 없다. 선택 이면에는 홍보와 마케팅, 배급 및 상영 시스템, 인터넷 매체의 영향 등 자본 개입이나 조종이 작용한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책임은 관객과 기업 모두에게 있으며, 영화문화뿐 아니라 영화산업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 발전을 위해서도 독과점은 해소돼야 한다. 하지만 스크린 수에 대한 법적, 수치(비율)적 강제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외국 또한 선례가 없다.
지난해 8월 1일 뚜껑을 연 ‘설국열차’는 1주 늦게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의 쌍끌이 흥행 덕(탓)에 점유율이 그리 높지 않았다. 또 420억 원을 투자한 국제 영화란 점 때문에도 스크린 독과점 비판의 예봉을 피해갔다. ‘천만 영화’ 고지를 목전에 뒀던 ‘관상’은 지난해 추석 흥행대전의 절대강자로 등장하면서 1년 전 ‘광해, 왕이 된 남자’처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낳았다.
2014년 ‘천만 영화’인 ‘변호인’과 외화 ‘겨울왕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스크린 점유(장악)율과 높은 좌석 점유율 덕에 역시 스크린 독과점 비판의 예봉을 피해갔다. ‘변호인’의 배급과 상영 사례는 일부 언론으로부터 칭찬도 받았다. 적은 스크린으로 길게 가는 대박은 문제될 것 없고 과도한 초반 흥행몰이가 ‘악의 축’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등 영화 단체와 일부 언론의 비판을 의식한 때문인지 ‘설국열차’ 이후 영화 기업의 자제 분위기가 엿보이는 듯하다. 우리는 시장 만능이 아닌 ‘시장+수정’의 문화적, 제도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이전에 중소 규모의 영화를 살리려는 문화적으로 성숙한 자세, 자제와 상생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