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과 그리움은 시간의 창조물이다. 우연 속에 놓인 관계를 향해 사랑 혹은 운명이라는 축복을 보내는 것은 천사의 얼굴을 한 시간이다. 반면, 관계를 잠식하고 사랑을 부식시키는 것도 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관계의 가장 강력한 지원군도, 가장 강력한 적군도 시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천사와 악마의 웃음을 모두 갖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비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일상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이란 오로지 일상의 집적이며, 일상은 시간이 부리는 변덕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아닐까.
매일 마주하는 ‘시간의 변덕’ 이야기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시간. 헤어져 있는 순간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욱 강렬해지는 그리움이라는 보상을 가져다줄까, 아니면 회의와 불신, 망각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할까.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의 영화 ‘에브리데이’는 매일 마주하는 ‘시간의 변덕’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5년간 감옥에 수감된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마주하는 일상 및 관계의 변화를 담은 작품이다. 언뜻 이 설정만 본다면, 범죄 혹은 감옥과는 관계없을 당신, 곧 우리 관객에겐 아주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아내와 자녀를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 외지 발령으로 한 주 또는 한 달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든 주말부부 등 ‘자발적 이산’을 선택해야 하는 우리 땅의 무수한 가족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 주인공들이 보내는 ‘에브리데이’가 ‘남 일’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영국 시골 마을 한 가정의 부산한 하루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린 4남매가 있는 집 안 풍경, 하루의 시작이 정신없다. 밥 챙겨 먹이랴, 옷 입히랴, 아래로는 한두 살배기부터 위로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쯤 된 엄마는 힘에 겨워 보인다. 이렇게 간신히 외출 준비를 한 뒤 아이들을 업고 끌고 간 곳은 어디일까. 런던의 한 교도소다. 이 집안 가장이자 남편이며 아빠인 이안(존 심 분)은 5년형을 받아 수감 중이고, 아내이자 엄마인 캐런(셜리 헨더슨 분)은 4남매와 뒹굴며 매일 전투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캐런은 낮에는 마트에서, 밤에는 동네 선술집에서 일하면서도 주말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5시에 일어나 수백km 떨어진 교도소를 꼬박꼬박 찾는다. 영화는 이들의 ‘5년간’을 스크린에 담았다. 캐런과 아이들이 아빠와 만나는 장면을 중심으로 시골 마을에서 가장 없이 보내는 아내, 자식들의 일상과 감옥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버티는 이안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면회소 안. 아이들 눈빛은 간절하고, 아내 얼굴은 외로움과 고단함, 애틋함,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들을 맞는, 아빠의 의연함과 장난기가 오히려 안쓰럽다.
“학교 생활은 어떠니?” “말썽은 피우지 않았어?” “누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묻는 것조차 짧디 짧은 면회 시간이다. 부부가 손 한 번 맞잡고 애절한 키스 한 번 하는 것도 서슬 퍼런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
가끔은 어렵게 허락받아 아빠가 집에 전화를 한다. 처음엔 아이들이 서로 아빠의 전화를 받겠다고 난리다. 하지만 시간은 종종 악마의 얼굴을 드러낸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면서 열 살 남짓 돼가는 둘째아들은 교도소에 가자는 엄마 말에 “아빠 안 보고 싶은데”라고 대답한다. 성숙해가는 큰딸도, 보기만 해도 눈물 글썽이던 귀여운 셋째아들도, 만날 투정부리던 응석받이 막내딸도 조금씩 아빠를 보는 표정이 달라진다. 아무도 입에 담지는 않지만 조금씩 무던해지고, 가끔은 싫증이 역력하며, 어떤 때는 사무치게 그립고, 불현듯 애틋함이 찾아오는 순간. 아내와 아이들 얼굴에는 아빠가 미처 읽어내기 어려운 표정이 더 많아진다. 시간을 함께할 수 없는 관계란 그렇다. 변화는 때론 도둑처럼 깃들고, 때론 바람처럼 불어닥친다.
5년간 촬영하면서 아이들 성장
몸과 마음으로 결합됐지만 시간이 떼어놓은 부부. 남편은 면회소에서 감시원의 눈을 피해 목소리를 낮춰 아내에게 성적인 말을 건네기도 한다. 침대에서나 나눌 ‘음란한 말’이지만, 몸이 함께할 수 없으니 말로나마 서로의 ‘흔적’과 ‘손길’을 기억해내려 한다. 영화는 학교와 유치원에서 보내는 아이들의 하루하루와 자식들을 거둬먹이며 고투하는 캐런의 매일매일을 교차해 보여준다. 누구보다 캐런이 서서히 지쳐간다. 외로운 생활 전선에서 다른 남자가 보내는 따뜻한 미소에 아내 마음이 흔들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4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 드디어 이안이 집에 돌아온다. 그가 5년 만에 찾은 집엔 아빠와 남편의 자리가 남아 있을까.
극영화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섬세하고 강렬한 작품이다. 윈터보텀 감독은 몇 년간 헤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함께한다는 내용의 러브스토리로 이 영화를 기획했지만, 캐스팅하고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남편과 아내, 아빠와 자식, 엄마와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5년간을 담는 내용으로 확장했다. 이안과 캐런 역의 배우는 영국에서 낯익은 중견 배우들이지만, 아이들 4명은 오디션을 통해 뽑았으며, 실제 친남매들이다. 5년간 촬영하면서 아이들의 실제 성장과정을 그대로 담았다.
잉글랜드 동부 농업지역인 노퍽의 평원과 사계를 잡아낸 시적 영상은 다큐멘터리의 감각으로 구현한 일상적인 공간 및 행위와 아름답게 대비 또는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영화 ‘피아노’의 음악감독 마이클 니먼의 서정적인 선율이 관객의 감성을 울린다.
요새 MBC TV에서 방영하는 독신 남성들이 주인공인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보듯, 한 집 걸러 한 집이라 할 정도로 ‘기러기 아빠’가 흔하다. 아이들이 조금 컸다 싶으면 어떤 가정이든 고민에 빠진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가족이 함께할 것인가, 미래의 약속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될 것인가. 그 끝에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매달린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자꾸 ‘기러기 아빠’의 초상으로 읽히는 것은 비단 한두 명의 관객에게만은 아니리라.
매일 마주하는 ‘시간의 변덕’ 이야기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시간. 헤어져 있는 순간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욱 강렬해지는 그리움이라는 보상을 가져다줄까, 아니면 회의와 불신, 망각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할까.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의 영화 ‘에브리데이’는 매일 마주하는 ‘시간의 변덕’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5년간 감옥에 수감된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마주하는 일상 및 관계의 변화를 담은 작품이다. 언뜻 이 설정만 본다면, 범죄 혹은 감옥과는 관계없을 당신, 곧 우리 관객에겐 아주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아내와 자녀를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 외지 발령으로 한 주 또는 한 달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든 주말부부 등 ‘자발적 이산’을 선택해야 하는 우리 땅의 무수한 가족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 주인공들이 보내는 ‘에브리데이’가 ‘남 일’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영국 시골 마을 한 가정의 부산한 하루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린 4남매가 있는 집 안 풍경, 하루의 시작이 정신없다. 밥 챙겨 먹이랴, 옷 입히랴, 아래로는 한두 살배기부터 위로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쯤 된 엄마는 힘에 겨워 보인다. 이렇게 간신히 외출 준비를 한 뒤 아이들을 업고 끌고 간 곳은 어디일까. 런던의 한 교도소다. 이 집안 가장이자 남편이며 아빠인 이안(존 심 분)은 5년형을 받아 수감 중이고, 아내이자 엄마인 캐런(셜리 헨더슨 분)은 4남매와 뒹굴며 매일 전투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캐런은 낮에는 마트에서, 밤에는 동네 선술집에서 일하면서도 주말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5시에 일어나 수백km 떨어진 교도소를 꼬박꼬박 찾는다. 영화는 이들의 ‘5년간’을 스크린에 담았다. 캐런과 아이들이 아빠와 만나는 장면을 중심으로 시골 마을에서 가장 없이 보내는 아내, 자식들의 일상과 감옥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버티는 이안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면회소 안. 아이들 눈빛은 간절하고, 아내 얼굴은 외로움과 고단함, 애틋함,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들을 맞는, 아빠의 의연함과 장난기가 오히려 안쓰럽다.
“학교 생활은 어떠니?” “말썽은 피우지 않았어?” “누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묻는 것조차 짧디 짧은 면회 시간이다. 부부가 손 한 번 맞잡고 애절한 키스 한 번 하는 것도 서슬 퍼런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
가끔은 어렵게 허락받아 아빠가 집에 전화를 한다. 처음엔 아이들이 서로 아빠의 전화를 받겠다고 난리다. 하지만 시간은 종종 악마의 얼굴을 드러낸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면서 열 살 남짓 돼가는 둘째아들은 교도소에 가자는 엄마 말에 “아빠 안 보고 싶은데”라고 대답한다. 성숙해가는 큰딸도, 보기만 해도 눈물 글썽이던 귀여운 셋째아들도, 만날 투정부리던 응석받이 막내딸도 조금씩 아빠를 보는 표정이 달라진다. 아무도 입에 담지는 않지만 조금씩 무던해지고, 가끔은 싫증이 역력하며, 어떤 때는 사무치게 그립고, 불현듯 애틋함이 찾아오는 순간. 아내와 아이들 얼굴에는 아빠가 미처 읽어내기 어려운 표정이 더 많아진다. 시간을 함께할 수 없는 관계란 그렇다. 변화는 때론 도둑처럼 깃들고, 때론 바람처럼 불어닥친다.
5년간 촬영하면서 아이들 성장
몸과 마음으로 결합됐지만 시간이 떼어놓은 부부. 남편은 면회소에서 감시원의 눈을 피해 목소리를 낮춰 아내에게 성적인 말을 건네기도 한다. 침대에서나 나눌 ‘음란한 말’이지만, 몸이 함께할 수 없으니 말로나마 서로의 ‘흔적’과 ‘손길’을 기억해내려 한다. 영화는 학교와 유치원에서 보내는 아이들의 하루하루와 자식들을 거둬먹이며 고투하는 캐런의 매일매일을 교차해 보여준다. 누구보다 캐런이 서서히 지쳐간다. 외로운 생활 전선에서 다른 남자가 보내는 따뜻한 미소에 아내 마음이 흔들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4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 드디어 이안이 집에 돌아온다. 그가 5년 만에 찾은 집엔 아빠와 남편의 자리가 남아 있을까.
극영화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섬세하고 강렬한 작품이다. 윈터보텀 감독은 몇 년간 헤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함께한다는 내용의 러브스토리로 이 영화를 기획했지만, 캐스팅하고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남편과 아내, 아빠와 자식, 엄마와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5년간을 담는 내용으로 확장했다. 이안과 캐런 역의 배우는 영국에서 낯익은 중견 배우들이지만, 아이들 4명은 오디션을 통해 뽑았으며, 실제 친남매들이다. 5년간 촬영하면서 아이들의 실제 성장과정을 그대로 담았다.
잉글랜드 동부 농업지역인 노퍽의 평원과 사계를 잡아낸 시적 영상은 다큐멘터리의 감각으로 구현한 일상적인 공간 및 행위와 아름답게 대비 또는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영화 ‘피아노’의 음악감독 마이클 니먼의 서정적인 선율이 관객의 감성을 울린다.
요새 MBC TV에서 방영하는 독신 남성들이 주인공인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보듯, 한 집 걸러 한 집이라 할 정도로 ‘기러기 아빠’가 흔하다. 아이들이 조금 컸다 싶으면 어떤 가정이든 고민에 빠진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가족이 함께할 것인가, 미래의 약속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될 것인가. 그 끝에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매달린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자꾸 ‘기러기 아빠’의 초상으로 읽히는 것은 비단 한두 명의 관객에게만은 아니리라.